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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Sep 04. 2024

터널이어도 좋아라

시를 읽고 쓰다

터널이어도 좋아라     


문인수 시인은 ‘정선선’ 첫 행에서 한 말을 마지막 행에서 정반대로 뒤집어놓는다.     

 

정선선은 터널이 많아 짧다짧으나 여러 굽이 깜깜한 

정선선은 강원도 정선군 내 증산과 구절리를 토막토막 

잇는다

(다시 정선선, 문인수)     


정선선 첫 행에는 터널이 많아 정선선이 짧다는 말에, 나는 그렇지 터널이 많아 길이 짧지라며 수긍했다.      


산중 종착지 구절리역이 일대 지층 깊이 쌓인 시꺼먼

혹한을 벗으며 가물가물 깔리는 새벽의 은하철도정선

선은 터널이 많아 길다.

(다시 정선선, 문인수)     


시인은 마지막 행에서는 첫 행에서 한 말과 정반대의 말을 한다. ‘터널이 많아 정선선이 길다’라는 부분을 읽을 때, ‘그래, 우리 삶에 터널이 좀 많냐? 그래서 돌아 돌아온 길 얼마나 길었나!’라며 또 수긍하고 말았다.     

우리 삶에 있는 깜깜한 터널, 어떤 이는 금방 통과하고 어떤 이는 통과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터널을 금방 통과하는 사람은 좀 험하지만 질러가는 길로 인식한다. 그믐밤처럼 깜깜한 터널 속을 두렵지만 직진해 간다.      


터널을 통과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은 자기가 있는 곳이 깜깜해서 동굴 속인 줄 알고 자꾸 뒤돌아나가려고 한다. 뒤돌아 가보면 아까 지나왔던 깜깜한 그곳이고, 지나왔던 그곳이 더 어두워져 있는 것을 발견할 뿐 입구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의 입구는 고철덩이처럼 녹으면서 단단하게 굳는다. 아무도 이 시간의 입구를 다시 열 수 없다. 시간은 출구만 있는 터널이다. 그래서 전진하는 것 이외 다른 방법이 없는데 사람들은 이를 잘 깨닫지 못한다. 깨닫는다 하더라도 터널 속을 오랜 시간 돌고 돌아본 후의 일이다.    

  

터널을 통과하는데, 나는 수십 년이 걸렸다. 삶의 시간 대부분을 빛을 향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피해 다니는데, 사용했다. 터널을 통과하고 보니 알겠다. 어둠은 뚫고 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렇지 않으면 평생 어둠 속에서 어둠을 피해 다녀야 한다는 것을. 죽기 살기로 빛을 향해 가면 스르르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이 어둠인 것을.     

 

한칸한칸앞칸이 없는 사람들 먼저 떠났다

(다시 정선선, 문인수)     


이 한칸 한칸이 뜻하는 것은 뭘까. 시인이 무슨 의미로 사용했는지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내가 한칸 한칸을 시간으로 여기면 시간인 것을. 터널을 통과하는데 나는 몇 칸의 시간을 사용했을까. 내 앞에는 몇 칸의 시간이 남아있을까.      


마지막 칸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앞으로 한 칸 한 칸 전진하던 영화 설국열차가 생각난다. 멀지 않아, 나는 시간의 앞칸 앞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시간의 맨 앞칸 앞문 밖은 어떤 세상일까. 그곳에도 봄에는 벚꽃이 피고 5월이면 장미꽃이 필까? 아니면 영화 설국열차처럼 눈이 덮인 하얀 세상이 나를 맞이할까?    

 

나는 시간의 맨 앞칸 문을 열고 들어선 지 좀 된 것 같다. 앞쪽에 있는 문이 보인다. 두렵다. 머지않아 앞문 손잡이를 잡고 돌리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 같아서. 굽이굽이 깜깜한 터널 속의 시간에는 맨날 칼바람이 불었다. 종종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고 폭설까지 내렸다. 문을 발견했다면 망설임 없이 그냥 열고 뛰어내렸을 것이다.      

터널의 꼬리가 토끼 꼬리보다 짧게 느껴는 날이다. 시간의 앞문을 열고 시간의 열차에서 내리는 나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이 세상에서 숨을 쉴 수 있다면야. 정선선 터널보다 길어서 평생 빠져나올 수 없는 터널이어도 좋아라. 이 세상에서 숨을 쉴 수 있다면야. 너를 더듬어서라도 볼 수 있다면야.      


인용: 다시 정선선, 문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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