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터 외전, 여성과 환경 에세이
환경보호에 힘쓰고,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사람 중 유독 여성의 분포가 높아 보인다. 이를 두고 일련에서는 페미니즘을 생태주의와 결합하는 에코 페미니즘이 등장하기도 했고, 여성이 더 도덕적이기 때문에 환경과 동물권 등을 더 신경 쓴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자연과 여성의 연관관계는 무엇이며, 여성이 더 도덕적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관점은 오랜 인간사의 관습 중 하나이다. 특히 산업혁명이 대두되며 문명, 기계, 이성, 논리 등이 남성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여성은 남성에 반대되는 자연, 감성 등과 동일시되는 이분법적 관념이 두드러지게 된다. 미술사에서는, 원시주의의 영향을 받아 여성을 자연에 동일시하는 관점을 작품 속에 투영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당시 독일의 표현주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자연으로 상정되는 인간의 이미지는 항상 여성의 누드로 그려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관점은 남성은 자연(여성)을 지배하는 위치로 상정하고, 지배당하는 존재는 여성으로 상정하며, 남성(문명)이 피지배 문화(여성)를 정복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즉, 여성은 남성들의 남성성을 더욱 돋보일 존재로서, 반대되는 특성들을 할당받았다. 그중 도덕성도 포함된다.
'여성은 왜 더 도덕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여성이 성별 계층 상에서 피지배계층으로 살아오면서 기존의 도덕성을 삶의 태도로 갖추게 된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여기서 기존의 도덕성이란, 독일의 남성 철학자 니체가 말한 '노예의 도덕'을 의미한다. 니체에 따르면 순종, 겸손, 근면과 같은 일반적인 도덕적 가치는 '노예의 도덕'이며, 인간이 추구해야 할 도덕은 '주인의 도덕'인 진취, 결단, 창조이다. 이는 서구 세계의 관념적 토대인 그리스도교의 도덕관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나온 주장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나쁜 것'으로 일컬어지던 노예의 생활방식이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했던 유대인의 종교인 그리스도교 내에서는 '선'의 개념에 포함되었고, 이후 그리스도교가 세계로 퍼져나가며 노예의 도덕인 순종, 겸손, 근면이 인류 보편적인 도덕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를 성별 계급의 맥락에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여성은 가부장제의 노예로서 노예의 도덕을 체화하게 되었다. 노예로 대변되는 피지배계층은 질서에 순응할 뿐, 주체적으로 무언가 결정하거나 특유의 창조성을 갖지 못한다. 주인들이 일궈내는 세상에 언제나 노예로서만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남성 중심적인 세계에서 여성들은 내면에 도덕성을 갖추고 살아가길 강요받고, 훈련받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고,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일원을 사회화시킨다. 문명사회가 여성들을 너무도 도덕적으로 키워냈으므로, 여성들이 더 도덕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의식적으로라도 '비도덕적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자기 암시를 해야만 한다. 이 세상이 여성들을 너무도 도덕적으로 키워냈으므로, 우리라도 '덜' 도덕적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도덕 코르셋을 벗고, 자기 검열을 그만두는, 건강한 방향의 개선책이 필요하다.(다 같이 윤리를 저버리고 범죄자가 되자는 얘기는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 '보편적 시민으로서의 도덕성은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 이상의 자기 검열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의 경우, 이 사회가 보편적 시민으로 설정한 디폴트 값인 남성을 기준으로 생각하였다. 같은 상황에서 비도덕적 행동 혹은 실수를 저지른 주체가 남성이었다면 사회의 보편적인 반응은 어떠할지 떠올려 보는 방법이 있다. 또는 자책하게 될 때 필요 이상으로 나를 검열하고 있지는 않나 차분히 생각해보고 검열의 이유가 여성이라는 정체성 때문은 아닌지 판단해보는 것도 좋다.
마지막으로, 같은 여성의 실수에 대해서 부정적인 코멘트를 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아니어도 잘못한 여성을 비난할 자들은 많다. 여성들은 실수를 바로잡을 용기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용기와 능력을 믿고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준다면, 여성들은 이를 계기로 더욱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우리는 아직 누리지 못한 것, 되찾아야 할 권리들이 너무도 많다. 그 모든 것을 향해 가는 길에 방해물을 최소로 하며 함께 나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