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고 쓰다
천종숙 시인의 ‘꽃잎은 바퀴였다’를 읽는다. 천 시인은 2006년 부산일보에 ‘바뀐 신발’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꽃잎은 바퀴였다’는 2006년 신춘문예 당선시집에 실린 신작 시다. 이 시는 바로 내 이야기 같았다. 시인이 루페로 꽃을 관찰하듯, 나를 세세히 들여다본 듯했다.
(꽃잎은 바퀴였다, 천종숙)
나는 몇 번이나 이 행들을 다시 읽었다. 아마도 천 시인은 화분 밑바닥에 있는 물받이 구멍으로 발을 내밀고 길을 모색해 보았으리라. 내가 이 글을 쓰는 것도 물받이 구멍으로 발을 내밀고 길을 모색하는 것이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물받이 구멍으로 뿌리를 뻗고 길을 모색하는 중일 수도 있으리라. 우리가 물받이 구멍으로 발을 내밀고 길을 아무리 모색한들, 테이블 위에 놓인 화분 물받이 구멍 아래 흙 부스러기에서 무얼 찾을 수 있겠는가.
식물이 물받이 구멍으로 발을 뻗어봤자, 화분 밑바닥 크기보다 더 발을 뻗을 수 없다. 화분 밑바닥에서 벗어나면 뿌리가 말라버릴 것이다. 삶에 실망하고 절망한 적이 있다. 화분 밑바닥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난 다른 곳으로 뿌리를 내밀어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사이 나의 젊은 시간은 훌쩍 담을 뛰어넘어 가버렸다.
나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 같은 시간의 꼬리를 붙잡고 씨름을 하고 있다. 칠순인 지금 글이라는 새로운 촉수를 이리저리 내밀어보고 있다. 산골짜기에서 일찍 출발한 시냇물과 달리 나는 마음이 조급하다. 이리 퐁 저리 퐁 뛰어다니는 철딱서니 없는 개울물처럼 노닐 시간이 없다.
시냇물은 졸졸 흐르다가 좀 세차게 달려가려면 어느새 바위에 부딪히고 만다. 맴돌고, 맴돌다가 겨우 수습하여 바위 옆구리를 빠져나가면 아래로 내리 꽂혀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냇물이 정신을 차리고 보면 소에서 맴돌고 있다. 나는 삶의 소에서 빙글빙글 오래 맴돌았다. 강을 거쳐 바다까지 가기에는 갈 길이 멀다. 바다에서 맘껏 항해하고 싶은데.
(꽃잎은 바퀴였다, 천종숙)
천 시인이 새로운 세계로 나가고 싶은 간절함으로 피워낸 꽃 한 송이는 시의 세상이 아닐까? 시인은 골몰을 질주해나가 골목을 벗어났을 것이다. 꽃잎이 떨어지는 것은 화분 속 식물의 끝이 아니었다. 새로운 시작도 아니었다. 도약이었다. 왜 꽃잎이 떨어지는 것이 꽃잎의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도 아니고 도약이었을까? 그건 새로운 세계로 나가고 싶은 간절함이 때문이다. 물받이 구멍으로 내민 발을 도로 거두어들였기 때문이다.
나도 화분 속 식물처럼, 새로운 세계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화분 밑바닥 물받이 구멍으로 발을 내밀었다. 그곳은 원하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땐 후회가 막심했지만, 지금은 화분 물받이 구멍으로 발을 내민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화분 밑바닥의 물받이 구멍으로 발을 내밀어보지 않았더라면, 화분 밑바닥 세상은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 아니란 걸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이 세상에는 내가 경험하지 않은 수많은 세상이 존재하고 있는데, 지금 이곳에서만 내 삶을 한정시키고 싶지 않다. 꽃잎이 바퀴가 되어 새로운 세상으로 질주하듯, 내가 하는 일들이 세상으로 질주해 나갈 바퀴가 되어 주리라 믿으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세상으로 뿌리를 내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