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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lmul Jul 18. 2024

독일 남자와 결혼했습니다만

식기 세척기 사용법 좀 알려줘

“여긴 우리 집도 아닌데 왜 설치해?”

“나는 하루 세 번 매일 하잖아. 새 걸 사는 것도 아닌데 그것도 못사?”

“몰라! 영희 맘대로 해!!!”

버럭 화를 내며 한스는  이층으로 도망치듯 가버렸다. 식기 세척기를 사자는 내 말에 남편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이 우리 집도 아니고 몇 년 있다 나갈 수도 있는데 왜 사냐고 말이다. 전에 살던  집에는 식기 세척기설치가 되어 있었는데 그건 식세기 이모님이었다. 이년을 그렇게 살다가  이사를 하고 나서  설거지를 할 때마다 생각들이 떠올랐다.  물도 많이 쓰고 세제 한 병이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사라졌다. 무엇보다 시작하면 1시간 가까이 설거지 하며 보내는 시간이 아까웠다.

 나는 원래 설거지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도 이제는 기계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물건을 사는데 인색한 남편의 마음을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와이프가 좀 더 편한 생활을 원한다면 동의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며칠을 고민하다 말을 꺼냈다. 하지만 한스는 누구인가? 역시 동조를 얻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결국 나는 내 마음대로 중고시장에서 아주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했다. 한스가 맘대로 하라고 했으니 정말 해봤다. 친구의 도움을 얻어 실어오고 기사님을 불러 설치까지 신속히 처리했다.


남편은 쓸데없는 곳에는 절대 돈을 쓰지 않는다는 주의다. 집안의 가장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독일 사람들의 문화가 그런 것 같다. 그의 소비 패턴을 보면 필요한 물건을 사긴 사되 자신의 능력치에서 품질이 아주 좋은 것을 사서 오래도록 쓴다. 유독 추위를 타는 남편이 롱패딩을 사러 가자고 해서 백화점에 같이 간 적이 있었다. 아크테릭스라는 브랜드 매장에 가서 이것저것 입어보며 내 것도 살 것을 권했다. 한스는 입어 봤던 브랜드라 한번 사면 기본 10년은 입을 수 있고 그 회사는 Life time A/S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니 사자고 했다.  롱패딩 두 개를 사는데 지불한 금액만 1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카드를 직원에게 건네는 내 손은 떨지 않았지만 속마음은 덜덜 떨었다. 그 큰돈을 쓰는 한스의 모습은 평온해 보여 어이가 없었다.


식기 세척기 때문에 다툼이 있고 나서 며칠 후 나는 코로나에 걸렸다. 결혼 후 아파서 앓아누워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열과 근육통에 시달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3일 동안은 방바닥과 한 몸이 되었었다. 한스는  아침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점심 차리고 또 저녁을 차리기를  반복했다. 이틀 동안은 아무 말 없이 집안일을  하던 그가 내게 물었다.

"영희, 식기세척기 작동법 좀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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