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일지 제7일
공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내게 전기란 단어는 큰 의미가 없었다. 내가 세 들어 사는 집에 설치된 형광등과 스위치가 곧 전기였다. 심지어 두꺼비집이 어딘지도 모른 채 계약기간을 채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얘기가 다르다. 지난 일주일 동안 마치 30년 동안 등한시해온 전기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전기에 매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조명에 매진했다. 조명을 직접 골라본 사람은 알 거다.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조명의 세계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방대하고 세분화되어 있었다. 며칠 동안 인터넷을 뒤졌지만, 그 무궁무진함에 압도되어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 없었다. 결국 무한한 선택지에서 헤매지 말고 유한한 선택지가 있는 조명가게를 찾아가기로 했다. 조명가게 몇 군데를 전전하다 결국 집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꽤 규모가 있는 팔마전기조명에서 쇼부를 보기로 했다. 두꺼운 카탈로그를 섭렵하고, 의자에 올라가 천장에 달린 조명들을 줄자로 재보기를 며칠. 결국 집에 들어갈 16개의 조명을 모두 정하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 최소 10년은 조명과 다시 조우할 일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80년대에 많이 지어진 2층 양옥은 대부분 실내 계단이 없다. 우리집도 원래 집 안에 계단이 없었는데, 전주인이 리모델링하면서 계단을 만들었다. 문제는 이 계단의 위치가 굉장히 애매하다는 것이다. 계단을 둘러싼 공간을 거실의 일부로 보자니 활용성이 떨어지고, 그렇다고 비워두자니 너무 많은 공간을 낭비하는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우리는 계단 주변 공간을 통로 겸 수납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먼저 계단 양쪽으로 가벽을 쳐서 계단과 거실을, 그리고 계단과 그 뒤의 벽을 분리했다. 그리고 계단 아래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을 달아 창고를 만들었다. 이곳은 아마 공기청정기가 들락날락하는 곳으로 쓰일 것이다. 창고 오른쪽으로는 아치형 통로를 만들어 화장실로 돌아가는 동선을 만들었다. 이도 저도 아닌 공간에서 꽤 멋진 공간으로 탈바꿈할 것 같다.
안방에 있는 붙박이장도 적잖게 속을 썩였다. 문만 새로 달아 계속 쓰는 것을 생각해봤지만, 붙박이장 뒤가 계속 거슬렸다. 만약 전주인이 벽을 커팅해서 그 안에 붙박이장을 집어넣었다면 단열 문제를 의심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장 뒤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멀쩡한 장을 뜯어 버리는 셈이 될 것이었다. 긴가민가했지만 마음의 평정을 위해 뜯기로 했다. 뜯고 보니 붙박이장 뒤로는 판넬 한 장이 집 안과 밖을 경계 지을 뿐, 어떠한 단열도 돼 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도시가스 관이 판넬 안쪽을 따라 설치돼 있었고, 바깥에서 관이 들어오는 구멍은 훤히 뚫려 빛이 새어 들어올 정도였다. 만약 장을 뜯지 않고 그대로 썼다면 우린 집 안에 구멍이 뚫린 지도 모르고 살뻔했다. 새로 장을 짜 넣을까 고민했지만 도시가스 관이 거슬려 그냥 벽을 막아버리기로 했다.
사실 2층 손님방에서 테라스로 나가는 문은 예전 계획의 잔재라고 볼 수 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2층에 있는 방을 털어서 공간을 넓게 한 뒤 1층에 있던 주방을 2층으로 옮기려고 했다. 1층보다 해가 잘 드는 2층에서, 폴딩도어를 활짝 열고 테라스로 나가 텃밭에서 싱싱한 채소를 수확해 요리하는 게 아내의 오랜 염원이었다. 하지만 말이 방 하나를 터는 거지 실상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벽을 헐려면 그 하중을 다른 곳에서 받아줘야 했고, 그러려면 새로운 H빔을 박아야 했고, 새로운 H빔을 박으려면 그 H빔을 지탱할 또 다른 H빔이 필요했다. 가면 갈수록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꼴이었다. 결국 2층으로 부엌을 옮기는 계획은 마음속에 고이 접어두기로 했다. 주방과 텃밭을 연결하기 위해 고안된 이 문은 이제 손님들이 테라스로 나가기 위해 열고 닫는 문으로 기능할 것이다.
지금 아내와 난 공사 중인 순천 집을 뒤로하고 서울 엄빠집에 와있다. 아내가 예정일을 3주 앞둔 터라 산부인과와 320km 떨어진 순천에 있는 게 불안했다. 공사 과정을 사진으로만 받아보는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다. 며칠에 한번씩 과장님이 보내주시는 현장 사진을 보며 환호성을 지르거나 미간을 찌푸리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지난 10월부터 컴퓨터로만 봐오던 도면과 입면이 드디어 우리집이라는 실물로 발현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꽤 흥미진진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