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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희 Jan 25. 2024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

그것은 도를 닦는 방법과 비슷하다

내가 처음으로 글을 쓴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딱 둘로 나뉘었다. 


그러면 당장에 글을 공장처럼 찍어내라는 한 켠과(처음에는 나도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장기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에 대한 정서적, 경제적 총알을 모아두라는 조언으로 갈렸다. 전자는 글을 업으로 삼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말이었고 후자는 글을 업으로 삼다가 포기하거나 아니면 아직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돈이 없고 직업이 없이 무턱대고 글을 쓰다보면 룸펜이 돼. 나는 후자의 말을 주의깊게 들었다. 잠시 글을 포기하더라도 내가 스스로를 지탱해서 먹고 사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하려고 해. 내 말에 전자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후자는 잘 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 날 강의를 신청했다. 나의 얼마 없는 장점이다. 실행력.


늦은 나이에 공부한다는 건 수능과 다르다. 수능은 잘 치든 못 치든 어떤 대학교라도 갈 수는 있다. 하지만 자격증이라는 건 실패를 하면 그 사이의 시간을 환원할 수 없다. 무용한 시간을 날리는 것이다. 언제까지 눈을 뜨고 공부를 하고 밥을 먹고 강의를 듣고 다시 자는 삶을 반복해야 할까 가늠할 수도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시간 속 나는 오다가다 지나치는 학생들을 보면서 이 중 몇 명이나 성공을 할까 생각했다. 벽보에 붙어있는 합격자 비율은 아주 높던데, 살아남을 사람의 수는 그리 많지 않던데. 몇 번의 산수를 거치면 기껏해야 이 자리에 앉은 한 두 명이나 될까 말까 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중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걸까 확신이 없었다. 강사들은 실제 고사장에서 너와 대결을 하는 학생의 수는 실제로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하지만 학생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닌 모양이다. 나는 이 거대한 경쟁의 룰을 아직 읽지 못했다.


꿈을 꾼다. 탈락하는 꿈을 꾼다. 꿈을 깬다. 탈락할 사람안에 들어갈까 전전긍긍한다.


인생에서 이와 비슷한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나는 많은 걸 이루지 못했지만 지옥은 몇 번 거쳐왔다. 그 때마다 내 생존 전략이라곤 한 발짝 걸어가는 보폭에만 집중하는 것이었다. 한 발짝, 그 한 발짝을 걷는 데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고, 나머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어디선가 그것이 약자의 생존전략이라는 말을 보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나는 B급 인생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신은 당신의 현 상황을 메타인지로 정확하게 인지하고 거기서 전략을 짤 수 있는가. 나에게는 장기적인 계획을 짜고 그것에 충실할 정신머리가 나에게는 남아있지 않다. 전두엽에 시한폭탄처럼 달려있는 조증과 그보다 좆같은 울증과 씨름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 정신머리에서 장기적인 타임라인을 짜는 일은 치명타가 된다. 예상치 못한 정신적 쇼크에 버텨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에는 내가 B급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진절머리나게 싫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말 내 인생에서 중요한 건 내가 A급이 되려고 평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B급 인생에서 전두엽을 부숴가며 그 조각을 그러모아 글을 쓰는 일이었다. B급 인생으로, 평생 잘나지 못하고 이름 하나 알리지 못하고 죽어도 상관없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글. 나만의 글을 쓰기 위해서 나는 많은 독을 마셨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 독을 마실 것이다. 나는 안온하고 따뜻한 글은 쓸 수 없다. 슬프고 지독한 글을 쓸 것이다. 나는 새벽 한 시에 소주와 곰탕을 먹는 남자의 뒷모습 같은 글을 쓸 것이다. 내 언젠가의 밤이 내가 살아온 인생이고 글은 작가를 반영한다. 세상의 수 많은 B급 인생들, 날씨가 추우면 냉동만두가 된다는 농담에 웃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글을 쓸 것이다. 누군가는 그 농담에서 시체를 읽는다.


그건 도를 닦는 일과 비슷하다. 나는 한 발짝만 본다. 그리고 100일이 지나면 백 걸음을 걸을 수 있을 것이고, 그 걸음은 분명 100일을 예지해서 걷는 사람들의 방식과 달리 굽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최선이다. 내 지금의 최선은 B급 인생을 지탱할 수 있는 공적 자아를 형성하는 일이다. 이 공적 자아를 형성하고 나서는 글을 아주 많이 쓸 것이다. 나는 아름다운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한 발짝씩만 나아가는 글을 쓸 것이다. 어젯밤처럼 개처럼 울어 가면서. 공부를 하는 이유라면, 글을 쓰기 위해서.




저는 그래도 B급 인생 중에서는 행복한 편에 든다고 생각합니다. 꿈이 있으니까요. 여러분들은 어떠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의 글입니다. 공부를 한답시고 좀 글이 늦었습니다. 조금이라도 글을 쓰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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