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할수 Nov 02. 2024

눈빛이 달라진 교육생

한글교실에서

내가 한글교실에서 사용하는 교재는 교육부에서 발행한 지혜의  나무 12와  송찬호 시인의 동시집 여우와 포도이다.  교육부가 발행한 교재는 무료로 나누어주지만, 여우와 포도는 개인이 사야 한다. 이 동시집을 수업에 사용하기로 한 이유부터 먼저 말하겠다. 모두가 이 책 한 권 사는  데 세 달이나 걸린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하겠다.


다른 교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첫째 교육부에서 발행한 교재 12권 지혜의 나무에 문어체로 된 단원이 여럿 있어서다.  이런 단원에는 노인 교육생들이 수 십 년 살아오면서 일상생활에서 들어 본 적이 없는 낱말들이 있다. 들은 적이 있다면,  그냥 흘려보냈을 것이다. 나도 모르는 영어나 다른 나라 말은 귀에 들려도 그냥 흘려보낸다.  이렇게 흘려보낸 낱말을 후에 다시 듣거나 책에서 본들 무슨 말인지 못한다.  노안 교육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한 단원에 ‘독창성’과 ‘독창적인 ‘이란 단어가 나온다. 이분들은 ‘독창성’과 ’ 독창적인 ‘이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  그래서 독창성을 사용해야 할 자리에 독창적인을 독창적인을 사용해야 할 곳에 독창성을 사용한다. 내가 두 낱말이 어떻게 다른지 아무리 설명해도 노인 교육생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 낱말을 설명하는 나의 능력이 모자라기도 하겠지만, 노인 교육생들의 이해 능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낱말뿐 아니라  이런 류의 낱말을 노인 교육생들이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은 내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그러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 슬픔이 밀려 올라옸다. 이 간단한 낱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에서 이분들이 글을 몰라서 겪었을 삶의 버거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둘째는 문장이 길어서다.  문장이 길면 주어와 서술어를 파악하기 힘들어서 문장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놓치기 쉽다.  이분들은 글자를 읽을 줄 알면 되는 줄로 여겼다.  글자를 아는 것과 글을 이해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는데.  처음에는 내가 뭔가를 설명하면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도 있었다. 책을 읽기만을 바라서다.


어떤 분은 자신의 일생을 글로 쓰고 싶다고 했다. 어떤 분은 자식들에게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고 싶다고 했다.  이분들은 모두 다른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교육부에서 발행한 교재는 얇고 내용이 많지 않다. 또 문어체로 된  글까지 있어 이 책만을 공부해서는 자신의 일생을 글로 쓰거나 편지를 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다른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단군신화나 다른 짧은 동화를 한글 파일로 만들고 인쇄를 해서 나눠주었다. 이런 인쇄물은 다음 수업 때 가지고 오지 않기도 하고 가지고 와서도 어디에 끼여 있는지 몰라 찾기도 힘들었다. 매번 다시 복사해서 나눠 주기도 힘들었다.  어쩌다 보면 글씨가 작을 때도 있다. 그러면 글씨가 작다고 불평했다. 이때 나는 30분 일찍 수업을 시작했다. 매 수업마다 30분씩 봉사했던 것이다. 빨리 배워서 좀 더 빨리 자신의 일생도 쓰고 편지도 쓸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였는데. 한분이 수업을 일찍 시작한다고 불평했다. 이 수업 안 하면 안 되냐고 묻기도 했다. 일찍 안 와도 된다고 누누이 말했건만.


나는 송찬호 사인의 동시집 여우와 포도를 선택했다. 이 동시들을 간단하고 쉽다. 읽다 보면 슬몃 입가에 웃음이 돌기도 하고 시인의 기발한 상상력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을까 싶다. 노인 교육생들에게 이 동시집을 사라고 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된다. 몇몇 분이 왜 그런 걸 사야 하나라고 이의를 제기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또 어떤 분에겐 이 책 한 권 사는 게 버거울 수도 있기 때문이고.  


여우와 포도 동시집을 들고 가서 동시를 몇 개 읽으면서 따라 하라고 했다. 내가 우습다고 생각한 그곳에서 몇 분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에는 동시 '목련꽃'을 칠판에 썼다. 따라 읽고 쓰고 외우기를 했다.  한 분이 말했다. "선생님, 그 책 재미있네요. 사겠심더. 어떻게 사야 되는지 모르니까.  선생님 책 나주고 다시 사이소." 나는 수업이 끝나고 내 동시집을 주었다.  


내가 동시집을 수업에 사용한 지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담당 사회복지사가 말했다. 한 분이 내가 책을 사라고 했다며 집에 가서 읽지도 않을 건데 라며 불평했다고 했다. 나는 사라고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책이 도움이 되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기도 하고 혹시 부담이 되는 분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고. 이때는 세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동시집을 구입했을 때였다. 수업 때마다 한 분씩 두 분씩 동시집을 사야겠다는 노인 교육생들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불평한 사람이 A분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분은 수업에 대한 불평이나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한다. 사회복지사님과 이야기를 나눈 후 며칠이 지난 때였다.  수업을 시작하기 위해 인사를 한 직후였다. A분이 지혜의 나무 12권을 들면서 "공부하는데 이 책만 있으면 되지. 왜 딴 책이 필요하냐? 돈은 얼마 안 하지만, 다른 사람이 다 사는데 안 사니까 좀 그렇다."며 불평했다.


 "책을 안 사도 됩니다. 칠판에 다 써 드라니까요.  도움이 되라고 하는 일입니다. 부담을 드리려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다시 이야기하지 맙시다. 안 사도 됩니다."라고 나는 말했다. "사람들을 식사에 초대했다고 합시다. 어떤 순서로 음식을 해야 하는지 다 잘 아시죠?" 노인 교육생들은 "그럼 많이 했는데."라고 대답했다.  


"어떤 사람은 생선 구이를 먼저 해놓고 나물 반찬을 만들었어요. 그다음에 밥을 하고 맨 나중에 국을 끓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죠.  먼저 국을 끓이고 밥을 안쳐놓고 손님 올 시간에 맞춰 밥이 되도록 밥솥 전원을 켜야 하죠.  생선구이를 미리 해 놓으면 맛이 있겠어요?." "누가 그렇게 하냐?"라고 어느 분이 말했다. "제가 그랬어요. 신혼 때요. 해본 적이 없어서요. 해보니까 어떤 순서로 해야 하는지 알겠더라고요."그러면서 나는 이런 말까지 했다.  "저는 공부를 해봤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힘을 덜 들이고 더 잘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바로 이날었다. 수업  중에 새로운 교육생이 왔다. 이분은 전에  이곳애서 공부하던 분이라 모두가 아는 분이었다. 동시 '목련꽃'을 받아쓰기를 하는 중이었다. 이분은 처음이라 받아쓰기를 하지 말고 내 책을 보고 쓰라고 했다. 이분이 동시를 보고 쓰다가 이 책을 사겠다며 어떻게 살 수 있는지 물었다. 모두들 놀라 이분을 쳐다보았다.  자신들은 이 책을 사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고, 아직 안 산 사람도 있는데 말이다. 몇 분만에 산다고 하니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새로운 교육생을 쳐다보던 사람들이 모두들 고개를 돌려 A분을 보며 '니도 사라마' 했다. 이렇게 하여 A분이 동시집을 사게 되었다.


내가 수업을 일찍 시작한다고 불평하고 이 수업 안 하면 안 되냐고 묻던 사람도 A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해도 안 되더라."라고 말한 분이기도 하다. 이 말의 전말은 이렇다. 내가 처음이 수업을 시작했을 때, 노인 교육생들은 숙제를 내주기 원했다.  숙제는 어려운 낱말 10번 쓰기이다. 이 분들은 모두 한 낱말 한 낱말씩 다른 낱말을 계속 썼다. 나는 한 낱말을 10번 쓰고  난 뒤 다른 낱말을 다시 10번 쓰라고 했다.


이후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한 분이 "이렇게 하니까 더 공부가 잘 되더라."고 했다.  몇 분이 동조의 말을 했다. 이때 A 분이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해도 안 되더라." 다른 교육생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A분이 이렇게 쓴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안다. 왜냐하면  수업 시간을 이렇게 쓰는데 시간을 할애 적이 없는 데다 이분이 숙제를 해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 중에 가끔 나 자신의 이야기도 하고 교욱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한다. A분은 결혼한 후 시부모님과  시동생들과 시누이들과 힘께 살았다고 한다. 시부모님을 모시며 시동생과 시누이들까지 자식처럼 돌봐야 했던 것이다. 사실 이 말을 하기 전에도 힘들게 살았다는 것이 표정과 말에서 드러났다.


이 분의 눈빛이 달라졌다. 받아쓰기를 할 때면, "나는 못한다.""머리가 나빠서 해도 안 된다." 라며 아예 한 글자도 쓰지 않았는데.  요즘엔 받아쓰기를 할 때면 글자를 떠올리기 위해  생각하는 표정이 얼굴 가득히 피어오른다. 그리고 "더운데 어떻게 하노?" "바쁜데, 시간이 어딘노?"라며. 숙제를 해 온 적이 없었는데. 꼬박꼬박 숙제를 해온다. 숙제 검사할 때면 한 낱말 씩 10번을 쓰내려 간 공책을 뿌듯한 마음으로 내민다.  그리고 수업 중에 내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


A분이 이렇게 달라진 이유를 나는 모른다. A분이 나는 못 한다는 마음을 버리고 해 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했을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조만간 눈빛이 달라진 A분에게 상을 주려고 한다. 책 한 권이나 공책 몇 권일 수 있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