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일째, 캄보디아 숲과 바다에서
망그로브
열대 지방의 바닷가 조간대에서 자란다.
우리 숲에는 크게 붉은, 흰, 검은 망그로브 세 종류가 살았다. 붉은 망그로브가 가장 물가 가까운 곳에 서식한다. 소금기를 잘 견디기도 하고, 흙이 조류에 휩쓸려가지 않게 지지해 주는 뿌리 구조 덕분이기도 하다.
물가에서 좀 더 멀리 검은 망그로브, 흰 망그로브가 산다. 모두 잎의 모양도, 뿌리 모양도, 번식체(propagule)도 다 다르게 생겼다. 흰 망그로브는 과잉 염분을 이파리를 통해 배출해 내느라 잎에 흰 반점이 있고, 뿌리가 우아하게 생겼다. 검은 망그로브(lumnitzera littorea)는 심각한 멸종 위기종이다.
망그로브 숲은, 일반적인 육지의 숲보다 같은 면적에 탄소를 50배 이상 격리(sequester)시킬 수 있다.
실제로 망그로브 숲 안을 거닐면, 기름기처럼 번들거리는 탄소 액화 흔적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너의 이름들을 영어로 배웠기에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를 번역어로 적는 것이 어색해.)
두 달 동안 너희들에게 휩싸여 살아갈 수 있어 정말 감사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
어떤 습기도, 염분도, 오염도 모두 이겨내고 활활히 번성하는 모습을 닮아가고 싶다.
착생 식물들(epiphytes)
망그로브 숲뿐 아니라 열대지방 대부분의 울창한 나무들을 뒤덮고 있는, 을목들.
다른 식물이나 돌 위에 자라나며, 공기 중으로 뿌리를 뻗어 영양을 흡수하는 능력도 있다. 우리나라에선 난초.. 라고 불릴 법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종들도 있다.
우리 숲에는 걷는 데크로 가는 길목에 난초 구역이 따로 있었는데, 내가 묵던 텐트 근처이기도 해서 자주 지나다녔건만 모기가 많아 길게 머문 적은 거의 없다. 그중에서도 치렁치렁 늘어진 박쥐란(elkhorn / deerhorn)의 아름다움이 인상에 깊게 남아있다. 특히 비가 온 다음 날 숲 안으로 은은하게 떨어지는 햇빛을 받을 때의 그 아롱진 초록빛.
그 외의 초록이들.
망그로브 숲 사이사이에 늘 공생하며 노란 꽃을 보여주던 바다 히비스커스, 물고기 독 나무(fish poisoning tree), 정말 동그란 부채처럼 생긴 베트남 부채 야자, 물고기 꼬리 야자. 민트와 라벤더가 혼합된 향기가 나던 해변가 허브는 친구가 도착하던 날 꺾어 들고 마중 나갔지.
그리고 내가 심고, 돌보고, 기록한 뒤 옮겨 심었던 작은 망그로브 묘목들.
매일 아침이면 너희가 자라고 있는 보육원(nursery)을 돌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지.
앞으로는 누가 너희를 돌볼지 모르겠지만, 서로를 믿고 땅과 물 공기 빛 힘을 믿어요. 그곳에서 자라나고 또 뻗어나갈 너희들을 생각하며 기도할게.
나비
Common jay, Midnight pansie, Mormon, Great mormon, Swallowtail, Magpie. . .
캄보디아 숲엔 형형색색의 나비가 무척 많았다. 우리가 주력해서 연구하는 종은 아니었기에 지나가다 만나면 영어식 약식 이름들만 배웠는데, 종 이름으로 찾지 않으면 한국에선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알기 어렵다. 크메르 어로는 또 어떤 이름들을 가졌을까. 숨을 참고 살금살금 다가가도 하나같이 포르르 날아가버리는 통에 숲의 생명들 중 사진으로도 남기기 가장 쉽지 않은 편.
그래도 나비들아, 처음에는 색깔도 이름도 다 거기서 거기 같고, 절대 외워지지 않을 것 같던 형상들이 어느덧 기억에 남고, 마음에 남았어. 우리 사이에 근심도 부침도 많은 시간들이었지만, 네가 나타나 우리의 주의를 끄는 동안은 평화가 함께 했네.
새
아, 새 정말 새! 새소리 없이는 숲 속의 하루가 조금도 흐르지 않았어..!
온통 새파란 등깃털에 오렌지빛 배를 가진 킹피셔(common kingfisher), 그리고 붉은 킹피셔(ruddy kingfisher)가 푸드덕 날아오를 땐 주로 망그로브 사이를 흐르는 물속으로 날랜 사냥을 할 때였지.
떼 속(Te sok)강을 따라 카약을 탈 때도 눈을 크게 뜨고 시야 구석구석을 살피지 않으면 그 모습을 만나기 쉽지 않은 숲의 요정!
그에 비하면 꽤나 느긋하고 한 나무에 모여 깩깩꽉꽉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오리엔탈 혼빌(oriental pied hornbill)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어. 어느샌가 그들이 자주 머무르는 나무가 어디인지도 알게 되고, 내가 어떤 속도로 지나가면 그들이 푸드덕 날아오르는지도 알았지. 노랗고 커다란 둥근 부리를 잊지 못할 거야.
그리고 작고 보드라운 음색으로 노래하는 노란 배의 썬버드, 길고 검은 꼬리를 늘어뜨리고 사람을 피하지 않던 검은 샤마. 숲에 사는 분들이 기르시던 닭들. 흰 공작과 잿빛 공작의 이름은 스위티와 파이. 먼 곳 어디선가 '휘이이잇'하는 휘파람 소리가 들리면 알아볼 수 있던 바다 독수리.
숲의 다른 동물들
다람쥐, 쥐, 뱀(golden tree snake), 매일 어린 망그로브 잎을 와구와구 먹어치워 묘목에서 떼어주어야 했던 달팽이들. 적이 온다는 걸 알리는 신호로 딱딱 울리는 경고음을 내던 붉은 뻘게(mud crab)들. 개와 고양이들.
사향고양이(palm civet)도 어느 밤길에 딱 한 번 마주쳤지! 아주 작은 도마뱀부터 제법 크고 늘 구석진 곳에 숨는 톡카이 게코.
어느 날 밤 숲을 거닐며 마주한 반딧불이들. 코모도 드래건처럼 생긴 아시아 워터 모니터를 마주친 날도 있다. 거미들과 개구리들, 두꺼비의 이름들도 다 배우지 못했네.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섬의 숲엔 야생 원숭이들도 산다고 했다.
이 모든 이름들, 아마 다 기억하지 못할 너희들의 이름과 모양, 움직임을 떠올리니 차마 다 소화하지도 못할 깊고 진한 시간들을 선물 받았다는 마음이 울컥 차오른다.
서로 얽히고설켜, 생생하게 그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던 너희들. 그 누구 하나도 모자랄 데 없이 그 자신일 수 있는 숲. 거기에 내가 있었다니.
아, 글도 길어지고 감정도 깊어져서 두 편으로 나누어 적어야겠다. 지금까지는 육지 편이었고, 바다 편은 시작도 안 했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