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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희 Apr 16. 2024

인생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야

우리는 말했지, 인생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최근 1월 달에 이사를 했다. 후미진 골목과 숨 차는 언덕이 분배되어 있는 동네란 그렇게 부유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골목길 어느 곳에 서울에서 보기 힘든 6천원짜리 밥집이 있었다. 김치찌개와 청국장만 파는 그 가게는 반주로 소주를 팔았다. 간판이 흰 바탕에 궁서체인 가게가 요즘 트렌드에 맞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투박한 가게를 좋아했다. 내 친구 A도 마찬가지였다. 이 동네에는 이런 저런 밥집이 많이 있었지만 우린 만날 때마다 구태여 그 가게를 찾았다. 사람들은 다 홀로 와서 국밥에 소주 한 병씩을 부록으로 시켜놓고 각자의 테이블에서 밥을 비우고 있었다. 24시간의 술을 파는 밥집이란 건 고독의 정서를 안개처럼 지니고 있었고, 우리는 그 정서에 맞았다. 


그저께는 A가 내 동네에 나를 보러 왔다. 우리의 걸음은 요즘 친구들의 예쁜 가게들을 지나 그 밥집으로 향했다. 가게에는 소주 새로를 팔지 않았다. 그런 힙한 술은 팔지 않았다. 그래서 A는 진로를, 나는 사이다를 시켜놓고 두 그릇의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여기 김치찌개가 너무 맛있어, 국물을 마시던 A가 말했고 나도 동의했다.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 이야기, 회사 이야기, 인생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말야, 내가 항상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했어. 나의 단점들을 극복해야 한다고 믿었지.

그런데?

그런데 그런 게 아니야. 그냥 인생 죽을 때까지 어떤 부분들은 해결을 하지 못한채로 가는 것도 방법인 거야. 

그렇지. 인생은 극복하는 게 아니야.


거기까지 말하고 우리는 씨익 웃었다. 우리는 우리들의 인생을 B급 인생, 스트릿 인생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좋았다. 친구는 5평도 안 되는 집에 살고 나는 그보다 더 작은 방에 살았다. 친구는 돈에 대한 이슈가 있었고 나는 인간관계에 대한 이슈가 있었다. 나는 마음을 아끼는 방법을 몰라서 항상 써버리고는 했고, 영리하게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그것은 큰 단점이 되었다. 이제껏 우리는 그런 단점들을 극복해야지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그렇게 극복을 하는 멋진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게 멋진 사람이 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괜찮은 것 아닐까?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내 주변인들을 생각해보았다. 사회적인 평판에 상관없이 누군가는 알콜 중독자였고 누군가는 성관계 중독자였고 누군가는 성형 중독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누군가는 식이 장애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사회에서 각자의 몫을 하면서 잘 살아가고 있었다. 내재적인 고민이야 어떻든, 나는 자기 자신을 바꾸려는 오랜 사투가 어떻게 보면 깊은 자기부정이 아닐까. 그렇게 살지 않아도, 그냥 그런 중독이나 결핍이 있어도 그걸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성숙한 자세 아닐까.


인생은 극복하는 게 아니야.


나는 다시 한 번 그 말을 입 속에서 굴려 보았다. 우리들은 물론, 어느 누구든 인생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인생의 결점들을 모조리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님을, 지금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충분한 애정을 기울이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해보자고 마음먹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인생을 극복한다는 과정은 역으로 극복하지 않고도 그 자신을 껴안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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