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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준 Jan 19. 2023

토스카나에 왔으면 포도밭이 보이는 농가민박에서 묵어야지

아그리투리스모


아그리투리스모(Agriturismo)’는 이탈리아어로 농업을 뜻하는 아그리콜투라(Agricoltura)와 여행을 뜻하는 투리스모(Turismo)의 합성어이다. 토스카나 숙소는 호텔보다 아그리투리스모가 더 인기가 좋은데, 우리 가족 역시 첫 토스카나여행 숙소로 아그리투리스모로 정했다. 나는 선택적 J로 관심 있는 분야에만 계획적이다. 이를테면, 여행에 관련해서는 A부터 Z까지 꼼꼼히 찾아보는 편이다. 일단 대략적인 여행 루트가 나왔으니 그 안에서 숙소를 찾아봤다. 몇 곳을 추려봤지만, 인기 관광지 근처 농가민박은 가격이 저렴하지 않았다. 우리는 4인 가족이기 때문에 룸을 두 개 잡거나 주니어스위트룸을 잡아야 했는데, 아이들이 어려서 룸 2개를 잡기에는 어려웠고, 그렇다고 주니어 스위트 룸에 묵자니 우리의 예산을 벗어났다.


- 오빠 여기 좀 봐바! 포도밭이 보이는 뷰 보면서 멍 때리기 좋을 것 같지?

- 오, 좋네! 괜찮은 곳 있나 한 번 찾아봐.

- 근데 4인 가족으로 하니 1박에 다 50만 원이 훌쩍 넘네…


평범한 월급쟁이인 우리가 남들보다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숙소의 영향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저마다 여행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우리에게 숙소는 잠만 자는 공간이었다. 파워 J인 남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최단루트로 최대한 많이 경험할 수 있도록 스케줄을 짰고, 그 일정을 소화하고 호텔에 오면 대부분 깜깜한 밤이어서 우리는 지친 몸을 씻고 곧바로 잠이 들기 일쑤였다. 여행 초반에는 그래도 이탈리아 여행이고, 여기를 내가 또 올 수 있을지 몰라서 꽤나 비싼 호텔에서 묵었는데 날이 좋을 때는 거의 주말마다 여행을 다니는 우리에게 무리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4인 가족 기준 1박에 20만 원이 넘지 않는 숙소로 다녔다. 일주일 장기 여행 같은 경우는 중간중간 아이들이 수영할 수 있거나, 내가 인스타그램 놀이를 할 수 있는 좋은 숙소도 하나씩 넣었다. 이렇게 다니니 여행은 일상이 되었다.

나는 또 눈이 빠지게 호텔 예약 사이트를 뒤졌다. 그러던 중 에어비앤비에서 딱 우리가 원하던 숙소를 찾았다. 우리의 여행 루트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지만 시설, 평점 무엇보다 1박에 10만 원밖에 하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꼬맹이들을 위한 스파, 어린이 놀이터 포도랑 올리브 나무로 둘러 쌓인 곳이라니. 그래, 여기다. 이번 숙소는 여기로 정했다. 첫날 미션인 가족사진을 다 찍고 나서 우리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숙소로 향했다.


- 주소 잘 찍은 거 맞아? 이런 산속에 집이 있다고?

- 도대체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지?

- 엄마, 배고파. 수영장은 언제 가?


산 길을 20여분 달렸을까, 드디어 숙소에 다다랐다. 숙소에 도착하니 젊은 이탈리아 남자가 반갑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Giovanni라고 소개하며 숙소에 대해서 영어로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Giovanni는 여기서 올리브와 포도를 재배한다고 했다. 자신이 직접 짠 올리브유도 보여주고 직접 말렸다는 토마토와 간단한 와인 안주를 주며 숙소 안내를 해주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탈리안들은 수다스럽지만 정이 많다. 그는 왜 1박만 묵냐며 우리를 나무랐다. 여기서 나무랐다의 의미는 자신이 돈을 못 벌어서가 아닌, 이 좋은 곳에서 며칠 푹 쉬다가 가지. 왜 잠만 자고 가느냐의 의미인 것 같았다. 투숙객 대부분은 아이를 동반한 여행객들이었는데 보통 5일 이상은 투숙하며 호캉스를 즐기는 것 같았다. 나중에 남편과 나는 우리도 유럽사람으로 태어났으면 그랬을 거야라며 이야기했다. 그들은 여유가 있으니까,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어. 가야 할 곳은 많고, 우리는 시간이 없다고.

숙소의 시설은 사진에서 본 그대로였다. 아이들이 놀기 너무 좋은 곳이고 산속에 있어서인지 공기도 맑았다. 비가 와서 수영은 못하겠지만, 간단한 스파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룸도 생각보다 깨끗했다. 나는 숙소를 볼 때 화장실에 좀 집착하는 편인데, 화장실도 무척이나 깨끗했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꽃이 가득 그려진 이불, 정말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농가민박이니. 할머니 취향의 이불도 나름 느낌 있다고 생각했다.

 

- 킁킁, 오빠 이불에서 냄새나지 않아?

- 응? 나는 모르겠는데, 빨리 자자. 내일도 일정이 빠듯해.


이불을 안 덮자니 춥고 그렇다고 이불을 덮자니 냄새가 났다. 언제 빨았을까? 과연 빨기는 할까? 아이들 이불은 괜찮을까? 비슷하겠지? 베드버그가 있으면 어쩌지? 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의 연속으로 그날 나는 잠을 설쳤다. 아는지 모르는지 운전하느라 피곤했던 남편과 신나게 뛰어노느라 지친 아이들을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상쾌한 아침을 맞이한 그들과 이따금씩 잠을 설친 나는 수영을 하러 가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비가 내렸다. 아침이 되면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잠이 들었던 아이들은 비가 온다니 실망했지만, 내가 짐 정리를 하는 동안 아빠와 스파에 간다며 또 금세 기분이 풀렸다.

짐 정리를 하고 아이들이 있는 곳에 가려고 나오니, 옆 방 청소가 한창이었다. 전문 메이트가 아닌 동네 할머니들 같았는데, 청소기가 아닌 빗자루로 룸을 깨끗이 단장했다. 나는 한동안 그곳을 서성이면 이불을 교체하는지 유심히 보았다. 아뿔싸, 연 박을 하는 투숙객의 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불을 교체하지 않고 팡팡 털어서 빨래건조대에 말리기만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어젯밤의 의문이 풀렸다. 역시나 이불을 매일 교체하지 않았던 거다. 다행히 침대시트는 교체하는 것 같았다.  다음에 여기를 오게 된다면, 나는 내 이불을 싸가지고 올 거라고 다짐했다. 수수께끼가 풀린 나는,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갔고, 아이들은 어제의 Giovanni처럼 숙소 여기저기를 소개해주었다.

- 엄마, 수영장 밑에 봐바! 로봇 같은 거 있지? 그게 수영장 청소기인가 봐. 쟤가 지나간 자리는 깨끗해져!

-엄마, 나랑 축구할래? 저기 축구 골대도 있어.

- 여보, 저기 올리브 나무가 많더라, 저쪽은 뷰가 좋을 것 같은데 안개가 껴서 잘 안 보이네


고작 1시간 떨어져 있었는데, 나의 세 남자들은 나를 보자마자 무슨 할 말이 이리도 많은지 서로 앞다투어 말하느라 바빴다. 다음부터는 손 들고 이야기하라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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