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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월 Sep 17. 2023

7일차

2부

7일차 2부


어제 대니의 귀가 시간에 있었던 일련의 일로 아이 혼자 학원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불안했던 차에 마침 나의 온라인 수업이 오전에 끝나, 나는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더불어 배드민턴 신발이 필요해서 대니와 같이 쇼핑을 해야만 하기도 했다. 한 달 살기를 하면서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주말 보내기다. 주중에는 학원을 가는 일정한 스케줄이 있어서 그나마 괜찮은데 주말에는 각자의 친구를 만나거나 하는 일을 할 수 없기에, 아이와 엄마가 온전히 함께 즐길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했고 역시 그런 것을 찾기란 쉽지 않다. 솔직히 어른이야 그냥 빈둥 빈둥 시간을 보내도 되지만 아이에게 그런 시간을 주면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는 게 전부라 돈 들여 외국까지 와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너무 아쉽기도 하고 또 마음 한켠에는 아이가 이 나라를 느낄 수 있는 체험을 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 연유로 눈빠지게 인터넷을 뒤져 찾아본 결과 숙박을 제공하는 어플에서, 예약한 지역에서 즐길수 있는 간단한 프로그램을 함께 제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사실 많이 활성화된 서비스가 아니라서 선택 프로그램이 많지않다.) 그 중 하나를 신청했다. 그게 바로 배드민턴 배우기 활동이었다. 마침 대니는 어떤 기회로 한국에서 어줍잖게 성인 배드민턴 클럽에 가입해, 어느 정도 전문 기술을 조금 배웠던 적이 있어 바로 경기에 참여해도 될 것 같았다. 너무 급하게 예약한 프로그램이라 한국에서 아무 장비도 준비해 오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호스트에게 물었더니 장비는 대여를 해 준다했고 신발만 준비해 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대니를 학원에 데려다 주고 혼자 high street를 걷다 wangfu라는 중국집에 들어갔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중국음식점으로 나오는데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상상되는 중국집의 모습과 다르게 깔끔한 카페 분위기가 물씬 났다. 나름 혼자 하는 소비라 저렴한 음식을 주문했다. 대만식 Fried noodle과 콜라 하나를 주문하니 288페소 정도 되었다. 점심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식당은 한산했고 주방장이 음식을 늦게 준비해 준 덕에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책을 읽는 호사를 누렸다.

대만식 Fried noodle은 얇은 면을 국물없이 볶아 익힌 것으로 약간 카레맛이 났다. 개인적으로 카레향을 싫어해서 아차 싶었지만 나름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여유롭게 음식을 먹으니 혼자 여행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식당을 나와 MARKET MARKET에 가서 대충 배드민턴 신발 가격을 알아 보았다. 대니는 분명 비싼 신발를 사고 싶어할 것이고 그래서 내가 미리 가서 저렴한 신발 가게의 동선을 먼저 살펴 그 쪽으로 유도할 참이었다.(^^) 아무런 사전 지식없이 무턱대고 비싼 신발 매장을 갔다가 혹시 그곳에서 대니 마음에 드는 신발이 있으면 또 나와 대니는 신경전을 벌릴게 뻔했다.  


수업이 끝난 대니를 데리고 미리 조사했던 MARKET MARKET에 있는 저렴한 신발 가게에 가서 신발을 구경하는데 역시 눈에 차지 않는 눈치다. 아, 나의 가벼운 생각에서는 오늘 엄마와 오전에 이래 저래 다툼이 있었다면 내 눈치를 봐서 적당한 가격의 신발을 사겠지 싶었는데 내 아이의 머리 속은 오늘 오전의 일은 오전의 일이고, 그게 나의 욕망과 무슨 상관이 있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역시나, 저렴한 신발 가게 몇 곳을 들렸는데 대니는 신발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은지 그냥 안 사겠단다. 나도 한참 눈치를 보다가 '그럼 사지 말아라'라는 심정으로 발길을 돌려 쇼핑몰을 떠나려는데 한 브랜드가 우리 눈길을 사로 잡았다. 가지런히 정렬된 신발은 다른 저렴한 신발가게에 진열한 것과는 다르게 품격이 느껴졌다. 보니 World Balance 라는 브랜드로 필리핀에서는 나름 고가의 신발이었다. 브랜드 이름은 흡사 New Balance 라는 브랜드의 아류격인데 어쨌든 가격 대를 보니 2,000페소 정도했다. 한국 기준으로는 약 5만원정도 하는 가격이었다. 여기 물가를 고려해서 1,000페소 짜리 신발를 사려했던 내 생각은 물거품이 되었고 아이 눈은 다시 생기가 돌며 이것 저것 마음에 드는 신발을 요리 조리 살피고 있었다.


아침에 화를 냈던 것도 미안하고 이왕 신발을 사기로 했었는데 빈손으로 가기도 그렇고, 중요한 것은 진짜 신발이 필요하다는 다양한 이유로 인해 결국 2,000페소 아니 정확히는 1,990페소짜리 신발을 집어들고서야 그 매장을 나올 수 있었다. 대니의 기분은 무척 좋아보였다. 어찌되었든 또 아이 기분이 좋으니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는 것은 그냥 다 아는 비밀이다.  


대니는 신발이 담긴 쇼핑백을 꼭 앉고 그랩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은 오뽀기라는 인스턴트 떡볶기를 해 먹었다. 한국에서 떡볶기가 먹고 싶으면 누구나 아는 배달점에서 주문을 하거나 혹은 신선한 재료를 풍부하게 넣고 맛있게 만들었을텐데  사정어쩔수 없는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꽤 맛있었다. 아마 한국이 아닌 곳에서 먹어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아무 정보도 없이 예약한 배드민턴 활동 덕분에 아직 내 마음 한 구석은 조금 불안하지만 그래도 넷플랙스의 블랙리스트 덕분에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내일 하루도 무사히 마감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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