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따라 외갓집에 갔다. 이 역시 네다섯 살쯤 일이다. 외할아버지 제삿날이었던 것 같다. 우리 집과 달리 외갓집엔 여자들도 제삿상 앞에서 절을 했다.
외갓집에서의 아버지는 집에서 보던 아버지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아버지가 한마디 한마디 말을 할 때마다 외할머니와 외작은아버지들과 외숙모님들과 이모님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아버지에게 이런 장난기가 숨어 있는 줄 몰랐다. 처음 보는 아버지의 모습이었지만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일제강점기시대에 어린 엄마는 만주에서 살았다. 외할아버지가 엿공장을 했다. 날마다 엿장수들이 와서 엿을 떼 가서 팔았다. 엿공장은 꽤 잘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외할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셨다. 그 후 외할머니가 엿공장을 팔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엿공장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 남자들인 데다 만주라는 낯선 땅에서 남편 없이 외할머니가 젊은 여성인 자신과 자녀들의 안전을 지킬 수 없을 같았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태어난 해는 1931년이다. 이 해에 만주사변이 일어났고 이후에 중국에 속했던 만주가 일본으로 넘어갔다. 만주 역시 일본 점령하에 있다 보니 이전보다 더 살기 힘들어졌을 것이다.
외할머니가 빨리 엿공장을 파느라 제값을 못 받고 팔게 되었다. 외할머니가 고향에 돌아와서 집과 논밭을 사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당시에는 요즘 같은 은행이 없었다. 그래서 남자 어른이 없는 집에 돈을 가지고 있기가 불안해서 외할머니는 집안 어른에게 돈을 맡겨 놓았다가 일부부 떼였다고 한다.
연극 '낮은 칼바람'은 작가 신안진이 1931년 만주에서 살아낸 외증조부의 이야기와 엄마가 전해주는 소소한 이야기에다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만든 작품이다. '낮은 칼바람'은 시대의 영웅이 아니라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칼바람 같은 시대를 견뎌낸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이 연극은 코로나로 직접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관람객은 온라인 중계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연극 '낮은 칼바람'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엄마의 이야기는 내용이 서로 다를지라도 나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 외삼촌들과 엄마와 이모들이 겪은 바로 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시대 태어난 엄마가 어릴 때 만주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사람들이 살기 위해 만주로 이주해 간 것은 그냥 역사 속의 이야기였다. 엄마가 어릴 때 만주에서 살았다는 것을 안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의 만주 이주가 그냥 역사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어린 엄마도 만주의 낮은 칼바람을 맞으며 자랐을 것이다. 우리는 시대의 아픔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의 시대가 주는 아픔과 고난. 역시 누군가에게는 만주에서 부는 칼바람이다. 이 칼바람을 한 개인이나 한 가족이 막기는 어렵다. 우리에겐 칼바람 앞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