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단 아래 소녀, 나의 이야기

2부 2장 두 개의 제단, 다른 종류의 희생양

by 할수 최정희

제2부: 같은 듯 다른 나와 제인 에어의 삶

제2장 두 개의 제단, 다른 종류의 희생양

1. 붉은 방의 본질: 보이는 벽과 보이지 않는 벽

모든 싸움은 자신이 갇힌 방의 본질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된다. 제인을 가둔 방은 명백했다. 그녀의 ‘붉은 방’은 ‘증오’와 ‘학대’라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방이었다. 리드 부인은 “너는 나쁜 아이야”라고 소리치며 제인을 그 방에 가두었고, 제인은 자신이 부당하게 갇혔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었다. 그녀의 싸움은 그 단단하고 명백한 벽을 향한 것이었다. 그것은 분노와 공포로 가득 찬, 뜨거운 싸움이었다.


하지만 나를 가둔 방은 보이지 않았다. 나의 ‘붉은 방’은 남동생의 백일잔치가 열리던, 하늘은 맑고 햇빛은 창창한, 그날의 마당이었다. 제인의 방은 사방이 막힌 붉은 벽이었다면, 나의 방은 ‘사랑’과 ‘축하’라는 이름으로 지어진 넓고, 아름답고도 자유로운 마당이었다. 그곳에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를 사랑하는 가족과 친척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사랑은 조건부였다. 나의 존재 가치가 내가 가지지 못한 ‘남성성의 상징’에 따라 평가되었고, 이 조건이 바로 보이지 않는 벽의 재질이었다. 나는 내가 갇혔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세상의 중심에 닿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내가 가지지 못한, 내가 가질 수 없는 그것이라, 내 앞날이 어떨지 예고를 해주었다.


제인의 제단이 '사회적 질서' 그 자체였다. 그녀가 가난한 고아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 되거나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는 그 질서를 위해 바쳐질 뻔한 희생양이었다면, 나의 제단은 '가문의 영속'이라는 보이지 않는 신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그 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장손이라는 새로운 왕의 받침대가 되어야 했던 살아있는 제물이었다.


2. 간수의 얼굴: 명백한 적과 사랑하는 압제자

싸움의 대상을 아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인은 나보다 운이 좋았다.

그녀의 간수인 리드 부인은 명백한 ‘적’이었다. 증오의 대상이 명확할 때, 우리의 분노는 건강한 방향을 찾는다. 제인은 리드 부인을 미워하고, 그녀에게 저항하며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었다.


나의 간수는 누구였을까? 바로 나를 사랑해 주었던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들 중에 여성들도 있었다". 그들은 악의가 없었다. 그들은 단지 오랜 기간 이어져 온 가부장제라는 제단의 충실한 신도였을 뿐이다.


남동생을 위한 ‘받침대’가 되어 그의 따스한 체온을 느낄 때,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제단 위에 올려지는 희생양의 굴욕과 수치심을 느꼈다. 이것은 제인이 겪지 못한, 교묘하고도 잔인한 심리적 압박이었다. 적이 미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일 때, 저항의 칼날은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된다.


3. 싸움의 방식: 불꽃같은 항변과 침묵 속의 관찰

그래서 우리의 싸움의 방식 또한 달랐다.

제인은 리드부인이 학대를 할 때, “당신은 기만적이에요!”라고 소리치며 저항했다. 그녀의 분노는 활활 불꽃처럼 밖으로 터져 나왔다. 그녀의 싸움은 외부를 향한 ‘항변’이었다. 물론 그녀 역시 사랑하는 남자의 정부가 되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원칙과 싸워야 했던 치열한 내적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그 투쟁의 근원에는 언제나 외부 세계의 부당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침묵을 택했다. ‘내 사진도 찍어줘’라는 말을 할 수 없었고, 사랑이 가짜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드러낼 수도 없었다. 대신 나는 내 앞의 현실 장면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끼며, 다른 시공간에서 이 기이한 의식을 내려다보는 ‘관찰자’가 되었다. 제인의 생존법은 야생마처럼 날뛰는 것이었다면, 나의 생존법은 안갯속에 숨은 짐승처럼 기척을 감추고 스스로를 지우는 것이었다.


제인과 나의 길은 달랐다. 그녀는 눈에 보이는 적과 싸워 자신의 존엄을 쟁취했지만,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휘두르는 보이지 않는 힘에서 나 자신을 지켜야 했다. 제인의 벽은 무너졌지만, 나의 벽은 노래가 되어 따라붙었다”


마당의 찬미의식이 끝난 후에도.. 내 귀에는 ‘저 고추 좀 봐라’라는 노래가 계속 울려 퍼진다. 따스하던 그날의 햇빛과 함께, 살아있는 동안 내 곁에서 나를 가두는 붉은 방으로 몰아넣는 소리, 이제는 그만 듣고 싶지만,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 노래가 이미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면, 끊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야 알겠다. 노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가사를 바꾸고 음을 새로 짜야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면서, 내 안에서 여전히 울려 퍼지는 ‘고추 좀 봐라’의 합창을 다른 곡으로 편곡하려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단 아래 소녀, 나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