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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사전 Oct 19. 2021

낯설다

형용사: 전에 본 기억이 없어 익숙하지 아니하다.

  낯설다

  

  형용사

 1. 전에 본 기억이 없어 익숙하지 아니하다.

 2. 사물이 눈에 익지 아니하다.

무엇이 문화재이고 무엇이 문화재가 아닌가.

  문화재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문화재로서의 역할일까. 

  17세기 왕궁이 있던 더르바르 광장은, 역사란 박제된 활자에 있는 게 아닌,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게 보여주고 있다.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은 소에게 물을 주는 이 옆으로 경적을 내며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각종 쓰레기와 오물, 똥으로 가득한 길가 옆으로 모모(네팔식 만두)와 공예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주어진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나 역시 여행자라는 주어진 본분을 다하기 위해 사원 꼭대기에 앉아 해넘이를 보며 낯섦의 두려움과 은밀한 희열을 동시에 느끼던 그 순간,


갑자기 내 앞에 다부지고 까무잡잡한 남성이 성큼 다가왔다. “무슨 일 때문에......”라는 단어가 네팔어로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는 내 앞에서 신발을 벗기 시작했고, 난 여권과 지갑이 든 주머니와 가까운 왼손에 힘이 들어갔으며 배낭 깊숙이 넣어 둔 다용도 칼의 존재가 언뜻 스쳤다.

  그는 맨발로 내 옆 기둥을 능숙하게 오르더니 얽혀있는 전선 몇 가닥을 헤집은 후 숨겨진 스위치를 눌러 전구에 불을 밝혔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씩 웃으며 내 손의 책을 가리킨다. 마치 ‘어때 고맙지?’라는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난 고마움과 미안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멋쩍게 담배를 건네며 웃어 보이자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손짓과 함께 자신은 말을 하지 못한다는 제스처를 취했고 다음 순간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 얼마나 완벽한 바디랭귀지인가! 서로의 언어를 완벽하게 모르는 두 사람은 그렇게 더르바르 광장에서 웃었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모르는 것은 불안한 것이고 낯선 것은 조심해야 한다. 그게 위험을 줄이고 혹시 모를 불상사를 면할 수 있는 것이라 배워왔다. 하지만 생김새부터 판이하게 다른, 4,200km 떨어진 곳에서 온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내게 베푼 그의 작은 도움으로 깨달았다. 모르고 낯선 것은 알아가야 하는 대상이며 익숙해지기 바로 전 단계인 것을. 같이 사진 한 장 찍자고 말하지 못한 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후회가 될 정도로 미안한 기억이며 갑자기 모든 네팔리(네팔 사람을 이르는 말)들이 친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날이었다.




-낯설다: 진심이 통해가는 과정을 일컫는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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