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도시락 사진을 보던 언니는 나름 괜찮아 보였는지, 돌연 자기 도시락도 싸 달라고 했다. 갑자기 뭔 소리래. 나는 어영부영 반응하며 그냥 넘겼지만, 언니는 나름 진심인 듯 계속 도시락에 대해 말했다. 못 싸줄 것도 없지.
"1일 천 원."
돈만 낸다면.
좋아서 시작한 일이기는 하지만, 내가 먹는 게 아니라면 얘기가 다르다. 염연히 돈과 시간이 드는 노동이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원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이런 이유에서 한 번에 천 원, 한 달 정액제 3만 원을 요구했더니, 언니는 가족끼리 뭔 돈을 받냐면서 잠시 투덜대긴 했지만 곧 나에게 삼 만원을 송금했다. 시원시원해서 좋구먼. 나는 받은 삼 만원으로 냉동식품 두 봉지와 양념 한 통을 샀다(아무리 생각해도 남는 장사는 아니었다).
다음 날, 나는 찬장에 있던 도시락 하나를 꺼냈다. 언니가 예전에 샀던 도시락통이었다. 내 것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크기도 좀 더 크고 칸도 나뉘어 있어 반찬을 넣기 좋아 보였다.
으음.
막상 도시락을 하나 더 싸려고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이왕에 하나 더 만드는 거니 더 잘 만들어야지 하는 이상한 고집이 생긴 것이다. 일단 야채를 다져볼까. 나는 최근 엄마가 산 전자동 다지기로 양파와 당근, 그리고 고추를 다졌다.
이 정도 갈면 이틀 정도 쓴다
잘 다져진 야채를 어디에다 쓸까. 계란말이를 할까, 볶음밥에 넣을까. 고민을 하던 나는 결국 둘 다 만들기로 했다. 계란 두 개를 푼 물에 야채를 가득 쏟아 넣고, 언제나처럼 도톰한 계란말이를 말아 구운 후 딱 다섯 등분해서 얇게 잘린세 부분은 내 도시락, 두껍게 잘린 두 부분은 언니의 도시락에 넣었다.
그다음, 아래에 있던 볶음용 냄비를 꺼내 기름을 두른 후 준비해두었던 야채와 함께 노릇하게 볶았다. 잘 볶아진 재료 위에 밥 한 공기를 넣고 볶으며 소금 조금과 치킨스톡을 살짝 뿌려 간을 하니 고소한 냄새가 주방에 넘실댔다.
요리는 끝. 이제는 도시락에 잘 담는 것뿐이다. 각각의 도시락에 밥을 반씩 넣고, 그 위에 후리카케를 뿌린다. 야채도 넣고, 토마토도 넣고...
그런데 뭔가 부족해 보였다. 주 반찬이 말이다. 계란말이만으로는 뭔가 심심한데. 떡갈비라도 구워서 넣을까? 나는 곧장 냉동고를 뒤져 떡갈비를 꺼내 전자레인지로 돌렸다. 비록 불로 굽는 것보단 맛없지만, 빨리 할 때는 이만한 방법이 없었다.
계란말이와 마찬가지로 4등분으로 자른 떡갈비를 적절한 위치에 넣고, 그 위에 포인트로 노란 연근 조림(유명 추어탕집에서 사 왔다고 한다)도 등분 내어 멋을 낸다. 오, 제법 도시락 다운 도시락이 완성되었다. 나는 일단 언니의 도시락의 뚜껑을 덮어 밥 쪽은 실온에, 야채와 토마토 쪽은 냉장고에 넣었다. 점점 후덥지근해져 가는 날씨에 야채 반찬들이 쉴까 봐 걱정되었던 탓이다.
설거지 등 정리정돈을 다 한 나는 내 도시락을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때가 되자 도시락을 까먹었다. 야채를 잔뜩 넣어 촉촉해진 계란말이와 달달한 떡갈비, 그리고 잘 볶아진 밥.
오늘도 맛있게 잘 먹었다.
+
언니도 도시락이 맛있었다며 호평이었다. 이왕에 열심히 만든 거 잘 먹어주는 게 좋지. 그런데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서 500원을 올려야겠다고 했더니 그건 무시하더라. 언니라 때릴 수도 없고... 왠지 모를 시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