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과 학생이 본 비현실적이고 너무나 현실적인 그 영화에 대해서
2021년 12월 31일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날 영화 한 편을 봤다. 넷플릭스에 공개되기 전부터 기대하고 있던 Don't look up이라는 영화였다. 기대되는 영화가 있으면 그 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만 얻고 최대한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가 시작하기 직전까지도 나는 그냥 우주재난영화인 줄 알았고 마지막은 결국 인류는 승리한다의 결말일 줄 알았다.
영화는 재난에 대비하고 맞서는 극적인 연출 따위는 없었다. 전반적으로 코믹했고 끔찍했고 과장적이고 냉철했다.
우선 나는 영화 리뷰를 단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영화를 본 뒤 그 영화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기껏해야 남의 감상평을 들으며 공감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천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영화를 보는 내내 손이 근질근질했고 제로웨이스트를 하는 사람으로서 환경 문제가 생각나 영화에 깊이 몰입하게 됐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할 주제들은 넘쳐나지만 이 글에서 나는 과학과 환경이라는 관점에서만 감상편을 써볼까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박사생 케이트와 민디 박사는 초신성, 우주 팽창, 은하에 대해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거대한 혜성을 발견하고 곧 그 혜성이 지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결과값을 도출해내면서 영화가 시작한다. 그들은 지구와 혜성의 충돌을 자신들의 분야는 아니지만 우연히 발견한 것이라면 나는 오늘도 행성 간 또는 행성과 영화에 나오는 혜성 크기의 질량이 충돌하는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왔다.
나는 결과를 볼 때마다 "오 충돌했다. 질량이 늘었네. 조금만 더 충돌하면 훨씬 커지겠다"등의 생각을 했다.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가볍게 생각했던 충돌이었다. 컴퓨터의 데이터일 뿐이지만 만약 그 행성에 생명체가 산다면 백 번 천 번 만 번 멸종하고도 남을 끔찍한 일이었다. 그와 동시에 인류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다시금 자각했다. 시뮬레이션에서 몇 번이고 봐 왔듯이 에베레스트가 몇 번을 지구와 부딪쳐도 지구는 여전히 살아갈 것이다. 오히려 질량이 늘어 점점 몸집을 키워갈 것이다. 하지만 그 안의 생명체는 어떠할까. 영화의 끝에선 거의 모든 생명체가 종말을 맞이했다.
지구는 멸망하지 않는다. 인류가 멸망할 뿐이다.
영화를 보면서 혜성의 충돌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뀐 순간이 있다. 처음에는 차라리 혜성과 충돌해서 과학자들의 말을 듣지 않은 사람들이 후회 속에서 멸망하기를 바랐고 과학을 우습게 여긴 대통령과 BASH의 피터에게 사이다를 날리기를 바랐다.
과학의 기본 중 하나는 사실에 근거하여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해내는 것이고 그 결과는 행위자에 관계없이 반복적으로 증명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논문이 존재하고 동료평가(peer review)가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사로잡힐 수 있는 편파적인 시각과 실수를 바로 잡고 몇 세대에 걸쳐서라도 반복적으로 증명하고 발전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영화에선 그 모든 과정을 무시한다. 여러 과학자들에게 확인받은 진실은 묻히고 그나마도 겨우 끌어올린 과학을 실천하다가도 멈춰 선다. 과학의 기본을 무시한 비과학은 학위, 성과, 그리고 명성을 등에 엎고 비로소 진실한 과학으로 둔갑한다. 과학을 제멋대로 해석하며 편파적이고 비과학적인 말만 들으며 거기에 따라 움직인다. 그곳에 자신의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더 최악은 그것을 과학이라 말하고 믿으며 그 위에 하나하나 자신들의 계획과 야욕을 쌓아간다. 비과학을 과학이라 선망한 결과는 모든 것의 물거품이다. 당연한 일이다. 과학이 아닌 것을 과학이라 가정하고 세운 계획인데 기초부터 엉망인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을 리가.
이런 생각이 바뀐 것은 케이트와 민디 박사를 중심으로 가족과 지인들이 모여 마지막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였다. 영화적으로 사이다가 있었으면 했지만 그들이 멸망 앞에서 마지막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도저히 멸망을 바랄 수가 없었다. 과학이고 뭐고 너네 맘대로 해도 좋으니 그들의 계획이 성공하기를 바랐다. 그만큼 몰입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류가 진보한 가장 큰 힘 중 하나는 과학이었고 그런 과학의 기본을 잊은 인류에게 더 이상의 진화는 없었다.
과학엔 딱히 힘이 없다. 과학은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설명할 뿐 그걸 받아들이고 움직이는 건 인간이 할 일이다. 영화에서 과학자들은 미친 듯이 소리치지만 과학을 이해하는 법을 잊은 인류는 그 소리를 듣지도 움직이지도 않는다. 심지어 과학의 언어를 읽고 전달하는 과학자들도 중간에 결국 인간이라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 모습이 참 비현실적이면서도 너무 현실적이라 소름이 돋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실제로 이런 일은 우리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다.
환경문제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문제는 혜성보다는 덜 직관적이고 다양한 토론의 여지가 있지만 그 큰 맥락은 그렇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지금의 환경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하지만 결과는 결국 숫자놀음일 뿐이고 기업들은 그린워싱으로 자신들의 물건들을 팔아치울 뿐이다. 사람들은 갈라져서 음모다 거짓이다 소리치고 그도 아니면 아예 문제의 심각성을 자각도 못하고 있다. 최악은 환경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에게 유난 떨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며 비판하는 것이다.
현실은 영화와 분명한 차이가 있기에 우리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들의 마지막 저녁식사에서 바랬듯이 현실에선 그 누가 승리하든 우리 인류가 평화롭게 살아남는 결말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