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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수레 Nov 11. 2022

기억이 지배하는 시간

아이를 딱 한 명, 낳아 키우면서도 궁금한 것들이 많다. 남들은 육아 템은 뭘 쓰는지, 사교육은 어떻게 시키고 있는지.. 이런 거 말고. 남들도 다 나처럼 아이를 키우면서 옛날 생각을 하는지 말이다. 아이가 꽤 커버리고 말이 통하게 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공유하면서부터 나는 예전 내가 아이였을 때, 청소년이었을 때, 갓 성인이 되었을 때의 내 모습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남들의 면면을 모두 살펴볼 수 없지만 남들은 적어도 이 아이를 키우며 오롯이 행복한 것에만 집중하는 것 같은데 나는 아이의 행복한 모습을 두 번 볼 때 한번 정도는 나의 기억을 무심결에 끄집어내곤 한다.


아버지는 말이 긴 사람이었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 하지 않아도 될 잔소리를 하고. 둥글게 해도 될 말을 뾰족하게 했다. 생일마다 케이크와 치킨을 사 와서 생일상을 차려주며 사진을 꼭 남겨주었지만 다정한 말 한마디는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단순하게 무뚝뚝했다면 괜찮았을 텐데 어떤 상황에 대해 꼭 좋지 않은 어조의 한마디를 보태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아이의 생일상을 차려주면서도 나도 이렇게 매년 생일상을 받았었는데 라는 기억이 아닌 , 우리 아버지는 생일날에도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었다 라는 기억에 지배당하게 된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면 모순이고 어폐가 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기억 속의 아버지의 행동들을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또한 누군가에게 학습당하고 배운 것이었으리라 하고 말이다. 


아이는 무섭도록 나와 남편의 생활습관, 대화방식을 습득한다. 좋은 것 나쁜 것 가릴 것 없이 마치 우리의 유전자를 반으로 쪼개어 5:5로 물려받은 듯 누구의 것이랄 것 없이 배우고 또 익힌다. 우리는 그래서 아주 많이 노력하는 편이다. 꼭 좋은 것만을 보여주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아이의 정서에 강렬하게 영향을 줄 모습은 최대한 조심하려 노력한다. 이를테면 작은 것에 두고두고 부정적인 언급을 한다거나, 아이의 잘못을 깔끔하게 훈육하지 못하고 인간적으로 비난한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나는 아동, 청소년기의 기억이 많지 않다. 그쯤부터 시작된 가정불화가 한창 커가야 할 나의 인지, 정서발달을 막은 건지 모르겠지만 단편적인 장면만 드문드문 떠오를 뿐 하나의 이야기로 기억되는 에피소드가 단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그 무렵 우리 가족은 나들이를 많이 다녔다. 비록 밤에는 큰소리가 나고 싸우고 말리는 날들이 계속되었지만 해가 뜨면 아버지는 의무감에 우리를 데리고 가까운 곳이라도 나가려 노력했다. 이렇게 나들이를 자주 갔었고, 그 기억이 퍽 나쁘지 않았다- 로 끝나면 좋을 텐데 나는 항상 나들이 전에 긴장을 했다.. 


나들이는 넓은 잔디밭이 있던 아버지의 회사 앞뜰로 자주 나갔다. 도시락을 펼쳐놓고 먹기 좋았고 아버지가 장만한 하얀 소형차를 새 차하기 좋은 곳이었다. 우리의 첫차는 나무랄 데 없었지만 딱 한 가지, 트렁크를 여닫을 때 맞닿는 고무패킹이 낡아서 새 차를 할 때마다 트렁크로 적지 않은 물이 들이쳤다. 아버지는 그걸 알고 있었지만 굳이 돈을 들여 고치느니 대강 쓰고 말자하며 지냈던 것 같다. 그날도 정성 들여 새차하는 아버지 옆에서 "또 트렁크에 물 들어가겠다"라고 무심결에 한마디 했던 나는 아마도 열한 살이었다. 어쩌면 걱정이었고, 어쩌면 한마디 거들고 싶었던 것 같은데 열한 살이던 나의 한마디에 아버지는 매섭게 돌변해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왜 하냐며 맹렬하게 비난을 퍼부었다. 잔디는 나무랄 데 없이 파랗고 날은 맑고 푸짐하게 싸온 도시락도 맛있게 먹고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던 날이었는데 눈치 없는 나의 한마디 때문에 그날 나들이는 그렇게 끝났다.

엄마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짐을 정리하고 우리는 깨끗하게 세차된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어렴풋한 기억에 그날 저녁까지도 아버지의 눈치를 보느라 나머지 가족들은 바늘방석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는 트렁크에 물이 새는 중고차를 구입한 것이 꽤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는데 그래 봤자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모른 체 하고 지냈던 것 같다. 그 견고한 자존심이 무심코 흠집을 낸 것이 나의 한마디였겠지. 그 뒤로도 집안 상황이 아주 나빠지기 전까지 나들이를 여러 번 나갔지만 나의 기억에 썩 좋았던 적은 없었다. 더운 날에 슬리퍼를 신고 따라나섰다가 왜 생각 없이 슬리퍼를 신었냐고 웃음기 없는 얼굴로 혼나거나, 고심하며 찾아들어간 식당의 간이 너무 세다고 수없이 말하는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는 엄마를 보거나.. 뭐 하나 나들이 같지 않은 외출의 기억에 아직도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부모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왜 그랬을까 라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시대에서 배우고 익히고 그것이 당연하다 살아왔기에 자식에게 했던 행동들도 아마 최선이라 여겼을 것이다. 나 역시나 지금의 시대를 살면서 지금 옳다 여기는 것, 지금 아이에게 최선이라 생각하는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세월이 지나 아이가 나에게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순 있겠지만 말이다.


남들도 이렇게나 기억에 지배당하며 살까? 단풍이 좋아 공원을 걷다가, 세차장의 물줄기를 보다가도 이렇게 편안해도 될까 미안해하고 매사에 긴장하며 살던 나의 유년기를 생각한다. 가엽고 또 불쌍하다. 나 자체가 아니라 그때에 머물고 있는 어린 내가 말이다. 아버지를 비난한다고 해결될 것은 없다. 그냥 기억이 지배당하는 내가 하루하루 지날수록 그 기억에서 벗어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부모는 다 그럴 수 있지 라는 자기 연민에 빠져 내 아이에게 실수하지 않도록 노력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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