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호랑이가 아니지만 자꾸 가죽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중환자실 간호사로서의 일은 결과가 잘 없습니다. 회복 후 병동으로 전동가시는 환자 분이나 다른 병원으로 전원가시는 분들도 으레 있지만, 그렇지 않은 환자들이 많습니다. 갖가지 노력과 최선을 다했는데도 돌아가시는 분들을 보면 가슴이 아립니다. 마치 내가 실패한 것처럼 슬픕니다. 어쩌면 제가 정말 실패했을지도 모르지요.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을 해도 그렇습니다.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앎에도 그렇습니다.
간호가 의미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주는 신뢰와 감사는 제 능력보다 큽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사기를 가다듬을 재충전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 환자가 죽으면 내일은 다른 환자를 봅니다. 내일도 그렇다면 모레도 그렇습니다.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허리와 머리와 손을 가리키며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이 다음 날 출근했을 때 없는 기분을 아시나요. 저녁과 밤의 기록을 확인하고 나의 잘못은 없는가, 내가 좀 더 잘했다면, 내가 더 꼼꼼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굴욕감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길 확률이 없는 전쟁을 하는 장수의 마음이 이럴까요. 저는 장수가 아님에도 자꾸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뭐가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어와 문장에는 혈압과 산소포화도가 없습니다. 빽빽대며 울리는 빨간색 알림과 시끄러운 경보음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글은 죽어 없어지지 않습니다. 자음과 모음은 부러지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못 쓴 글, 창피한 글, 아쉬운 글은 있어도 패배한 글은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 씁니다. 글은 종이로, 메모 어플에, 한글 파일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