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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마아빠 Jul 29. 2022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어느 투두리스트 중독자의 사소한 깨달음

아침에 핸드폰을 켜면 문자 하나가 와 있다.

음쓰 봉투

개미 퇴치

방충망 전화

쿠팡 액자

제의 내가 오늘의 내게 친히 보내 놓은 투두리스트이다. 음식물 봉투를 사야 하고, 어떤 개미 퇴치약이 좋은지 알아봐야 한다. 그리고 안방 방충망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 수리를 맡겨야 하고, 쿠팡에서  액자 제작 서비스에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 놓아야 한다(진짜 별게 다 있는 갓쿠팡).


하나하나 떼놓고 보면 그리 번거로운 일들도 아니다. 하지만  투두리스트 앞에선 이상하게 가슴이 뛴다. 기분 좋게 뛰는  아니라 초조해서 뛴다.  투두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그리고 최대한 빨리  투두리스트를 비워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하다. 마지막 아이템까지 끝내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있다. 하지만  개운함 역시 오래가지 못한다. 오늘의  일들을 해치우면  내일의  일들이 슬금슬금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내일은 이불 빨래를 해야 하고, 장을 봐야 하며, 다음  서울로 가는 KTX 티켓이 풀리는 날이다. 오늘처럼 별것 아닌 일들이다. 그런데도 그냥 두면 마음이 초조하다. 초조하다고 지금 당장   있는 일들도 아니다. 이미 늦은 저녁 시간이고, 몸은 오늘의 초조함을 견디느라 피곤하다. 그러나 지금 당장 롸잇나우 초조함을 달랠  있는 방법이  가지 있긴 하다.  년에 걸쳐 어렵사리 터득한 고난도 기술이다. 바로 떠오르는  일들을  투두리스트 정리하는 것이다. 내일의 나를 위해. 아이고 고마워라.


언제부터 내가 독실한 투두리스트교인이 됐는지 모르겠다. 문제가 생기면 생기는대로 불안해하고, 문제가 없어지면 다음 문제를 기다리며 또 불안해하는 이 패턴이 어딘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얼마 전의 일이다.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서 어느 날 이런 얘기를 했다. 삶의 대부분은 문제해결의 시간이 아닌 문제를 안고 있는 시간, 즉 문제풀이의 시간이라고. 만약 문제풀이의 시간이 괴롭다면, 인생 대부분이 괴로울 수밖에 없다고.


예컨대 면접에 합격하는 순간, 주택매매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 오랜 연인에게 청혼하는 순간은 삶에서 끽해야 분단위의 분량을 차지할 뿐이다. '취직'이라는 문제가 해결되면 업무마감, 대인관계, 워라밸 등의 문제가 뒤따르고, '내집마련'이라는 문제가 해결되면 인테리어, 이사, 원금납부 등의 문제가 뒤따르며, '결혼'이라는 문제가 해결되면 성격차이, 돈벌이, 임출육 등의 문제가 뒤따른다. 인생 전체에 비하면 문제해결의 순간은 정말 미미하다. 너무 미미한 나머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나머지 99% 전부 문제풀이의 시간이다.


"인생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류의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인데도 그날은 이상하리만치 깊은 여운을 남겼다. 아마  어느 때보다도  얘기 같아서 그랬으리라. 내가 매일 불안함과 초조함에 시달리는 것은, 아마  문제풀이의 시간이 괴롭기 때문일 것이다. 근데 아이러니한 , 내가 문제풀이 과정 자체를 싫어하느냐, 그건  아니다. 막상 달려들면 열심히 하고, 일처리도 야무지게 하는 편이(라고  생각한). 그럼 도대체 뭐가 그리 불안하고 초조하냐?

생각해보면  '미해결 문제 0'이라는 가상의 종착지를 염두에 두고 달려가는 듯하다. 마치 매일 내게 주어지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행과 열을 맞춰 투두리스트로  정리해서 열심히 쳐내다 보면, 어느 순간  리스트가  비어  이상 초조해할 필요가 없는 절정의 순간이 도래하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이렇다.  어느   삶에서 모든 문제가  하고 사라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초조함과 불안함은  순간이 오기 전까지 내가 응당 감내해야 하는, 혹은 투두리스트를 비우지 못했기에 응당 받아야 하는  쯤으로 여기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글로 적고 보니 좀 어이가 없다. 아무런 문제도 없는 삶,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오늘만 해도 벌써 몇 개의 문제가 오고 갔는가. 20주 된 딸아이가 평소보다 2시간 일찍 깨는 바람에 수면부족으로 하루 종일 정신이 혼미했고, 꿈자리가 사나웠던 아내와 아침부터 한 판 했고, 오후에 미리 연락 주기로 했던 창문 수리 기사가 전화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바람에 빨래를 반밖에 못 널어서 나머지를 건조기에 돌려야 했고. 또 오늘뿐이랴. 앞으로 올 하루하루 역시 예상치 못한 문제의 연속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다. 장담하건대 지금 잘만 돌아가는 저 에어컨도 언젠간 고장이 날 것이고, 지금 내 주머니 안에 고이 들어있는 이 지갑 역시 언젠간 자취를 감출 것이다. 또 지금 마루에서 색색거리며 잘만 자는 내 딸아이는 언젠간 감기에 걸릴 것이며, 난 언젠간 중요한 출장길에서 비행기를 놓칠 것이다. 피하려야 피해 갈 수 없는 일들이다. 억울해할 것도 없는 게, 이게 인생이란 게임의 기본값이다. 순탄하게 갈 수도 있었던 인생이 운 나쁘게 꼬인 게 아니라, 이게 원래 인생인 것이다. 에어컨이 한 번도 고장 나지 않는 삶, 지갑을 한 번도 잃어버리지 않는 삶, 몸이 한 번도 아프지 않은 삶, 비행기를 한 번도 놓치지 않는 삶 따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 뿐이다.


그리고 설령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삶이 존재한 , 과연 그런 삶이 행복할까?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해야  , 해결해야  문제가  하나도 없는 나날들. 쉽게 상상이 가지 않지만, 게임에 비유해볼  있다. 마치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져야 하는 게임에서, 어느 순간 모든 퀘스트가 저절로 깨지고, 몬스터들이 알아서 나를 비껴간다면, 그걸 게임이라고 부를  있을까? 과연  어떤 이유로  게임을 하며, 게임을 통해  얻을  있을까? 물론  대단한 자기계발을 위해 게임을 하는  아니지만,  하나 까닥  해도 저절로 '미션컴플리트' 뜨는 게임을 과연 무슨 재미로 할까? 마치 스타크래프트에서 치트키란 치트키는  써서 컴퓨터와 71 붙어서 이겨도 재미는커녕 자괴감만 드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바로 게임종료를 누르고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이딴 게임을 만들었냐고 항의할  같다.


다시  투두리스트 얘기로 돌아가서, 그럼  개똥철학적 깨달음을  삶에 적용한다면? 

먼저 알아차려야 한다. 문제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니, 문제가 아닐뿐더러, 지극히 정상이라는 .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러는 중이고, 내일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인생이란 게임의 기본설정이고,  기본설정은 개인의 의지나 투두리스트 따위로 어찌해볼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껏 느껴온 초조함과 불안함은 상당 부분  알아차림의 부재에서 비롯된 듯하다.  문제를 마치  집에 허락 없이 들어온 도둑놈 취급했다. 옆방에 도둑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고, 빨리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과,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뿐이었다. 집요하게 투두리스트를 만들어     내보내다 보면 언젠간 다시 조용한 집을 되찾을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웬걸. 불을 켜고 보니 도둑놈들이 아니라 룸메이트들이었다. 전입신고도 했고, 공과금도 꼬박꼬박 내면서 착실하게 살고 계신 분들이었다. 그중  명을 붙잡고, 혹시 여기  혼자 살았던 적도 있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여긴 항상 머릿수가 똑같이 유지되는 쉐어하우스라고 답했다. 그러고 보니 집도  집이 아니라 쉐어하우스였다.  집도 아닌 쉐어하우스에 불을 꺼놓고 살면서 빨리  혼자 사는 집이 되길 바라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알아차리니까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더냐? 며칠 안 됐지만 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퇴사하고 양양으로 서핑귀촌가신 분들처럼 물 흐르듯 살게 된 건 아니지만, 한 가지는 두드러지게 달라졌다. 바로 투두리스트를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문제가 생기는 즉시 부랴부랴 투두리스트를 업데이트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통제하려 했다면, 이젠 문제가 생겨도 바로 패닉상태에 빠지기보다, "아 오늘치 문제는 이놈인가 보다" 식으로 먼저 상황을 '비문제화'하려고 노력한다. 이게 생각보다 용하다. 문제가 닥쳤을 때 그걸 위기상황으로 인식하느냐, 아니면 빨래나 설거지처럼 그날그날 마땅히 일어날 법한 일로 인식하느냐는 굉장히 다른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전자는 공복에 마시는 더블에스프레소처럼 코르티솔이 내 오장육부로 퍼져 나가는 게 피부로 느껴지고, 후자는 날 기다려주지 않고 출발해버린 버스 뒤꽁무니에 대고 "ㅆㅂ" 한번 외치고 돌아서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내가 얼마나 오래 '문제의 시간' 속에 머무느냐의 차이다. 투두리스트를 끊임없이 매만지고 다듬었던 건, 어찌 보면 계속 나 자신을 초조하고 불안한 시간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반면 지금은 투두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않는 나머지 시간엔 초조함과 불안함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다.


이 철학적 깨달음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 글의 글자수만큼이라도 효력을 발휘해준다면 난 아마 전보다 꽤 행복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지, 행복은 밖에서 찾는 게 아니라 벌써 내 안에 있는 거라고 했지. 내 안 어디에 꼭꼭 숨어 있는 걸까? 한번 찾아봐야겠다. 지금은 바쁘니까 안 되고, 나중에 시간 날 때 해야지. 그래도 까먹을 수 있으니까... 어디보자... 투두리스트를 어디에 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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