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바라기 Oct 27. 2024

'붉은 손톱달' 연극을 보고

탈북민의 상처와 아픔

오랜만에 대학로에 갔다. 결혼하고 신혼 때 남편과 오고 그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았다. 

'붉은 손톱달'이라는 연극을 봤다. 계단으로 한참을 아래로 내려가다보니 작은 소극장이 나왔다. 의자 몇 개 놓여진 작은 무대, 난 두번째 줄에 앉았다. 첫번째 줄은 너무 부담스럽지만 세번째 줄은 배우와 같이 호흡하기엔 너무 멀다는 나만의 계산법이었다.

전혀 사전 지식 없이 보게 된 연극, 5명이 1인 2역도 해내며 극을 이끌어 갔다. '말모이 축제'때 올렸던 각 지역 특색이 살아있는 연극을 시리즈로 공연 중이었다. 오늘은 북한 언어와 관련한 연극을 하는 날이었다. 이 극은 여자 탈북민이 하나원에서 교육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나원에서 나와 피나는 노력으로 변리사가 되고, 남한과 북한을 비교하는 라디오 방송에도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인지도가 쌓여갈 때쯤, 가짜 탈북민으로 오해받게 된다.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인터넷 상에서 마구 쏟아내는 말들, 여 주인공은 겨우 버티고 버티며 견딘다. 청취자들은 탈북민에 진짜 탈북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어떻게 탈북했는지, 탈북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요구한다. 상대방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무조건 내 말만 하고 내 주장만 한다. 이미 탈북민이 거짓말 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려 버린다. 탈북민은 왜 내가 이런 걸 말해야 하냐고 소리치며 너무나 힘들었던 탈북의 과정을 말하는 것 대신에 방송 하차를 결정한다. 


  극을 보는 내내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단순히 무거운 주제여서가 아니었다. 난 현재 우리 나라에 살고 있는 탈북민들의 고충과 어려움들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단순하게 그들이 원해서 탈북해 우리 나라에 정착했다는 표면적 사실만을 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탈북민들이 갖고 있는 상처와 아픔에 다가가며 소통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가 오버랩되었다. 아무리 소리쳐도, 아무리 울부짖어도 아무도 들으려하지 않는 사람들......


얼마 전, 도덕 교과에서 통일에 대해 가르쳤다.북한의 실태나 현재 남북 상황, 이산 가족의 아픔들에 대해서 얘기했지만 탈북민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질 않았다. 내 머릿 속에서 열외의 대상이 아니었나 싶다.

많은 사람들의 잘못된 관심, 비난의 목소리에 아파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주연 배우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얼마나 순식간에 몰입하며 눈물을 쏟아내는지 나도 모르고 그 아픔 속에 빨려들어갔다. 아픔의 본질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 아픔 속에 같이 빠져드는 경험, 생소했지만 심적으로 참 힘들었다. 마음이 너무 무겁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연극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데 공연에 대한 설문 조사 QR이 벽에 붙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적으라고 한 질문에 '탈북민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했던 것 같다.'라고 자기 반성적인 글을 남겼다. 


통일에 대한, 북한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 하면서 또 하나의 본질에 다가가지 못하고 숨어있었던 한 면모를 끄집어 내어 적나라하게 팩트체크를 한 기분이랄까? 오랜만에 본 연극이 나를 일깨운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운 꿈을 향한 도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