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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유현 Jul 11. 2023

백두 25회 태백산 종주(싸리재-건의령)

06년 7월 22 - 23일

7/22      22:00      신도림역 출발

7/23      04:10       싸리재(1,268, 두문동재)  출발      

            04:35       금대봉(1,418), 대덕산(1,307) 갈림길         1.2km

                           -1256봉-1233봉

            05:30        쑤아밭령

            06:00        비단봉(1,279)

                           -1274봉(헬기장)-

                           풍력발전기 옆 아침식사(06:50-07:20)

            07:30        매봉산(1 303, 천의봉)                            6.0km

            08:00        -1145 안부(낙동정맥 분기점) 

            08:35        피재(910, 삼수령) -09:00 출발                  2.55km      

                           노루메기-951봉-944 봉       

            10:10        새목이-960봉

            10:40        건의령 직전 공터 (10분 휴식) 

            11:10        건의령(861)                                        6.4km    

                                                   7시간              16.15km

좁쌀풀


7월 22일_토_22:00

 잠시 외출 나와 집에 들른 배소위와 예비역 배병장의 웃음과 함께 오랜만에 네 식구가 집에서 저녁을 같이한다. 벌써 훌쩍 커버린 아들들의 일상들이 우리 부부의 그것과는 시차가 많이 난다. 이제 2-3년 후면 그나마 또 다른 세상을 위하여 더욱 멀리 달려 나갈 것이고, 우리 부부의 관심과는 달리 제 각각의 삶을 꾸리느라 바쁘리라.. 아무튼 그동안 큰 실수 없이 잘 배워왔고 앞으로도 보람된 삶을 위하여, 작은 것에 집착하지 않고 이 땅의 보탬으로 살아가기를.. 아비보단 나아지는 그런 앞날을.. 참 신기하게도 서로 성격이 매우 다르고 취미도 정반대이지만 말썽 없이 스스로 모든 일을 잘 꾸려나가고 있으니 대견스러워 자식자랑을 하는 불출 애비가 되고 마는구나..  

 지난주 폭우로 황폐해진 태백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니 참 무겁고, 뭔가 그 뜻을 마련하고 싶지만, 크게 도움이 될만한 변명은 없다. 단지 동해안에서의 파티 계획을 취소하고, 태백시에서 생산하는 고기라도 좀 푸짐하게 사서 대원들과 나눠 먹으면 지역민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아무튼 그곳을 일부러 피할 필요는 없겠고, 조금이라도 그들의 아픈 눈에 거슬리지 않는 행동으로 조심스럽게 마루금을 밟으며 피해의 원인들을 살펴봐야겠다. 오늘 걷는 길이 마침 가장 인간들의 개발이 많이 진행된 지역이니 만큼 얼마나 그 결과가 아픈 것인지도 확인해야겠다. 지난주 연화동 계곡의 흙탕물이 떠오른다. 

 신도림을 출발하여 사당, 양재에서 세명의 산케 친구들과 합승하고, 모처럼 좋은 날씨를 예고해 주는 탓에 산행버스도 웬만큼 빈자리가 없으니 다행이다. 육십령 구간으로 떠나는 9기 팀과 인사를 나누고 영동선과 경부선으로 갈라진다. 출출한 참에 용인 휴게소에서, 대원들이 준비한 간단한 야식을 고맙게 챙겨 먹고 잠시 꿈리에 들고나니, 두문동재 길섶으로 산행버스가 멈춘다.(03:00)

 눈썹 같은 그믐달이 띄엄띄엄 별들을 거느리며 오랜만에 좋은 날씨를 예고한다. 7월도 깊은 大暑의 날씨 치고는 제법 서늘하여 윈드자켓들을 걸친다. 청포도가 익는 계절이 싯귀로만 떠오르니, 다음 주말 대간행이 없을 동안 어디 한가한 포도밭에라도 들려볼까... 참 오래된 젊은 시절의 정경이리라.. 

금대봉에서


7월 23일_일_04:10

 두문동재 들머리 고갯마루에서 한 시간 정도 더 휴식을 취한 후 여유로운 출발을 시작한다. 오늘 구간은 대간 36구간 중에서 거리가 가장 짧고 비교적 오르내림도 심하지 않아 날씨만 좋다면 참 포근한 산책구간이 될 터인데.. 고려 충신들의 한이 서린 두문동재가, 추전(싸리밭) 역 부근의 싸리밭골을 지나면서 각색되어 싸리재로 그 이름이 혼용되지만, 고갯마루에 싸리나무는 지천으로 널려 있는 법은 대봉 날머리의 안내 그림이 천의봉으로 표기된 것에 또 한 번 한심함을 느끼며, 훗날 고쳐진 그것을 확인하며 웃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맞은편 금대봉 오름길의 차단기가 매우 거북스런 느낌이다. 

 20여 분간의 편한 오름길에 아직 땀도 나질 않은 상태로 불바라기 능선을 랜턴 빛으로 밝히며 금대봉 정상에 다다른다.(04:35) 잠시 숨을 고른 뒤 곧바로 내림길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밝아오는 동녘이 매우 반갑긴 하지만 흐려지는 날씨에 맑은 일출을 기대하지는 못하겠다. 한여름 날씨에 더위를 느끼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위안한다. 비교적 잘 가꾸어진 마루금에 편안한 내림길이라 헤드랜턴을 일찍 벗은 채 후미에서 호젓함을 즐긴다. 생물학 교수답게 야생화 사진에 열 올리며 꼼꼼히 담아가는 박교수의 대간길 첫걸음이 계속 이어지면서 또 다른 보람된 기록을 남기리라 확신한다. 

 1256 안부에서 검룡소(한강 발원지) 내림길을 망설이다가 오른쪽 용연골과 함께 그냥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편한 걸음을 계속한다. 은대봉의 낙동강 발원 표지와 금대봉의 양강발원지가 좀 이상하게도 여겨지지만, 세상 물길 시작이야 구석구석 어디에도 있으련만 아무튼 금대봉, 은대봉 기슭의 물이 합쳐지는 (天)黃池 며느리 집터 연못에도 들려 봐야 할 텐데.. 아무튼 오대산 우통수에게서 한강 발원의 영광을 되찾은 검룡소 철철 흐르는 물에서 서해바다 이무기가 거슬러 올라와 금빛 용이 되어 다시 승천하여 이 땅을 비추이며 한강 천리길 언저리에서 폭우로 수해 입은 착한 영혼들에게 복된 삶이라도 뿌려 줬으면.... 

쑤아밭령의 아침


7월 23일_일_05:30

 편한 걸음으로 1233 안부를 지나 잠시 급한 내림길을 내려선 후 쑤아밭령 큰 고목나무 아래서 잠시 휴식과 함께 불그레한 아침 하늘을 맞이한다. 아직은 안개는 많지도 않은데 얕은 구름이 해를 가린다. 쌀밭(禾田, 水田) 이름에서 내가 사는 서울의 禾谷洞을 떠올리며 정감을 느낀다. 부디 이 땅 고갯마루에는 그냥 농사짓지 않아도 되길 바란다. 대덕산 아래 창죽마을(창대골, 山竹골)의 이름처럼 조릿대가 무릎을 스치는 비단봉 오름길을 능선 왼편으로 돌아 나선다. 

 30분 남짓 모처럼 된오름을 밟으며 등에 땀이 개인다. 비단봉 정상 직전 전망대 바위에서 흐리게 보이는 금대봉, 은대봉 지나온 길이 아스라하다. 고도가 가장 높다는 추전역(855m)을 지나는 태백선 철길이 터널로 가려지며 띄엄띄엄 태백시로 숨어든다. 왼쪽 우회길을 버리고 거친 암릉을 잡아 오르는 손길에서 오름에 굶주린 산꾼들에게 짧게나마 대간길의 지루함을 달래주는 느낌을 맛본다. 아무런 표지도 없는 비단봉 정상을 지나고 잠시 편한 능선을 지나 20여분 내림길을 왼쪽으로 돌아 내린다. 


타쉬겐트에서의 마지막 날인 다음 날의 농장 여행을 위하여 잠을 좀 청해야 할 시간이다. 호텔로 돌아가는 발길은, 꽤 어두워진 시각임에도 한번 지나쳐 왔던 길이라 익숙한 걸음으로 방향을 잡아가며, 계속되는 K노인의 커다란 변화를 듣는데 정신이 팔려 주변을 건성으로 지나쳐 간다.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우즈벡의 수도 타쉬겐트 한가운데에서 불교 포교당을 차리고 있다는 한국인 포교사의 용기가 새삼 떠오른다. 단지 다양한 종교의 이념이 또 다른 굴레로 변질되질 않는다면..
“60년대 초반, 이미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자본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양쪽의 낡은 개념들이 서서히 부질없는 것으로 비판받기 시작했었지.. 그러면서 새로운 자국민의 인간성 회복을 위한 움직임이 싹트고 있을 때, 불쌍하게도 한반도 작은 땅 덩어리에서는 철망으로 갈라진 휴전선 앞에서 인류 전체의 첨예한 냉전의 마지막 시험을 지금 철망이 녹 쓸 때까지 대신해서 치르고 있으니..., 그 바로 뒤에 말없이 갈려진 백성들의 말 못 할 고통들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 “
통일이란 것이 이 땅의 백성들 뜻대로 이루어지기에는 너무나 주변 강대국들의 바램과는 먼 이야기인 줄을 잘 알면서도, 과연 그들이 입으로 내뱉는 평화적 공존이 누구를 위한 상태 보전인지... 그들이 주장하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는 공허한 선언을 어느 누가 믿으며 다음세대의 행복을 참고 기다릴 수 있을 것인가.. 오늘날 편안하게 먹을 수 있음에 만족하며, 현재의 분단 상태에 대신할 만한 대안을 생각지도 않게 양육을 시키고 있는 강대국들의 의도된 실험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아무런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유주의든 사회주의든 그들이 추구하던 그 알량한 이상들을 오늘날 고집하며 한쪽으로 치달을 바보들은 이미 60년대 이후로 점점 사라지고 있을 흐름 속에서도, 유난히 이 땅의 전쟁의 기억이 남긴 상처는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또 다른 상징이 된 것이다. 소위 이 땅의 지식인들이나 정치가들은 현실적이라는 명목으로 새로운 이상주의를 비난하지는 않았는가.. 그들은 작은 누명을 쓰고라도 이 땅의 진정한 앞날을 위한 발언에 적극적일 수 있을까..
“인간은 원래 선한 존재다, 단지 인위적인 법, 관습, 권력에 의해 타락할 뿐이다... 유림 선생의 아나키즘 첫 장에 늘 쓰여 있던 문구지.. 오늘날 무정부주의를 지향하는 주장을 하면 미친놈 소릴 듣겠지.. 이 복잡해진 세상에, 이 다양하고 결코 선한 인간들만의 세상이 아님을 인정하지만.. 단지 인간성.. 인간관계와 그 자율을 보장하는 사회제도의 필요성을 말하는 게지..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와 그 독립성은 인정이 되어야 된다는 말이지..”


비단봉 오르기 직전 전망대


7월 23일_일_06:30

비단봉 내림길을 왼쪽으로 크게 돌아 내리니 관목 숲을 벗어나면서 광활한 배추밭 단지가 펼쳐진다.. 군데군데 물웅덩이까지 만들어가며 대간길 한가운데가 온통 배추 밭 경작으로 연두색 초원을 이루어 잠시 큰 농장의 한 구석에 서 있는 느낌으로 경치가 좋다고 느꼈으나, 가장자리를 따라 대간 길을 이어가면서 엄청난 잘못을 깨닫는다. 서울에서 고랭지 배추는 몇 배로 비싸고 맛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온통 산마루 전체를 개간할 만큼 이 땅의 농경정책이 답보하고 있는 것일까.. 비료포대 비닐.. 척박한 돌밭에 비료의 힘이 아니면 생육할 수 없는 환경, 바람에 날려오는 농약냄새, 아니 농약을 갖다 퍼붓고 있는 모양이다. 폭우에 함몰된 이랑들.. 저 작은 흙 쓸림이 산사태로 이어지겠지.. 마루금 꼭대기까지 시멘트 포장길을 만들고 농사용 차량이 싣고 오는 인간의 잘못된 오염들이 매봉산 고스락을 물들이며 흉물스런 까까머리를 모자 씌운 듯 잡목 숲을 머리에 이고 있다. 

 나름대로 어려운 시절의 생계 수단으로 대책을 세웠겠지만, 오늘날 발전된 나라의 힘으로 이젠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새로운 대책의 조림 사업으로 전환하고, 보상을 통해서라도 낮고 비옥한 지역으로 경작지를 옮겨야 할 것이다. 배추밭을 가로질러 1274봉 헬기장에서 짙은 안개로 가려진 8기의 풍력 발전기를 올려다보며 그 거대한 자연의 힘을 실감하지만 그 주변을 좀 더 녹화하지 못한 채 풀 한 포기 없는 자갈길을 만들어 놓은 태백시의 수백억 공사 뒷마무리에 또 한 번 실망한다. 개인 날 사진으로 보던 유럽풍의 낭만이 송두리째 곤두박질치며 차라리 안갯속에 묻힌 채 희미한 모습을 올려다보며 애써 발 밑을 외면한다. 


7월 23일_일_7:00

 마지막 발전기 아래 공터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며 느긋한 아침을 즐긴다. 지난주 빗 속에서 물에 젖은 김밥으로 허겁지겁 때우던 식사가 떠오르고 오늘은 호화로운 조찬이다. 대간 길에 처음 동참한 박교수와 친구들을 위해 캔 막걸리를 준비했으나, 날씨가 덥질 않아 아직은 이슬이가 제격인 것 같아 그냥 배낭 속에 둔 채로 하산 후에 꺼내기로 한다. 짧고 편한 구간이라 부인들을 동행한 팀들이 서넛 되고, 서로 마주 보는 눈길 속에서 신뢰와 격려를 읽으니 참 보기 좋다. 다음 구간엔 물푸레가 꼭 동행하여 지난 새해 첫날 삼도봉에서의 고통스러운 대간길 추억을 떨쳐내길 바래 본다.  

매봉산 직전 배추단지


7월 23일_일_07:30

 아침식사 후 대간길에서 조금 비켜서 있는 매봉산 정상 천의봉에 올라 주위를 조망해 본다. 발아래 작은 피재를 지나 구봉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저곳에서 긴 행군으로 내 고교 시절의 학교 뒷산 부산의 구봉산을 거쳐 다시금 몰운대에서 혈청소 앞바다로 빠져드는 이 땅의 동쪽 줄기를 쓰다듬으며 걸어가리라.. 생각만 해도 신이 난다. 남쪽 태백으로 이어지는 35번 국도가 비 개인 아침을 선명하게 줄을 그어가다가 두문동재에서 내려오는 38번 국도를 만나 황지 쪽으로 모습을 감춘다. 일제강점기 혈 지른 등으로 불리는 매봉산 어느 한 구석에 있을 상처들도 이 녹음으로 치유되어 아픈 역사의 상흔들로 인한 고통을 잊어가기를... 

 천의봉에서 올랐던 길을 다시 내려와 오른쪽으로 크게 꺾어 북동으로 방향을 잡아 내림길을 밟으니 다시금 발전시설로 통하는 포장길을 만나고 1145 안부에 내려서니(08:00) 개간된 밭 한가운데 낙동정맥 출발점의 표지로 둥근 초지를 조성해 놓아 그런대로 안타까움을 달래주는 것 같다. 아쉬운 맘으로 주변 배추단지를 둘러보며 서성이다가 피재를 향한 내림길을 시작하니 몇 분간은 배추밭 가장자리를 더듬어 참나무 우거진 숲으로 탈출한다. 잠시 후 낙동정맥 갈림길 표지 판 앞에서 작은 피재 쪽으로 몇 걸음 낙동정맥을 맛본 후 다시 피재 내림길로 편한 걸음을 옮긴다.  


7월 23일_일_08:35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피재(삼수령)에 도착하여 아침 화장과 충분한 휴식을 즐긴다. 한껏 멋을 부린 삼수령 상징탑이 너무 현대적이라 조금은 전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튀는 느낌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빗방울 가족들의 기구한 운명을 읽으며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아빠는 한강으로, 엄마는 낙동강으로, 아가는 오십천으로.. 그렇게 흘러 동해, 남해, 서해가 뒤섞이는 바다 한가운데서 만났을까.. 안전한 피난처로 알려졌던 피재, 사실은 한강과 오십천의 분수령을 이루고, 작은 피재에서 낙동강과 오십천이 분수령을 이루니 합쳐진 삼수령이 갖는 의미도 그런대로 힘을 갖는다. 역시 삼각이나, 세 점을 이루는 안정감과 완성감이 주는 또 다른 기력을 느껴본다. 삼도봉의 그것처럼... 

피재-삼수령


7월 23일_일_09:00 

 피재를 출발하여 잠시후 된각마을과 적각마을을 잇는 노루메기 포장된 소로에서 숲길로 올라선다. 짧은 오름으로 951봉, 944봉 안부를 오르내리며 오른쪽 초지의 보호 철책들이 망가진채로 방치되어 있어 밤길엔 매우 불편하겠다. 사람이 다니는 길에서 조금만 비켜나서 줄을 쳤으면 상하지도 않을 텐데.. 참 아쉬운 방책들이다. 한 뼘 땅은 서울이나 이곳이나 다 아깝긴 하겠지만.. 지천으로 피어 있는 야생화들의 꾸밈없는 어울림에 각박한 우리들의 모습이 비치면서 부끄러워진다. 짙은 녹음 속을 걸어면서 행보를 늦추고 천천히 내림길을 밟아 왼쪽 창죽마을과 오른쪽 돌밭마을을 비스듬히 이어주는 새목이재에 내려서면서 풀숲으로 뒤덮인 임도를 가로지른다.(10:10)  

 다시 언덕을 올라서서 20여분 오랜만에 땀이 날 정도로 마지막 오름을 거쳐 960봉 안부에 올라서니 고도를 유지하며 평탄한 정상을 이루다가 (가짜) 건의령 임도 공터에 내려선다.(10:40) 이곳을 건의령으로 착각하고 상사미 마을로 하산하는 수가 많은 모양이다. 10여분 휴식을 취하면서 무겁게 아껴온 막걸리를 비우고 한결 가벼워진 배낭으로 작은 암릉을 넘어 건의령으로 향한다. 내림길 직전 조망처에서 대간 남진 길을 밟고 계신 solti님을 만나 반갑게 손 잡는다. 블로그를 통해 얼굴을 알아 봐 주시니 영광스럽다. 지리산까지 즐거운 걸음 이어가시길 빈다. 제천 고향마을 '솔티'에서 따온 이름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현저동 101번지 독립문을 지나쳐 자릴 잡은 서대문 구치소에서 보내는 영어의 첫날밤은 꼬박 뜬눈으로 앉은 채 밤을 새우며, 낮에 본 유림 선생의 장례식 충격으로 부모 잃은 슬픔처럼 밀려오는 회한과 홀로 남은 듯한 외로움에 불안한 아침을 맞아야 했다. 나의 행동이 과연 국가와 민족에 어떤 해를 끼친 것인가.. 나의 아내는 과연 어떤 죄과를 짊어져야 하는 것일까.. 평생을 옥죄어 오는 어떤 큰 권력의 틀 속에서 앞으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은 없는 것일까.. 대낮 입방 절차를 거친 후 소위 감방장이라는 다소 험해 보이지만 젊은 얼굴의 친구가 흰 벽에 붙여 놓은 검정색 종이 바둑알이 밤새도록 붙어 있다.
“저, 김일성 눈깔을 응시하여 이겨내야 떨어진다. 잠시라도 눈을 떼지 말고 눈깔을 뽑아!”
재판을 기다리며 한 달여를 보냈으나 별로 부인할 것도 없는 탓에 검찰에 다시 불려 나갈 일도 없고, 아내의 소식과 아이들의 소식이 궁금하여 가까스로 교도관을 통해 친구의 면회를 얻어냈다. 이미 출근하기로 되어 있던 영등포 부근의 고등학교에서는 부랴부랴 다른 선생님으로 교체하였고, 큰 아이는 몇몇 친구들의 도움으로 일단 학교에는 입학하여 어린 동생을 보살피며 잘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에 안도한다. 단지 요즘 분위기가 흉흉하여 재판 기일이 다소 지연될 것 같다는 소식이다. 빨리 재판을 통하여 아내라도 어떻게 풀려나야 될 텐데...
인왕산 꼭대기에 5월의 녹음이 짙게 드리우고, 간간이 새하얀 암벽 위에 눈물 같은 설움이 흐른다. 쇠 창틀 너머 모래 땅 빈 터에 봄비가 제법 세차게 뿌리는 5월 초.. 살찐 쥐 두세 마리가 빗속에서 한껏 누리는 자유가 부럽다. 아침 보리밥을 물에 말아먹으며 골라 놓은 나팔꽃씨 몇 개를 창밖으로 던져 준다. 마주 보이는 옥사의 창 너머로 이쪽을 향해 통방을 하려는 손짓 수화 놀음이 어색하여 고개를 돌린다. 이곳에 갇힌 세계에서는 공범을 동행한 다는 것이 큰 위안이라도 되는듯하다. 그러고 보니 내 아내가 이곳에 함께 있음에도 나는 전혀 위안이 되질 않는구나..
친구의 면회가 며칠 뜸한가 싶더니 5월 중순의 이른 새벽이 갑자기 요란스럽다. 마치 전쟁이라도 벌어진 듯 갑자기 교도관들의 비상소집과 호르라기 소리.. 멀리서 탱크의 굉음 비슷한 진동이 울려온다. 혹시 전쟁이라도.. 악몽 같은 순간의 아침이 밝아 왔으나 도무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서대문 구치소의 갇힌 세계에서, 하루아침에 밀려오는 정치권력의 뒤바뀌는 서슬을 영문도 모른 채 맞이하고 있었다.


 

건의령에서 본 상사미 마을


7월 23일_일_11:10

  7시간의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매봉산구간 종주를 마무리하고 건의령(建儀嶺, 巾衣領, 寒衣嶺)에 내려서니 오른쪽 맞은편 언덕 성황당 나무 아래 百人敎君子堂이 허물어 질듯 명맥을 유지한 채 어느 지나가던 밤길의 산행객이 부어 놓은 술 한잔이 집을 지키고 있다. 고려 충신들이 미련 없이 벗어 놓은 관복들은 사라지고 눈치껏 자리만 탐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정치꾼, 고위 공무원들만 그득한 세상이 한심스럽다. 백 명을 모아 가르침에 전력하던 선인들의 고귀함도 사라진 이 척박한 땅 아래로 터널 공사를 위한 기계소리만 요란하다. 건의령 오름길을 넓히려던 공사는 중단되어 천만다행이다. 차라리 터널이 친 환경적일지도.. 내리막길의 진흙이 매우 찰지어 습기 찬 땅임에도 양초처럼 물기를 머금지 않는다.  

 검룡소 힘찬 물이 상사미(參.士美) 다리를 거쳐 내 지친 알몸을 감아 돌며 숱한 상념을 씻어 내린다.   


7/24 배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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