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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ㅜㄴ

by 재홍

눈이 온다. 장장 10개월 동안 보지 못했던 얼굴을 본다. 그들은 내리기를 얼마나 기대했을까. 몇 분을 유영하다가 바닥에 닿는다. 누군가에게 단풍에게 떨어지는 게 아름다운 유일한 것이라고 말했었는데, 고운 눈송이를 보니 취소해야 할 것 같다.


내려가는 것, 하강하는 것에는 뭔가 부정적인 에너지가 있다. 항상 올라가고 싶고, 뛰어넘고 싶고, 상승하고 싶은 욕구가 사람에게는 있다. 자주 하는 컴퓨터 게임에서도 밑에서 올라가는 쪽이 반대인 경우보다 더 승률이 높다는 통계가 있었다. 마우스를 위로 향하게 움직일수록 편하다는 설명이다. ‘내린다’는 불리한 점에도 불구하고 내리는 눈은 아름답다. 오히려 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서 솟구치는 거였다면 눈은 처연하지 않았을 것이다. 눈이 오면 우울해지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눈은 웅과 비슷하다. 초성, 종성이 같은 글자이면서 모음은 ㅜ인 글자를 생각해 봤는데 국눈둗룰뭄붑숫웅줒춫쿸퉅풒훟 중에 ㄴ과 ㅇ이 가장 귀엽다.


첫눈은 항상 연말에 온다. 우리가 정해놓은 시간의 끝에 지나온 달력을 곱씹는다. 12월이 마련해 놓은 화롯불 앞에서 손을 녹인다. 우리는 끝을 후회하고 시작을 기대한다. 11월이 1월이었다면 우리는 연초에만 눈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눈은 항상 새해 소원과 같이 왔을 것이다.


눈은 왜 낭만적일까? 펑펑 오는 눈 밑에서 추는 춤, 크리스마스 캐롤 등을 우리는 낭만적이라고 느낀다. 파랗고 까만 하늘에 흰색이 나부끼는 것은 미적으로 대비된다. 또 눈이 내리는 날은 그렇지 않은 날에 비해 현저히 적다. 우리는 평소와 다른 것, 일상적이지 않은 것에 낭만을 느끼곤 한다. 여행이 그렇고 도전이 그렇고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가 그렇다. 눈에 대해 이렇게 많이 생각해 보는 것도 낭만적으로 사는 방법 중에 하나일까?


눈은 또 우연히도 눈과 동음이의어다. 눈을 보면 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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