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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현 Oct 23. 2023

스트레스 외주화

우리는 스트레스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다

#늦은 밤, 폐 속까지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 인적 없는 교차로 사이로 선형의 잔상을 그리는 자동차 전조등에 내 몸이 닿는다면 좀 편해지지 않을까

#뭐가 그리 바쁜지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뛰어내리면, 변하지 않는 현실에 좌절을 느끼고 있는 나를 봐줄 수 있을까

#쉬지 않고 울리는 메신저의 아우서에 심장은 터져버리고 거칠어진 호흡에 숨이 막히지 않을까


 최근 10년 내에 스스로 느꼈던 감정이고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로 인지한 순간들이다. 언뜻 보기엔 심각한 수준의 우울 증세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찰나의 순간에 지나갔던 일들이다. 종종 교통사고 나서 몇 주 누워있고 싶다거나 팬데믹 시절에 전염성 질환 노출을 희망한다고 농담하는 분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어쨌든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거나 알 수 없는 증상이 나타나는 점에 대해 나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해결책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상담가나 전문가를 만나 해소하기 위해 시도했다. 그중 긍정적인 효과를 느낀 사례도 있고 크게 의미가 없던 방식도 있었다. 나라는 사람의 성향과 상황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한다. 중요한 건, 내가 분명히 추천하고 싶은 방식이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회사에서도 수익성을 낼 수 있는 영역이라면 내재화를 위한 투자를 집행한다. 반면 집중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영역은 해당 사업에 전문화된 곳을 찾아 외주를 준다. 종종 외주사에 대한 갑회사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화제가 되기도 하지만 애초에 각자 잘하는 부분에 집중하기 위한 거래이므로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 음식 만드는데 강점이 있는 식당이 배달대행사와 외주계약을 맺는 이유는 수익성이지 누군가의 압력에서 나온 게 아니다. 십수 년 전처럼 여러 명의 배달기사를 직접 고용하며 고정비를 부담하기보다는 코어시간에 많은 매출(주문)을 처리할 수 있는 구조가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배달대행사도 고객(식당)이 만족할 수 있게끔 배차관리나 라이더수급을 조정하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세무기장이나 급여계산을 위한 직원을 고용하기보다는 외주를 넘기는 편이 효익이 높아질 수 있다. 외주화라는 거래는 본업에 집중하여 얻고자 하는 가치나 지향하는 목표를 중심으로 운영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비용 절감이 목적이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비용 절감도 수익성을 얻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생각해 봤을 때 반문할 수 있는 질문으로 성립이 되는지 조차 고민이 필요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노동자가 어떻게 배제되느냐는 다른 이야기가 될 순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개인의 입장에서도 잘 해내지 못하는 부분은 과감한 외주화가 필요하다. 투자에 대한 지식을 얻을 시간도 없고 감조차 못 잡는다면 펀드매니저를 찾아가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운동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개인트레이너를 찾아가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어딘가 아프다고 느껴진다면 병원을 찾는 게 최선이지 네이버지식인에서 민간요법을 찾다간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지 알 수도 없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유튜브 같은 매체가 발달하며 혼자 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적절한 비용 지불과 리스크 관리, 적정한 효익성에 대해 고민을 해본다면 전문가를 찾아가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우리의 정신건강도 마찬가지인데 명상, 운동 등으로 “관리”할 수 있는 상황인 사람도 있겠지만 “치료”나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한 상황에 놓여있을 수 있다. 분명한 건 개인이 스스로 판단할 지식이나 기준이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는 점이다. 해결책을 찾아서 스트레스 원인을 제거하는 게 최선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비슷하면서 다른 상황의 반복이 연속되고 근본적인 흐름의 변화를 가져오는 게 상당히 어렵다. 종교에 귀의하거나 이민을 가는 정도의 수준으로 삶의 궤적을 바꾸지 않는 이상 비슷한 원인은 다시 생기기 마련이다. 암세포 제거하듯 스트레스 원인을 도려내봤자 다른 곳으로 전이된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론 정신의학과 전문의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처음 공황증세로 착각하고 찾아갔을 때 처방해 준 약을 먹고 빠르게 진정되는 경험을 했는데, 활성화된 어느 신경계를 진정시키고 예민도를 낮춰 스스로 느꼈던 흉부기관의 소음이 멀어지게 도움을 준 것이라고 한다. 악몽이나 쓸데없는 생각도 많이 줄었는데 이런 영역조차 약물 치료를 통해 제어가 되는 경험을 거치며 우리 몸이 노골적으로 프로그래밍화가 되어 있는 구조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약물치료의 가장 큰 효익은 정상적인 상태의 자신을 바라볼 기회가 있다는 점이다. 오랜 기간 지쳐 본연의 모습을 놓쳤다가 마주하는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 수면이나 운동 같은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갖추기 아주 좋은 타이밍이 놓인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정신과 상담을 적극적으로 추천하였고 “내 손으로 보낸 정신과 환자만 한 트럭”, “정신과 협회가 있다면 내게 표창장을 주어야” 같은 류의 농담도 가능해졌다. 다들 하나같이 광명을 찾고 간증을 하고 하는데, ‘기억력이 좋아졌다’, ‘수면의 질이 좋아졌다’, ‘콧바람이 절로 나온다’, ‘고민이 없어졌다’ 등 비슷한 사례가 쏟아졌다. 만성우울증 판정을 받은 지인의 경우 무기력하고 두려운 공상이 자주 생겨 스스로 네거티브한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왔으나 치료 시작과 함께 불필요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점에 대해 대단히 만족스러워했다.


 아마도 사람들이 정신과에 찾아가는 것을 가장 주저하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시선과 스스로 정신적 문제가 없다는 착각, 치료에 대한 불신 등일 것이다. 사회의 시선은 외부적인 요인이므로 논외로 치부하더라고 착각과 불신은 전문가와 상담하고 처방을 받으며 해소했으면 한다. 내가 여전히 강력하게 추천하는 이유는 서두에 주저리 써둔, 외주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처방을 받고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상황에서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고민거리가 정말 쓸데없고 불필요하며 정말 해결해야 할 사항을 자꾸 방해하는 훼방꾼 역할만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건강한 상태라면 그저 상황별 시나리오를 정리하고 다른 집중거리를 찾아볼 수 있는 건강한 정신적 체력을 갖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부분에 대해 외주화를 넘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업무 성과나 삶의 질의 차이는 계속 벌어질 것이다. 이 글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전문가를 찾아가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 개인적인 성향이 누군가와 미주알고주알 대화를 하며 위안을 받고 힘을 내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으로도 많은 부분에서 해소가 되는 분들도 볼 수 있었다. 공감과 외로움을 강하게 느끼는 분들이라면 정신과보다 심리상담센터를 먼저 찾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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