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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D 미식가 Jun 08. 2022

[미술의맛] 나도 그릴 수 있는 그림, 왜 작품이야?

프랑스 작가 이브 클랭이 말하는 예술-그림은 그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미술시장 열기가 뜨겁다. 특히 몇 해 전부터 시작된 단색화가 인기이다.  지난해 8월 경매에서 이우환의 동풍(150호)이 우리나라 생존 작가 중  최고가인 31억 원에 낙찰됐다.

생성과 소멸을 나타내는 수작으로 작가의 점-선-바람-조응으로 이어지는 연작 중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에 주로 해오던 바람 시리즈 작품이다.


  <이우환, East Winds, oil and mineral pigment on canvas, 224 ×181, 1984년 )


 캔버스에 점 몇 개 찍은 것뿐인데?


오늘 필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경매시장에서 어떤

작품이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가격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기사를 접한 독자들 일부는 이런 그림 ‘나도 그릴 수 있겠다’. 또는 이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고 심오하기에 아파트 한 채보다도 비쌀까?’라는 질문을 한다.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않는 독자 누구라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캔버스에 '점' 하나 찍은 것 같은데,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높은 가격이 매겨진다는 사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의문은 독자들로 하여금  미술작품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고, 그들만의 언어 같은 이질감을 가지게 한다. 독자들이 작가들의 작품은 ‘원래 그래’라고 받아들이기엔 합리적인 명분이 없어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미술에서 특히 많이 쓴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그려져 있는 것을 보는 것 즉 ‘가시성’ 이면에 다른 무엇인가를 볼 수 있는 것은 각자의 배경지식과 탐구욕, 또는 이전의 경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늘 이야기는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 내가 그리면 작품이 되지 않고, 유명 작가가 점 하나 찍으면 작품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34세의 짧은 일생을 살다 간 프랑스 화가  ‘이브 클랭(Yves Klein)'의 전시를 통해서  살펴본다.



이브 클랭(Yves Klein, 1928-1962)


이브 클랭을 생각하면 우선 IKB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라고 하는 자신만의 파란색을 특허 등록한 작가, 그리고 파란색의 단색화, 신체를 이용한 퍼포먼스가 생각난다.

 우리는 흔히 인상파의 작품을 보면서 빛의 오묘한 조화가 일으키는 아름다움에 대한 경의를 나타낸다.  빛의 아름다움은 보는 이에게 개인의 감성에 따른 다양한 예술적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예술작품을 ‘보는 것’에 익숙하고 또 이런 행위를  예술작품을 '감상한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브 클랭은 예술작품을 ‘보는 대상’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예술적 경험’ 또는 ‘회화적 경험’이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영역을 더 중요시했다. 즉 우리가 보는 예술작품이라는 눈앞에 보이는 실물보다는  작품을 완성해 가는 과정과 경험을 더 중요시했다는 것이다.


 다음 세 번의 전시회 이야기는 예술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이브 클랭의 기록이다.



1957년 밀라노 아폴리네르 갤러리에서 열린 <모노크롬의 제안, 청색시대> 전시에서 작가는 한 전시장 안에 동일한 크기, 색감, 구성을 가진 마치 서로 구별하기가 어려운 복제품 같은 작품 11점의 청색 단색화를 전시했다,  그리고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11점의 작품에 각각 다른 가격을 책정했다.


같은 크기와 색감, 구성을 가진 작품이 가격이 다르다니, 미술시장에서는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독자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든 작품들은 작가의 의도대로 각각 다른 가격으로 판매되었다.


작가의 전시에서 작품이 다 매진되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것임을 독자들은 눈치를 챘을 것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작품이 외형적 동일성을 갖추더라도 구입자는 자신이 구입하는 작품에 다른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가격에는 작품이라고 하는 대상의 가격이면에 예술가의 경험과 회화적 감성과 같은 다른 무언가에 의해 지각된다는 사실을 작가는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미술작품 없는 전시도 전시회인가?

  -보이는 작품보다는 전시의 예술적 경험이 중요해


이듬해 전시회에서는 이전보다 더 과감한 전시를 열었다.

195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텅 빔 Le Vide>에서 이브 클랭은 전시를 개최하기 전에 직접 두 사람이 무료입장할 수 있는 초대장을 만들고, 초대장을 소지하지 않는 사람은 1500프랑의 입장료를 받는 다고 공지했다.


전시 당일 전시장은 관람객들도 가득 찼고, 심지어 전시장 입구에는 들어가지 못한 인파들로  붐볐다.


 그러나 놀랍게도 실제 전시장에는 한 점의 그림도 전시되어 있지 않았다. 전시 제목처럼 <텅 빔> 전시였다 물론 이것은 기획된 퍼포먼스의 일종이었다.


작가는 예술은 어떤 작품을 소유하는 측면 외에도 작가의 예술적 경험과 작업 의도 그리고 전시장의 분위기까지 예술적 가치를 가진다는 사실을 관람객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1500프랑의 화폐는 우리가 기대하는 청색 작품의 회화가 아니라, 전시장에서 느끼는 예술적 ‘회화적 감성’ 같은 분위기와 대응되는 교환가치를 나타낸 것이다.  


 전시장은 여느 전시장과 같은 보통의 전시공간이지만 이브 클랭과 같은 전문적인 예술가에 의해 ‘회화적 감성으로 전문화’ 과정을 거치면  1500프랑의 교환가치가 부여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브 클랭이 주장하는 예술작품인 것이다.


  예술의 정신성, 또 예술성이란 무엇일까?


 다음 전시는 더욱더 진일보했다.


1959년 3월 벨기에 앤트워프 헤센 후이스에서 열린 <움직이는 비전-비전속의 모션> 전시에서 작가는 전시 당일 전시 벽면에 아무것도 전시하지 않고 전시장에 태연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프랑스 철학자 가슈통 바슐라르의 말을 인용했다.


“우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그리고 더 심오한 부재가 있고, 더 깊어진 청색이 있다”


 그리고 현재 자신은 더 이상 누군가가 자신의 작품을 돈으로 구매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말하고, 전시된 세 가지 작품에 작품 당 황금 1킬로그램의 가격을 요구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뜻밖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작품은 실제 구입자가 나섰다.

몇 달 후 작가는 파리의 센 강변에서 구입자에게 자신의 첫 번째 작품을 매매하고, 황금 1킬로그램과 매매 영수증을 교환했다. 그리고 구입자는 영수증을 태우고, 이브 클랭은 황금 절반을 센 강에 던지는 의식을 했다.


 이 장면을 보고 있는 독자들은 아마도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보다 더 한 사람이 이브 클랭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비물질적 예술세계에 대한 작가의 경배이자 의식이었다. 이러한 의식적 퍼포먼스 행위는 이브 클랭이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몇 달 전인 1962년 6월에 다른 수집가에게도 황금 1킬로그램을  받고 작품을 팔면서 계속되었다.


 구입자는 그 작품에 대한 법적 소유권을 가지게 되었다. 황금 1킬로그램이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7800만 원 정도 되는 돈이니, 당시에도 결코 작은 돈은 아니었다.


이 발칙한 전시에 구입자가 있었다는 사실도 믿기 어렵지만, 이브 클랭은 위와 같은 전시를 통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작품은 존재하지 않지만, 예술가라는 전문가가 이런 작업을 거친 행위 그 자체도 예술작품이 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돈 대신에 황금이라는 교환가치를 제시함으로써 당시 자본주의 소비사회를 고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예술의 정신성과 예술성의 회복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이야기의 처음에 제기되었던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점하나 그린 작품이 수억을 호가하는 것은 바로 ‘점 하나’를 우리가 권위를 인정하는 전문적인 예술적 경험과 행위를 하는 작가가 그렸다는 점이 그 그림에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브 클랭은 세 전시는 이러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BTS 사인도 진품만이 가치 있는 것


세계적으로 유명한 BTS의 사인을 아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BTS사인과 똑같이 사인을 만들어 아이에게 주었을 때 아이를 어떤 반응을 보일까?

 BTS가 직접 사인하지 않는 사인은 아우라가 없는 그저 한 낱 의미 없는 문자일 뿐이다.


바로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그림도, 예술적으로 인정받은 작가가 그릴 때 그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지, 내가 똑같이 그린다고 그 가치가 부여되지 않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이것이 예술이고 예술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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