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66] 아버지의 반려식물

금강산사부디

by 할수 최정희

아버지는 화초 가꾸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네다섯 살 때 어느 날 아버지가 선인장을 사 오셨다. 가시가 달린 선인장이 손바닥처럼 납작한 것, 손가락처럼 길쭉한 것, 동그란 것 등 모양까지 각가지여서 신기했다.


요즘이야 태어나면서 다육식물이나 선인장을 보고 자라지만 그때는 시골에서 선인장을 키우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날 선인장을 처음 본 것이다.


선인장에 따라 하얀 털 같은 가시가 촘촘하게 나있기도 하고, 가시가 몇 개씩 모여 뻗쳐 있는 것과 줄을 따라 가시가 돋아나 있는 것도 있었다.


선인장의 가시는 잎이 변한 것인데 사막 지방의 뜨거운 햇볕을 견뎌내기 위한 것이다. 선인장은 다른 식물과 달리 밤에 기공을 열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가시가 선인장의 고유의 특징이라고는 할 수 없다. 탱자나무, 산초나무, 푼지나무,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등 나무와 풀에도 가시가 있기 때문이다.


선인장이 다른 식물과 다른 점은 가시자리가 있는 것이다. 가시자리는 가시가 나있는 부근에 자잘한 잔가시가 많이 나 있는 것을 말한다. 가시자리는 가시자리 밑에 있는 생장점을 보호한다.


아버지는 납작한 선인장의 가운데를 동그랗게 오려냈다. 그리곤 손가락선인장이나 동그란 선인장을 잘라 접붙였다. 동그란 선인장은 윗부분을 잘라내고 다른 선인장을 접붙였다.


해가 지나가면서 선인장에서 꽃이 피어났다. 어린 내가 보기에 이파리도 줄기도 없데 몸통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그중에 금강산사부디라고 불렀던 선인장이 있었다. 이 선인장은 줄기에 깊게 파인 굴곡이 있었는데 이 굴곡이 금강산 계곡을 닮았다고 그렇게 불렀을 것 같다. 줄기의 굴곡 위에 가시가 몇 개씩 줄을 따라 나있었다.


금강산사부디 화분은 4 개가 있었다. 해가 갈수록 금강산사부디가 커져서 내 키보다 커졌다. 겨울에 실내에 커다란 선인장 화분을 들여놓고 아버지는 팔아야지 하면서도 팔지 못했다. 오랫동안 키워 온 정 때문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아버지의 반려식물이었던 것이다.


중학교 때였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우연히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앗, 우리 금강산사부디가 모두 트럭에 실려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내 키보다 큰 선인장 4개가 빠져나간 자리가 유난히 휑해 보였다.


아버지는 금강산사부디를 더 키우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집안에서 키우기엔 너무 커버려서 어쩔 수 없어 큰맘 먹고 파셨을 것이다.


물 한 번 준 적이 없고 그냥 지나다니며 바라본 것이 전부인 나도 금강산사부디가 사라지자 마음 귀퉁이가 잘려나간 듯했다.


오랫동안 함께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트럭에 실려가는 금강산사부디의 마지막 모습을 본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내가 타고 가는 버스와 금강산사부디를 싣고 가는 트럭이 엇갈려 지나가는 순간 내가 고개를 들고 차창 밖을 바라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금강산사부디가 먼저 버스 차창 가에 앉은 나를 발견하고 내게 "안녕."이라 인사했을 것이다. 내가 금강산사부디의 소리 없는 "안녕."이란 인사가 내 마음에 전달되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차창 밖을 내다봤을 것이다.


생태공예힐링핼퍼 1호/ 할수

작가의 이전글[100-65] 외갓집/ 만주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