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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현 Mar 18. 2024

읽상

#파친코

 어린 시절 흑석동의 할머니 댁에 가면 당시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셨던 친할머니의 여동생을 자주 뵐 수 있었다. 자매 간에 우애가 두터워 서로 간에 서울과 오사카 사이의 왕래가 잦은 덕이었다. 하얀 피부톤과 오밀조밀한 특유의 말씨를 뒤로하고 일제 버몬드 카레와 슬라이스 치즈 한 움큼만 손에 쥐었던 기억이 있다. 이모할머니와 달리 그녀의 남편은 멋스러운 백발, 화통한 웃음소리와 환하게 웃는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다만 일본어만 구사하셨기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 길이 없긴 했지만 말이다. 자식 세대 간의 왕래는 없었기에 친할머니의 알츠하이머 발병과 이모할머니의 요양원 입소 소식과 함께 모든 연락이 끊겼다. 친적을 구분하기가 더 어렵던 어린 시절에도 어떤 할머니가 흑석동의 시장에서 장난감 한 박스를 쥐어준 기억도 있다. 몸집도 크시고 힘도 센 우리 할머니와 달리 마르고 세련된 느낌을 뿜어내시던 그분은 아버지가 중학생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여동생(혹은 누나), 즉 아버지의 고모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겨우 몇 해 전이다. 오사카에서 금형 공장으로 적잖은 부를 축척하셨다는, 그렇기에 90년대에 일본과 한국을 제 집 드나듯 다니며 선물 한 보따리를 갖고 올 수 있었던, 이모할머니와 이모부할아버지도 그랬고, 나고야에서 레미콘회사를 운영하며 큰 성공을 거두셨다는 고모할머니 모두 재일교포셨다. 일본으로 넘어가서 정착하신 시기를 모르다 보니 조선인의 정체성을 갖고 계셨는지 알긴 어렵지만, 일본에 거주 중인 교포 내지 조선인은 모두 부자로 산다고 생각할 만큼 어린 내게 물질적인 인상을 많이 남겨 주셨다. 그땐 일본으로만 넘어가면 모두 부자구나라고 생각했다. <파친코>와 함께 간접적으로나마 90년대에 뵙던 먼 친척의 삶을 어렴풋이 느껴본다.


#아침그리고저녁

 하루에 대한 설명을 잠에서 깨어난 아침부터 잠들기 전 저녁까지 하듯, 우리의 인생도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설명하지 않나. 어떤 이들은 한 사람의 인생을 장례식장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하고 슬퍼하고 그리워하는지 말이다. 과거엔 이 얘기가 꽤나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는데 커보면서 느껴보니 장례식장의 흥행은 자식의 사회적 위치가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인생을 평가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자식농사라고 한다면 맞는 얘기가 될 수도 있게다만.. 나는 어떻게 삶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한켠에 항상 자리 잡고 있는데 나도 동네 한 바퀴 돌며 정리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이 소설이 내게 준 영감일 것이다. 다른 얘기지만, 경이로운 탄생의 순간을 예찬하는 아버지의 시각과 그나마도 부정적인 뉘앙스로 달랑 한 줄 언급되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부모 자식의 관계라는게 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인간관계론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기보다는 다가오는 타인과 친분을 쌓는 스타일이다 보니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그다지 어려움 없이 살아왔다. 아, 상대에게 나의 매력을 어필하고 설득하고 유혹해 내야 하는 이성관계를 제외하고 말이다. 아무튼 잘해주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누군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을 안 한 지 십수 년이 되었지만, 회사에서 자리가 자리인지라 “우리 친하게 지내요”를 해보려다 보니 표지 속 세일즈맨 출신 강사를 찾아갔으나 슬프게도 초반에 덮어버렸다. 불쾌했던 사람들이 트라우마처럼 떠오르며 손이 닿지 않는다. 내 인복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더 운에 의지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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