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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현 Jul 04. 2023

이탈리아 여행 기억하기

에피소드 단편선(3)

#여행요약

아내와 함께 2주간 이탈리아를 다녀왔다. 밀라노, 볼차노, 피렌체, 로마를 거쳤으며 피렌체에서는 토스카나 투어, 우피치미술관 투어, 로마에서는 바티칸 투어를 이용했다. 숙소는 모두 에어비앤비를 통해 구한 가정집에서 묵었으며 도시 간 이동은 기차, 도시 내 이동은 도보, 지하철, 버스 등을 이용하였다. 대부분의 날씨는 화창하고 더웠다. 하루 평균 1만 8천보를 걸었다.


#파스타

 나는 파스타를 좋아한다. 집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 먹는 요리도 파스타고 밖에서 가장 많이 찾는 음식도 파스타다. 숙취가 있는 날도 파스타를 찾고 허기짐이 심한 날도 파스타를 찾는다. 파스타를 제대로 처음 먹어본 것(급식 제외)은 TGIF라는 패밀리레스토랑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때 운 좋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먹은 쉐차안 쉬림프 파스타다. TGIF의 다른 파스타나, 아웃백의 투움바파스타 등을 제쳐두고 그 시절 내게 원탑은 쉐차안 쉬림프 파스타 였다. 아르바이트를 관둔 지 약 10여 년 후에 부천역에 있던 TGIF에서 소개팅한 여성에게 권한 메뉴도 쉐차안 쉬림프 파스타였고, 이 메뉴를 맛보고 극찬한 상대 여성은 오늘 내게 저녁식사를 차려주었다. 개인적으로 고마운 음식이다.

 

 이토록 파스타를 좋아하는 입장이다 보니 샘솟는 기대감을 억누르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긴다. 고로 재료의 향을 잘 살리는 음식이다.라는 표현은 싱겁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고, 한국은 비교도 안될 만큼 짜고 맛없다, 한국의 파스타가 더 맛있다는 평에는 맛없는 식당만 찾아간 것이라는 일침도 많이 보였다. 이번에도 운이 좋게도 짧은 기간 동안 제법 넓은 스펙트럼의 파스타를 경험하였다. 정말 맛없는 파스타부터 이 맛에 먹는 게 이탈리아 음식이구나도 경험하였고 재료 맛이고 뭐고 이건 맛이 없다고 할 수 없네라고 외칠만한 파스타도 경험하였다.


 맛없게 먹은 파스타의 특징부터 열거해 보자면 특정한 맛이 강하다. 특히 짠맛이 지배적이다. 예를 들어 까르보나라의 경우 맛있게 먹은 집과 그렇지 못한 집에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 이제 웬만한 한국사람도 까르보나라가 크림파스타가 아니라는 점은 안다. 계란 노른자와 치즈를 섞인 소스가 면을 휘감고 짭조름하게 바싹 익힌 관찰레라는 단순한 구성인데, 맛없는 가게의 경우 형체를 알 수 없이 바싹 타 있는 관찰레(라고 추정은 하지만 무슨 고기 인지 알 수 없는)나 면의 염도 수준이 비슷하게 높다. 면과 관찰레 모두 짠맛만 가득 차니 연거푸 와인만 찾게 되는데 이런 가게가 제대로 된 와인을 내놓기나 하겠다. 반면에 맛있게 먹은 까르보나라의 경우 각자의 역할이 분명히 다르다. 면은 약간의 감칠맛만 느껴질 뿐 신선한 달걀의 향만 덮어져 있고 간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두께감이 있는 관찰레는 바싹 익힌 삼겹살 정도의 식감을 보유하며 짠맛을 담당한다. 여기서부턴 개인의 취향에 따라 관찰레의 염도와 달걀의 신선함을 섞어가며 음미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라구소스나 아라비아따소스도 비슷하다. 짠맛만 나거나 매운맛만 난다. 특정한 맛을 강하게 해서 재료의 부실함을 덮는 게 대체로 맛없는 파스타의 방식이라고 추정한다. 여담으로 메뉴판에 이태리어, 영어 외에 너무 다양한 언어, 특히 러시아어나 중국어가 기재되어 있다면 강함 의심을 해볼 만하다.


 맛있게 먹은 파스타는 특정한 맛이 강하지 않다. 재료의 향과 맛이 강하다. 자극적인 것을 원한다면 아쉬울 순 있지만 한국에서 느끼는 풍미와는 다르다. 이를테면 부라타토마토파스타를 먹을 때 부라타치즈의 맛과 토마토 맛이 7~80%를 지배한다. 근데 그 부라타치즈와 토마토가 엄청 맛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놀란 소스가 토마토소스인데 토마토 향이 이렇게 달콤하고 풍부하게 소스에 머금어져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요즘 유행하는 스테비아토마토 같은 인위적인 느낌의 단맛이 아니라 토마토 특유의 신맛과 좋은 밸런스를 만들어내는 달콤함이다. 라구소스에서도 이것이 고기소스다 라며 육식의 힘을 보여주고 라자냐 같이 복합적인 소스가 들어간 느낌의 파스타는 새로운 신선한 맛이 파악하기 어려운 밸런스를 맞춰준다. 특히 라자냐의 경우 홈메이드가 많이 붙는데 집집마다 고유의 소스를 사용하다 보니 셈법이 복잡해지는 기분이다. 크림파스타조차 크림맛이 지배적이지 않고 함께 들어간 재료의 향을 해치지 않는다. 재료의 향과 식감을 살려준 채로 면과의 조화를 이루는데 제 역할을 한다.


 파스타 면도 다양하고 재밌다. 맛없는 집들은 공통적으로 스파게티면을 사용했는데, 다른 파스타 가게들의 경우 링귀니도 희귀할 정도로 다양한 파스타를 사용하였다. 재밌는 점은 우리나라에서 안단테라 하여 살짝 덜 익은 파스타 면을 먹어야 찐 파스타라고 얘기하곤 하는데(약간 평냉부심이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정작 살짝 퍼져서 소스가 살짝 스며들어가 있는 면 익힘이 대부분이었다. 라면도 꼬들면으로 먹었는데 퍼진 면을 좋아하는 아내를 만나며 식성이 바뀐 걸 수도 있다. 아무튼 각종 파스타 면 모두 살짝 퍼진 게 더 맛있더라 이 말이다. 면이 불어야 더 먹잖아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집 앞에 있는 이탈리아 음식점을 찾았다. 사람도 제법 북적이고 르꽁드블루 자격증도 붙어 있는 곳이다. 그런데 르꽁드블루는 프랑스 요리 자격증 같은 개념 아닌가.. 왜 이탈리아 식당에 붙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부라타치즈가 올라간 토마토파스타를 먹어봤다. 토마토케첩 맛이다. 까르보나라를 주문했다. 크림소스에 베이컨과 달걀노른자가 올라가 있다. 맛없지는 않다. 다만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파스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밀라노의 나빌리오 운하에 위치한 Canaletto Bistrot. 내가 찾던 라구소스를 맛볼 수 있었다.
볼차노의 Franziskanerstuben, Feichter Bistro. 메뉴에 써있는 재료의 맛과 향이 그대로 느껴지며 파스타의 식감이 매우 즐겁다.
피렌체의 Osteria Santo Spirito에서 경험한 뇨끼와 라자냐. 둘다 한국에서 먹어본 식감이 완전히 다르다. 뇨끼란 이렇게 먹어야 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곳.
로마의 Pesciolino에서 1/2로 나눠준 뇨끼, Pantha Reid의 까르보나라
로마의 Pasta e Vino Osteria는 파스타 면을 직접 고르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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