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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마아빠 Nov 19. 2022

영국 결혼식에 초대받다

영국 결혼식 탐방기 - 1

<어바웃타임>을 처음 보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결혼식이었다.

와씨, 결혼식을 저렇게 재밌게 해도 되는 거였어?

형형색색의 드레스, 비 오고 바람 불고 난린데 오히려 더 신나 하는 사람들,

결혼식보다는 하나의 큰 파티 같은 분위기.

저런 결혼식이라면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 9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난 영국인 아내와 결혼을 했고, 아빠가 되었다.

우리가 직접 <어바웃타임>처럼 결혼식을 올리진 못했지만,

때마침 아내 친구 린다가 영국에서 청첩장을 보내왔다.


"네 첫 영국 결혼식으론 나쁘지 않은 경험일 거야."

M6 위를 110km로 밟던 아내가 말했다.

M6는 영국의 허리에서 시작해 스코틀랜드 국경에 닿는 영국에서 가장 긴 고속도로이다. 영국의 경부고속도로쯤으로 생각하시라.

(재밌는 사실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면 영국엔 스펠링과 발음이 매칭이 안 되는 얄궂은 지명들이 생각보다 엄청 많다.

아내 언니네 식구가 사는 다비도 스펠링은 'Derby'인데 '더비'가 아닌 '다비'로 읽고, Leicester는 '레이체스터'가 아닌 '레스터', Worcester는 '워체스터'가 아닌 '우스터', Postwick은 '포스트윅'이 아닌 '포직'. 영국인들은 우스갯소리로 미국이 자기네 언어를 파괴했다고 놀리곤 하는데, 내가 볼 땐 본인들도 만만치 않다.)

M6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 동안 창밖의 지형이 서서히 변해갔다.

아랫동네의 완만하고 둥그스름했던 언덕은 높고 가파른 산이 되어 우릴 스쳐 지나갔다.

"린다 가족이 스코틀랜드 출신이라 아마 케일리 추겠네."

케일리로 말하자면 스코틀랜드 전통 사교춤으로, 스코틀랜드에선 이걸 출 줄 아느냐 모르느냐가 간첩 판명의 잣대로 작용한다.

하지만 영국 사교춤이라 해서 제인 오스틴에 나오는 점잖고 고풍스러운 춤을 상상한다면 오산이다.

'럭비선수들이랑 케일리를 췄다간 어디 한 군데 뿌려져서 집에 간다'가 상식인만큼, 케일리는 얼마든지 육탄전으로 변모할 수 있는 과격한 춤이다.

일단 케일리 얘기는 잠시 미뤄두기로 하자.


고속도로에서 빠져 목적지가 있는 카트멜 마을로 들어서자 일관된 건물양식이 눈에 띄었다.

흑백의 코티지들과 헛간,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경계 짓는 투박한 돌담이 찻길 양쪽으로 펼쳐졌다. (코티지는 보통 영국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집을 뜻한다.)

오는 차가 먼저 지나갈 수 있게 길옆으로 차를 붙이며 아내가 말했다.

"원래 이런 돌담은 스코틀랜드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건데 여기도 북쪽이라 그런지 많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dyke'라 불리는 이 돌담은 접착제나 모래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건식 구조물로써, 돌 사이사이의 균형이 돌담 전체의 견고함을 좌우한다고 했다.


네비게이션의 안내와 함께 2박3일을 보내게 될 코티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길게 한번 켠 뒤 돌집 여러 채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뒷마당엔 린다의 가족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저마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코티지 뒤편으로 가니, 윈도우XP 바탕화면 같은 절경이 드러났다.

하늘에 닿을 듯 끝없이 펼쳐진 언덕엔 소와 양 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먹구름을 잔뜩 머금은 하늘은... 을씨년스러운 장엄함이라고 해야 할까, <반지의제왕>에서 볼 법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풍경 감상을 마치고 헛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참 이걸 한글로 '헛간'이라고 쓰니 영 느낌이 안 사는데,

영어로 'barn'이라고 하면 주로 농가에 딸린 세모 지붕에 네모 몸뚱이를 가진, 그리고 건물 앞뒤로 마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큰 문이 난 건축물을 말한다.

헛간의 용도는 가축이 사는 곳이자 곡식과 건초를 보관하는 곳간이기도 하다.

영국에선 낙후된 헛간을 수리하여 가정집으로 쓰기도 하고, 아니면 예식장이나 파티룸으로 개조하여 대여하는 서비스들이 많다고 했다.

린다의 결혼식이 열리는 코티지 옆에도 큰 헛간이 하나 있었는데, 식 당일 피로연 만찬이 바로 여기서 열릴 예정이라고 했다.


헛간 앞으로 가니 케이터링 업체 사람들이 온갖 물건들을 나르며 피로연 준비에 한창이었다.

그 순간 헛간 안에서 패딩잠바와 청바지를 입은 1.6m 체구의 여성이 우리를 향해, 정확히는 아내를 향해, 달려나왔다.

그녀는 바로 내일 결혼식의 주인공이자 아내의 20년지기 친구, 린다였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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