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결혼식 탐방기 - 4
오후 두 시 반쯤이 되자 바깥에서 웅성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문 밖을 빼꼼히 내다보니 근사한 정장과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세시에 큰집 앞에서 거행될 결혼식에 가는 모양이었다.
수일에 걸쳐 진행되는 결혼식의 관람포인트 중 하나는 바로 다른 하객들의 극적인 변신을 목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아니면 오늘 아침 등산할 때까지만 해도 츄리닝에 후디 차림이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미드 법정물에 나올 법한 사람들로 변신하는 모습은 꽤나 볼만 하다.
베일리 옷 입히기 사투를 기적적으로 15분 만에 마치고 아내와 큰집 앞으로 갔다.
린다 가족이 스코틀랜드 출신인 만큼 킬트(스코틀랜드에서 남자가 입는 체크무늬 치마)를 입은 남자들이 여럿 보였다.
예전에 런던 길바닥에서 킬트 입은 사람을 딱 한번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땐 큰 감흥 없이, 역시 세상은 넓고 개취는 다양하구나,는 생각과 함께 갈 길을 마저 갔었다.
근데 이렇게 킬트남들을 떼거지로 보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고, 심지어는 멋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젠더리스적 매력에 매료된 나머지 한 어르신 뒤로 몰래 다가가 입고 계신 킬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자세히 보니 아까 저쪽에서 본 킬트와는 또 다른 색이었다.
옆에 있던 아내 말로는 가문마다 킬트에 입히는 색조합이 다르다고 했다.
예를 들어 Murray네는 노랑, 파랑, 네이비, Fletcher네는 빨강, 네이비, 회색, 이런 식으로 가문마다 하나의 체크무늬 색조합이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오는 거라고 했다.
한 가지 뜨악했던 사실은 킬트 한벌이 거의 50만 원 돈 한다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허리춤에 차는 단도까지 풀세트로 갖추려면 꽤나 큰 목돈이 필요할 것이었다.
근데 생각해보니 한복도 비싼 건 어마무시하게 비싸니, 킬트도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세시부터 시작된 결혼식은 신랑 대니 아버님의 축사를 시작으로, 1인 싱어송라이터의 달달한 노래 한 곡, 신부 린다 친구의 덕담 한마디, 마지막으로 린다와 대니의 입맞춤에 뜨거운 갈채를 보내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식이 끝나고 린다 친구가 했던 말 한마디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You can give without loving
사랑 없이 줄 수는 있지만
But you cannot love without giving
주지 않고 사랑할 순 없다
당시엔 그저 "오 운율 미쳤네" 하고 말았는데, 그 여운이 생각보다 오래가셨다.
아빠가 된 후로 새로 곱씹게 된 단어가 있다면 바로 이 "주다"라는 단어일 것이다.
내 일부를 내어주는 것.
그것은 시간일 수도, 돈일 수도, 감정일 수도, 마음일 수도 있다.
아빠가 되기 전에도 가족을 위해, 친구를 위해, 연인을 위해 내 것을 내어준 적이야 있다.
하지만 지금과 다른 점을 꼽으라면, 예전엔 내 몫을 먼저 챙긴 후 남은 것에서 조금 떼어 주는 식이었다면, 이젠 내 몫이 없더라도 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졸려 죽겠지만 베일리를 먼저 재워야 하고, 배고파 죽겠지만 베일리 밥을 먼저 챙겨야 하고, 밖에 좀 나가고 싶지만 저녁 6시부터 불 끄고 쥐 죽은 듯 살아야 하는 일상이 낯설고 괴로웠다.
나부터 먼저 챙기고 봤던 삶을 초기화하고, 가족을 우선하는 소프트웨어를 새로 까는 것, 이게 그 어떤 아빠 노릇보다 백 배 천 배 어려웠다.
결혼식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새삼 가정을 이룬다는 건 참 어려운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을 집에 비유하자면, 아내와 내가 지붕의 양면을 이루고, 그렇게 만들어진 집 안에 베일리가 산다.
두 면이 공평하게 힘을 받았을 때 비로소 지붕이 곧게 선다.
어느 한쪽이 무리하면 지붕은 무너지고 만다.
예전엔 화목한 가정이 당연한 건 줄 알았다.
길을 가다 아이 앞에서 다투는 부모들을 보면, 저들은 뭐가 그리도 분하고 억울할까, 문제가 있으면 대화로 풀면 될 걸,하고 못마땅한 시선으로 흘기곤 했다.
하지만 이젠 안다.
화목한 가정은 절대 기본값이 아니라는 걸.
이젠 길에서 웃고 떠드는 가정을 보면 경외심마저 든다.
저 가정을 일구기 위해 배우자 간에 얼마나 많은 대화가 오갔을 것이고, 얼마나 많은 감정을 표현하고 감내하고 헤아렸을지.
근데 또 신기한 건 그렇게 힘들게 꾸려놓은 가정이 동시에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딱히 뭘 하지 않아도 단지 그 집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게 배당되는 기쁨과 온기가 있다.
침대에 누워있는데 옆에서 아내와 베일리가 꽁냥꽁냥거릴 때, 잠든 베일리가 잠꼬대와 방구를 원플러스원으로 선사할 때, 이런 순간들은 황홀함 그 자체이다.
내 가족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내가 쬐고, 내가 뿜어낸 에너지를 그들이 쬐고, 이 과정을 돌고 돌며 반복하다 보면 가족이라는 전체가 개인이라는 부분의 합보다 커지는 기적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런 얘길 하면, 그럼 결국 좋은 게 힘든 걸 상쇄시키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글쎄 잘 모르겠다.
힘든 건 미친 듯이 힘들고, 좋은 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둘을 한 등식 안에 집어넣기엔 복잡미묘한 구석이 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나 혼자만 청승맞게 감상에 젖어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들도 같은 구절에서 비슷한 감동을 느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궁금증은 잠시 덮어두고 우선 몸을 풀기로 했다.
곧 케일리를 춰야 하니까.
(5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