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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희 Jun 26. 2024

밑바닥에서

※ 이 글은 픽션이 섞여있습니다.

고통스러운 글을 쓰기 전에는 심호흡을 한 번 한다. 하나, 둘, 셋.


이번 글에서만큼은 내 글의 강점인 핵심 찌르기 글쓰기를 하지 않을 셈이다. 자연히 모호하고 뭉뚱그리는 글이 될 것이다. 에세이라는 건 어쨌든 자기 자신을 파는 글이다. 사람들은 에세이만 보고 그 너머의 제희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마냥 생각하기 일쑤니까, 나는 적어도 오늘의 글에서는 그런 일들을 피하고 싶다. 그래서 이 글은 반 쯤은 나의 일기로, 반 쯤은 창작 글쓰기가 섞여있을 생각이다. 어떤 주제는 너무 심연에 있어 묘사하는 것으로도 괴로운 일이 되기도 하니까. 나는 글을 쓰기 이전에 내 자신을 지키고 싶다.


어제는 너무 고통스러운 날이었다. 무엇이 고통스러운지는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뭉뚱그려 말하자면 나는 어젯밤 폭언을 듣고 원하지 않는 일을 처리해야했다. 왜지? 도망쳐나온 새벽 두 시 밤 거리를 거닐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분명 이 사람에게 잘 해 주었는데 왜 이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굴지? 나는 환대를 해 주었고, 차를 내 주었으며, 머리카락을 빗어주었는데? 이해할 수 없는 방정식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쓰레기. 계속해서 상대가 했던 말을 곱씹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쓰레기라고 할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계속해서 나에게 쓰레기라고 말했다. 막힌 생각의 알고리즘 끝에 나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오랜만에 온전한 정신으로 있을 수 없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암막 커튼을 치고 몇 일이고 자고 싶을 정도로 피곤했다. 사람에게 잘 해주면 상대방도 잘 해 주어야지 윈윈 전략이 되는데,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나는 긴 메일을 썼다. 어젯 밤 나는 아주 괴로웠어요. 당신의 어떤어떤 행동이 저를 아주 힘들게 만들었어요. 그런 행동은 저를 울게 해요.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 같아요. 대화는 카톡으로 해요. 10분여의 글쓰기가 끝나고 내가 갈 곳은 희붐하게 밝은 스터디 카페밖에 없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주 감정이 기쁨이라면, 나의 주 감정은 불안이었다. 불안이 잠도 못자게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습관적으로 자기가 해야 한다고 하는 일에 매달리곤 했다. 공부를 해야지. 새벽 2시 스터디 카페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책을 폈다. 어제 오후 10시까지 썼던 재무회계 챕터 10의 자본 항목을 공부할 심산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노트북 모니터를 열자마자,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무엇을 잘못했지?

왜 나에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났지?

이 시간에 자낙스는 어디서 구하지?


나는 평생에 걸쳐 나를 구제하는 방법을 익혔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리고 정신병을 이겨내야 해. 글쓰기는 그래서 좋은 나의 친구였다. 물론 이 글은 그 때 썼던 글을 체에 친 글이지만, 어쨌든 나는 충분히 고통스러웠고 아무도 없는 카페에서 나를 달래는 방법을 배웠다. 10년 전 동일한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콩나무처럼 우악스럽게 피어올랐다. 구역질이 났다. 나는 정말로, 정말로, 동일한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파트린느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그르누이의 마지막처럼 내 모든 몸이 타인에 의해 뜯어먹히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래서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어느정도 구역질나는 감각이 포함되어 있다고 믿는 편이다. 결국 자기의 성적 만족이나 정서적 만족을 착취하듯 요구한다는 점이 그렇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동의는 묵사발이 되는 그런 지점. 나는 그 모든 걸 혐오했다. 그렇지만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점이라면 10년이 걸리던 증오를 하루 안에 갈무리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나는 그 상대에게 어떤 미안함도 어떤 사과도 받고 싶지 않다. 가급적이면 평생 안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스쳐지나가는 일도, 말을 섞을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사랑을 요구하는 끝없는 자기애에 질렸다. 잘 나가던 스터디 모임도 취소했다. 사람들이랑 엮이는 일이 고단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타르같은 지옥의 밑바닥을 핥는 심정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책상에 엎드려 잤다. 일어나보니 3시간 쯤 잤나. 그 정도 자면 조울증이 재발할 위험이 크다. 나는 커피를 더블샷으로 내렸다. 어떤 새벽이 있더라도 결국 동은 트니까, 나는 내 일과 공부를 기능하는데서 오는 만족감을 동력으로 사는 사람이니까. 나는 부은 눈을 거울 너머로 보다가 마른 세수를 하고 짐을 챙겼다. 어떤 거대한 새벽을 뒤로 미뤄두고 다시 할 일을 하러 나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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