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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D 미식가 Sep 04. 2023

[미술의 맛]1억유로 작품을 옆에 두고도 몰랐다

보물 같은 명작도 미술을 알아야 보인다.

자코메티가 나타났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인 1960년대 어느 날, 영국 런던 말리본에 위치한 골동품 가게에 한 화가가 나타났다. 그는 가게를 둘러보다가 '작자 미상'이라고 적힌 샹들리에를 보고는 흥정도 하지 않고 250파운드(약 38만 원)를 지불하고 사버린다. 화가의 이름은 존 크랙스턴(John Craxton,1922-2009), 당시 영국에서 꽤 알려진 화가였다.

흥정도 않고 단숨에 구매했던 그 샹들리에는 경매에 출품되면서 화젯거리가 되었다.

그 샹들리에는 스위스 출신 세계적인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가 만든 몇 안 되는 희귀 샹들리에였기 때문이다.


가늘고 얇은 막대기 같은 인물의 조각품으로 유명한 자코메티는 미술시장에서 놀라운 기록을 가진 인기 작가다. 2015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포인팅 맨> (1947년)은 1억 4130만 달러 (한화 약 1858억 원)에 낙찰된 기록도 가지고 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피터 왓슨을 위한 상들리에 (1946-1947)

<피터 왓슨을 위한 샹들리에>는 다층구조의 뼈대와 중앙 줄기에서 다양한 각도로 방사되는 날카롭게 뾰족한 가지들, 그리고 각 지점은 섬세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줄기 바닥에 매달려있는 한가운데의 원구는 자코메티가 초현실주의 미술에 관심을 가지던 시기에 제작된 조각 작품에서 나타나는 <매달린 공> (1930)을 떠올리게 한다.

자코메티, 매달린 공(왼쪽, 1930),                                 포인팅 맨(오른쪽,1947)


그런데 구매자인 화가 존 크랙스턴은 흥정도 하지 않고 단숨에 그 작자미상의 샹들리에를  왜 구입한 것일까? 그는 이 샹들리에가 그의 후원자이자 예술품 수집가인 피터 왓슨(1908-1956)이 소유했던 샹들리에라는 것을 보는 순간 알아보고 구입했던 것이다.


피터 왓슨은 1946~1947년 사이 자코메티에게 샹들리에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터 왓슨이 운영하던 잡지사의 로비에 걸려있던 샹들리에는 1950년에 문을 닫은 이후 사라졌는데, 10여 년이 지나서 존 크래스턴이 골동품 가게에서 마주친 것이었다. 그에게는 친구이자 후원자가 아끼던 샹들리에를 마주하는 운명 같은 순간이었다.


작은 관심이나 흥미로 벼룩시장이나 다락방, 주말 장터에서 구매한 작품이 유명작가의 작품으로 판명되어  생각지도 않는 술품과의 인연이 종종 해외토픽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있다.


잭슨 폴록이 누구예요?


은퇴한 여성 트럭 운전사인 미국의 테리 호튼(Teri Horton)은 1992년 어느 날 우울한 친구를 위로할 생일 선물을 찾기 위해 캘리포니아 샌버너디노에 있는 벼룩

시장을 찾았다. 마침 그녀의 눈길이 간 그림이 있었다. 빨간색, 흰색, 검은색 및 노란색 페인트가 튄 자국으로 가득 찬 큰 그림이었다. 주인은 8달러의 가격을 불렀지만, 그녀는 그것마저도 5달러로 흥정하며 그림을 구매했다. 그리고 그림을 친구에게 주었다.

테리 호튼이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잭슨 폴록의 작품

이동식 주택에 살고 있던 친구는 그림이 너무 커 집안에 들여놓기가 여의치 않자, 그림을 다시 테리 호튼에게 돌려주었다. 테리 호튼은 이 큰 그림을 처분하기 위해 고심하다가 주말 차고 판매에서 그림을 내놨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던 지역의 미술 교사가 마당에 내놓은 그림을 보고 그림이 잭슨 폴록 그림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호튼은 "잭슨 폴락이 누군데요?" 되물었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은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 대표적 화가로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이다. 그는 일반적 회화 물감 대신 새로운 매체인 에나멜 성분의 페인트를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이유로 그의 작품은 거친 표면 질감과 강한 원색적인 색감을 나타낸다.


 붓 대신에 브러시, 막대기, 심지어 주사기를 사용하여. 페인트를 붓고 떨어뜨리는 기술로 그는 <액션 페인팅>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만들었다. 캔버스의 한 면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는 기존의 방법에서 벗어나, 모든 방향에서 캔버스를 단단한 벽이나 바닥에 붙이고 마치 도장일을 하듯이 작업을 하는 새로운 차원의 미술작업을 시도했다.

캔버스를 바닥에 고정하고 작업하는 잭슨 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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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경매에서 한화 1800억이 넘는 가격에 낙찰된 NO.5(1948)

그때부터 그녀는 이 작품이 진품임을 입증하기 위해 사방으로 전문가를 찾아다닌다. 그러나 미술품 감정사들과 전문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잭슨 폴록과 같은 현대작가의 작품이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미술계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눈을 돌렸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눈을 돌려 캔버스 뒷면에서 지문을 발견했고 그것이 잭슨 폴락의 것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잭슨 폴락의 작품으로 완전히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진품으로 인정된다면, 2006년 경매에서 잭슨 폴락의 'No.5'가 약 1800억 원에 낙찰된 기록을 보면 그녀의 그림도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가격이 될 가능성이 있다. 벼룩시장에서 만난 우연한 그림과의 인연으로 그녀는 잭슨 폴락과 동행하게 된 것이다.


카라바조를 만나다


2014년 프랑스 툴루즈의 한 집주인이 지붕에 빗물이 새자 다락방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먼지로 덮여 있는 얼룩진 그림 한 점을 발견했다. 언듯 보기에도 오래된 그림이라 그는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 싶어 경매사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을 방문한 친구는 조심스럽게 면봉을 사용하여 그림에 그려진 얼굴을 닦아내자 카라바조의 그림과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파리에 본사를 둔 미술품 감정사인 에릭 튀르껭(Eric Turquin)에게 사진을 보냈다. 그림은 카라바조 (Caravaggio)의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베는 유디트>로 여겨지는 그림이었는데, 카라바조의 같은 이름의 그림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에 이 작품은 모작일 가능성이 컸다.

다락방에서 발견된 그림, 카라바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1606-1607), 144X 173cm

다락방그림이 발견된 5년 후인 2019년 미술품 감정사인 에릭 튀르껭은 런던의 한 갤러리에서 이 그림에 대한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5년 동안 그림에 대한 다각도의 고증과 연구가 진행됐고, 그림의 내력도 거의 밝혀졌다. 이탈리아 화가의 프랑스 다락방에서 발견된 작품은 진품일까?


1607년 카라바조는 나폴리를 떠날 때, 나폴리에서 함께 작업실을 사용하던 플랑드르 화가 루이스 핀슨(Louis Finson)과 아브라함 빈크(Abraham Vinck)에게  <묵주의 성모>와 <홀로페르네스를 목을 베는 유디트> 두 그림을 남긴다. 빈크가 나폴리를 떠나 1609년경 암스테르담에 정착할 때 그림도 함께 건너왔고, 이후 핀슨도 합류하게 된다.


그림은 암스테르담에서 핀슨이 1617년 작성한 유언장에서 공동소유로 언급됐고, 이들이 사망한 후 상속인들은 <묵주의 성모>를 팔았다. 하나 남은 <홀로페르네스를 참수하는 유디트>는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이것이 프랑스의 한 다락방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원본으로 알려진 카라바조 그림, 홀로패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1598-1599),145X195cm


프랑스는 국외반출 금지까지 내리고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다락방에서 발견된 카라바조의 작품은 진위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일부의 미술품 감정사들과 학자들은 이 작품이 이탈리아에 있는 카라바조의 작품과는 다른 것이며, 심지어 카라바조가 아니라 소장자이자 같이 작업장을 공유했던 핀슨의 작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또 다른 학자들과 감정사들은 이를 카라바조의 두 번째 버전이 확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프랑스 정부는 이 그림에 대한 국외 반출을 금지했고, 진위를 가리기 위한 조사를 진행했다.


이탈리아에 있는 첫 번째 카라바조 작품과 두 번째 다락방 버전은 인물의 구성이나 그림의 기교가 닮은 듯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아래에 있는 루이스 핀슨의 그림을 보면 그가 카라바조와 화실을 공유했듯이 검은 배경에 빛을 이용한 인물들의 묘사가 서로 많이  닮아있음을 독자들도 느낄 수 있다.

루이스 핀슨,  성 세바스찬의 순교(1615)

지난 2019년 루브르 박물관과 1억 유로(한화 1300억) 거래가 불발된 후 이 그림은 경매를 통해 판매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경매 직전 비공개로 미국의 수집가에게 팔렸다.



르네상스 독일화가 뒤러의 작품이 미국에서 발견?


지난 2016년에 익명의 한 사람이 우연히 차고 판매에서 30달러에 그림 한 점을 구매했다. 그는 그림을 집에 걸어 놓고 가끔 방문객에게 보여주었다. 방문객 중 친구가 미술품 딜러인 클리포드 쇼러(Schorer)에게 이 작품을 이야기하며 혹시 “알프레히트 뒤러의 그림이 아닐까”라고 이야기했다. 쇼러는 처음에는 “무슨 소릴 하는 거야?”라는 반응을 보이며, 뒤러의 판화 정도 아니겠냐고 이야기하게 된다.


왜냐하면 뒤러는 르네상스 시대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포함한 당대의 주요 이탈리아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소수의 귀족들이 향유하던 미술품을 다수의 개인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판화'라는 매체로 확장했던 인물이다. 그는 이를 통해 다음 세대의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독일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다.


뒤러의 작품이 유럽이 아닌 미국에서 발견된다는 사실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건 너무나 합리적 추론이었다. 그러나 그림 소유자로부터 작품 사진을 받은 후 쇼러는 호기심이 발동했고, 그림을 직접 보기 위해 소유자의 집까지 방문하게 된다. 그는 그림을 본 후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 내가 본 작품 중에 가장 완벽한 위조, 아니면 가장 위대한 걸작이구나’라고.


쇼러는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그림을 판매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대가로 소유자에게 10만 달러를 지불했다. 그리고 그림의 진위와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30달러에 차고 판매에서 우연히 산 그림이 마침내 주인을 찾아가는 여정에 나서게 된 순간이었다.

알프레히트 뒤러, 잔디벤치에 꽃을 든 성모와 아기 예수(1503)

쇼러는 <잔디 벤치에 꽃을 든 성모와 아기 예수>(The Virgin and Child With a Flower on a Grassy Bench )가 독일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돌프 2세의 소유였다가, 여러 단계를 거쳐 20세기 프랑스의 위베르 드 푸르탈레스 백작이 소유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1912년이나 1919년에 파리의 고미술품 가게인 메종 칼리앙(Maison Carlhian)이 매입한 것을 밝혀냈다.


그 후 그림은 고미술품 가게를 운영하던 칼리앙 가족의 후손인 미국의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 살던 건축가인 장폴 칼리 한(Jean-Paul Carlhian) 부부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2016년 그 자녀들은 부모님의 유품들을 정리하면서 당연히 이 그림이 가치 없는 복제품이라고 생각해서 차고 판매에 내놓은 것이다.


뒤러의 작품으로 입증되는 데에는 그림의 중앙 하단에 표시되어 있는 AD 워터 마크(삼지창과 반지 삼지창과 공)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뒤러의 작품은 고유한 워터마크를 나타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작품에도 중앙 하단에 AD 워터 마크가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이 그림은 뒤러의 가장 뛰어난 수채화 중 하나인 <수많은 동물을 가진 처녀>(1506)를 그리기 위한 준비 단계의 그림으로 알려졌다. 이 그림의 가치는 종이 그림으로는 드물게 미술시장에서 1천만 달러로 추정됐다.


우연에서 시작돼 운명처럼 다가온 미술품과의 인연은 우리의 인생을 풍부하게 만든다.


벼룩시장이나 다락방, 창고에 방치되어 있던 미술품들이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보물로 다시 탄생한다. 또 발견이 연구로 이어져서 발자취를 추적해 가는 과정은 흥미와 기쁨을 주는 일이 된다. 더구나  경제적 가치를 주는 행운을 누린다면 더할 수 없는 즐거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행운이 오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미술품이라도 알아보지 못하면 얻을 수 없다. 이런 행운도 평소에 관심 어린 눈으로 볼 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미술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경제적인 기대를 떠나, 인류가 남긴 문화유산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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