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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현 Jan 07. 2024

왜 우리는 아저씨에 몰입했을까

나의아저씨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시청한 영화 <거미집>의 평가를 등록하기 위해 왓챠피디아에 방문하니 평가가 기록된 영화가 1362편이라고 한다. 영화 감상 시간이 2632시간이어서 “100일 동안 영화 본 ‘웅녀급 영화인’”이라는 코멘트도 달려 있다. 영화를 많이 봤다고 해서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영화를 꽤나 사랑하는 사람은 맞나 보다. 반면에 TV보관함에 담긴 드라마 평가수는 106개에 불과하다. 드라마 한 시즌 혹은 한 작품의 시청 시각이 길기 때문에 영화와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드라마에 많은 애정을 갖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2시간 내외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영화에 비해 작품 전체의 호흡과 이야기의 서사가 길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진다. <왕좌의게임>, <나르코스>, <하우스오브카드>, <브레이킹 배드> 등 드라마라는 매체를 통해서 표현이 가능한 서사와 캐릭터쇼가 펼쳐질 때나 예외적으로 애정을 갖고 지켜본다. 그나마 이 경우에도 시즌별로 몰입도가 천차만별이 되다 보니 중간에 덮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시즌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잘 흘러가다가 다음 시즌에 대한 떡밥만 잔뜩 남긴 후 제작사와 연출, 출연진의 경영환경과 촬영 스케줄을 감안해야 하는 상황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최근에는 OTT세상이 되다 보니 몰아보기가 가능해졌지만 두어 편 보고 한주를 기다리며 호흡을 가다듬어야 하는 방송 환경도 거부감이 있다. 집중력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힘든 본인에겐 드라마는 너무 긴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2018년에 TvN에서 방영한 드라마 <나의아저씨>는 최종회에서 시청률이 7%를 넘어섰다는 기사를 볼 수 있는데, 이 수치가 당시 어느 수준의 흥행인지 감이 오진 않는다. 급변하는 드라마, 미디어 시장에 대한 몰이해 덕분에 흥행도에 대한 열기가 피부로 와닿지는 않지만 메가히트작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히려 방영 직전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받은 배우 오달수의 하차와 두 남녀 배역의 나이차가 많다는 우려의 목소리로 덮인 논란이 기억에 남는다. 외적인 요소로 시끄럽게 시작했지만 방송 종료 후에도 오랫동안 몇몇 대사와 장면이 쇼츠화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드라마에서 배우 이선균이 나오는 장면을 캡처해 대사 내용을 합성한 뒤, 마치 “이선균의 명언 모음집”같은 짤의 존재였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마음먹고 이 드라마를 정주행 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곱씹으며, 이선균이라는 흥행배우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는지 바라보았다.


 여러 배역과 각각의 서사가 나오지만 이 드라마는 오롯이 이선균이 연기한 박동훈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박동훈은 분명 많은 시청자의 워너비 스펙을 갖고 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의 팀장으로 재직하며 자녀를 미국으로 유학 보낼 만큼의 수입과 재산(무려 서울 소재 아파트 자가 보유자)이 있다. 게다가 박동훈은 회사에서 본인을 믿고 따르는 충실한 팀원들과 함께 일하며, 퇴근 후에는 본인을 부러워하는 동네 친구들과 편하게 술 한잔을 한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가도 변호사로 활동하는 미모의 배우자는 바가지를 긁지 않는다. 40대의 직장인 중 대부분은 부러워할 만한 수준의 삶이며, 금수저가 아닌 30대에게는 이루고 싶은 매력적인 모습일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잘생기지 않고 적당히 풍기는 훈내의 외향적인 면도 시청자들에게 내심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수준으로 느낄만하다. 반면에 속내는 그렇지 않다. 사내 정치 놀음에 밀려 상사와 팀원 사이에 치이고 자녀 얼굴은 가물가물하며 아내는 본인의 후배이자 금수저인 직장 상사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 본인 입장에서는 철부지로 보일만한 형과 동생을 보며 어머니를 지켜내기엔 어깨가 무겁다. 속내도 모르고 본인을 부러워하는 친구들 앞에서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사내 정치, 비참함, 부담감 또한 40대의 직장인 대부분 피할 수 없으며, 곧 닥쳐올 30대도 가시거리에 있다. 즉 박동훈은 모두가 되고 싶은 모습을 갖고 있지만 모두가 두려워하는 요소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 험준한 상황에서 아이유가 연기한 이지안이라는 인물과 마주하며 스스로 멋진 가족이자 사회인 그리고 아저씨로 성장한다. 그리고 이 서사는 이선균이라는 배우로 완성한다.


 처음 이선균을 마주했던 작품은 <보스상륙작전>이라는 코미디 영화다. 영화 <친구>, <두사부일체>로 특유의 캐릭터를 구축한 정운택을 적극 활용한 조폭코미디물로 기억하는데, 독특한 목소리로 양아치 연기를 하던 이선균에게 눈길이 갔다. 영화 <넘버 3>의 박광정(랭보 역)이 떠올랐는데 아마도 양아치 연기 어딘가에서 반듯한 모습이 느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옥희의영화>에서 불륜 사실을 지적받는 장면도 극강의 리얼리티를 표현해 낸다. 잃을게 많은 교수가 현실의 난처함을 버텨내며 몸무림 치는 모습은 보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을 들어주고 싶을 정도로 얼굴을 화끈하게 만든다. 영화 <화차>, <내 아내의 모든 것>, <끝까지 간다> 세 편을 이선균의 힘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꼽는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몰리는 현실의 인물이 진실에 다가가고 잊었던 사실을 깨닫고 위기를 극복하는 서사가 ‘이선균의 짜증 내는 모습’과 함께 완성된다. <나의아저씨>는 드라마라는 매체의 특성을 활용해서 이 이선균이라는 배우의 스트레스를 오랫동안 천천히 숙성시켜 현실적으로 폭발시켜 버린다. 이선균이 가장 잘 해낸 모습을 박동훈이라는 인물을 만나며 시청자에게 감정이입과 현실 타협 가능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해 냈다. 그렇게 이선균은 모두의 아저씨가 되었다.

<옥희의영화>


  <나의아저씨> 팬들에겐 각자만의 명대사나 명장면이 있을 듯한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장면 같은데, 개인적으로 상당히 섬뜩하고 공감이 갔던 대사가 있다. 타인의 삶을 우리가 과연 함부로 재단할 수 있을까. 어떤 일이든 어떤 문제든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 모두 절대적으로 올바르고 최선의 판단을 해낼 수 있을까. <나의아저씨> 3화의 한 장면이다.

"내가 유혹에 강한 인간이라 여태 사고 안 친 것 같아? 유혹이 없었던 거야. 그러니까 모르는 거야. 내가 유혹에 강한 인간인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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