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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마아빠 Feb 21. 2022

드디어. 공사. 시작.

공사일지 제7일

전기 배선 작업(좌),우리가 고른 조명을 도면에 표시(우)

공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내게 전기란 단어는 큰 의미가 없었다. 내가 세 들어 사는 집에 설치된 형광등과 스위치가 곧 전기였다. 심지어 두꺼비집이 어딘지도 모른 채 계약기간을 채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얘기가 다르다. 지난 일주일 동안 마치 30년 동안 등한시해온 전기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전기에 매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조명에 매진했다. 조명을 직접 골라본 사람은 알 거다.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조명의 세계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방대하고 세분화되어 있었다. 며칠 동안 인터넷을 뒤졌지만, 그 무궁무진함에 압도되어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 없었다. 결국 무한한 선택지에서 헤매지 말고 유한한 선택지가 있는 조명가게를 찾아가기로 했다. 조명가게 몇 군데를 전전하다 결국 집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꽤 규모가 있는 팔마전기조명에서 쇼부를 보기로 했다. 두꺼운 카탈로그를 섭렵하고, 의자에 올라가 천장에 달린 조명들을 줄자로 재보기를 며칠. 결국 집에 들어갈 16개의 조명을 모두 정하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 최소 10년은 조명과 다시 조우할 일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공사 전 계단(좌), 공사 중 계단(우)

80년대에 많이 지어진 2 양옥은 대부분 실내 계단이 없다. 우리집도 원래  안에 계단이 없었는데, 전주인이 리모델링하면서 계단을 만들었다. 문제는  계단위치가 굉장히 애매하다는 것이다. 계단을 둘러싼 공간을 거실의 일부 자니 활용성이 떨어지고, 그렇다고 비워두자니 너무 많은 공간을 낭비하는  같았다. 고민 끝에 우리는 계단 주변 공간을 통로  수납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먼저 계단 양쪽으로 가벽을 쳐서 계단과 거실을, 그리고 계단과  뒤의 벽을 분리했다. 그리고 계단 아래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을 달아 창고를 만들었다. 이곳은 아마 공기청정기가 들락날락하는 곳으로 쓰일 것이다. 창고 오른쪽으로는 아치형 통로를 만들어 화장실로 돌아가는 동선을 만들었다. 이도 저도 아닌 공간에서  멋진 공간으로 탈바꿈할  같다.

원래 있던 붙박이장(좌), 벽돌로 막아버림(우)

안방에 있는 붙박이장도 적잖게 속을 썩였다. 문만 새로 달아 계속 쓰는 것을 생각해봤지만, 붙박이장 뒤가 계속 거슬렸다. 만약 전주인이 벽을 커팅해서 그 안에 붙박이장을 집어넣었다면 단열 문제를 의심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장 뒤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멀쩡한 장을 뜯어 버리는 셈이 될 것이었다. 긴가민가했지만 마음의 평정을 위해 뜯기로 했다. 뜯고 보니 붙박이장 뒤로는 판넬 한 장이 집 안과 밖을 경계 지을 뿐, 어떠한 단열도 돼 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도시가스 관이 판넬 안쪽을 따라 설치돼 있었고, 바깥에서 관이 들어오는 구멍은 훤히 뚫려 빛이 새어 들어올 정도였다. 만약 장을 뜯지 않고 그대로 썼다면 우린 집 안에 구멍이 뚫린 지도 모르고 살뻔했다. 새로 장을 짜 넣을까 고민했지만 도시가스 관이 거슬려 그냥 벽을 막아버리기로 했다.

문 없는 우리집(좌), 문 있는 우리집(우)

사실 2층 손님방에서 테라스로 나가는 문은 예전 계획의 잔재라고 볼 수 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2층에 있는 방을 털어서 공간을 넓게 한 뒤 1층에 있던 주방을 2층으로 옮기려고 했다. 1층보다 해가 잘 드는 2층에서, 폴딩도어를 활짝 열고 테라스로 나가 텃밭에서 싱싱한 채소를 수확해 요리하는 게 아내의 오랜 염원이었다. 하지만 말이 방 하나를 터는 거지 실상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벽을 헐려면 그 하중을 다른 곳에서 받아줘야 했고, 그러려면 새로운 H빔을 박아야 했고, 새로운 H빔을 박으려면 그 H빔을 지탱할 또 다른 H빔이 필요했다. 가면 갈수록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꼴이었다. 결국 2층으로 부엌을 옮기는 계획은 마음속에 고이 접어두기로 했다. 주방과 텃밭을 연결하기 위해 고안된 이 문은 이제 손님들이 테라스로 나가기 위해 열고 닫는 문으로 기능할 것이다.


지금 아내와 난 공사 중인 순천 집을 뒤로하고 서울 엄빠집에 와있다. 아내가 예정일을 3주 앞둔 터라 산부인과와 320km 떨어진 순천에 있는 게 불안했다. 공사 과정을 사진으로만 받아보는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다. 며칠에 한번씩 과장님이 보내주시는 현장 사진을 보며 환호성을 지르거나 미간을 찌푸리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지난 10월부터 컴퓨터로만 봐오던 도면과 입면이 드디어 우리집이라는 실물로 발현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꽤 흥미진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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