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은 강하지만 바람은 선선했던 봄이 가고 후덥지근한 여름이 왔다. 몸에 열이 많은 덕에 겨울에는 잘 버티지만 그 탓에 여름은 쥐약인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채 땀을 뻘뻘 흘렸다. 라디오 겸 틀고 있는 유튜브에서 '올해 최고로 더운 날'이라며 물을 자주 섭취하라는 기상 캐스터님의 충고가 들려온다. 바람도 불지 않고, 축축하고, 더운 날.
입맛 없어...
날이 이러니 입은 텁텁하고 속은 더부룩한 게 밥이 영 당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빵이 당기는 것도 아니고, 외식은 더더욱 사절이다(우리 집은 대체로 외식을 하지 않는다. 배달 음식도 마찬가지).
그래도 뭘 먹어야 하는데, 뭘 먹어야 할까? 내가 곰곰이 생각하던 그때, 냉장고를 뒤지던 엄마가 말했다.
"이거 좀 연구해봐라."
"응?"
"닭고기. 사놨는데 날이 이래서 다 상하겠다."
뭔데. 내가 보니 닭의 살을 발라낸 살코기 팩이 세 개가 있었다. 언제 샀대. 이걸로 무슨 연구를 하라고. 내가 물으니 도시락이든 뭐든 해서 빨리 해치우란다. 나는 알겠다고 한 후 닭고기들을 살펴보았다.
부위는 닭다리. 살만 있는데도 불구하고 토실토실하니 신선해 보였다. 이걸 어떻게 먹어야 하나. 더워서 볶기는 싫은데.
오븐으로 구워 먹을까.
그래. 집에는 반년 전에 산 오븐이 있다. 그걸로 구우면 더울 필요도 없고, 손을 쓸 일도 없으니 참 좋겠다 싶었던 나는 곧바로 닭고기를 재우기 위한 양념을 만들기 시작했다.
재료는 간장 잔뜩, 마늘 듬뿍, 설탕 두 컵, 굴소스 쪼르륵, 소금 한 꼬집. 기분 따라 넣으며 만든 양념에 닭고기들을 하나하나 담갔다(잡내를 빼는 우유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날이 너무 더운 탓에 우유 같은 유제품을 사두지 않아 없었다. 그야말로 막무가내 레시피).
닭고기가 푹 담길 정도로 담근 후, 냉장고에 넣고 한 시간 정도 재워놓은 다음 다시 꺼냈다.
양념을 조금 세게 했더니 색은 잘 뱄다. 코를 찌르는 달콤한 설탕 향과 간장 냄새에 간이 짜게 들었을까 걱정은 되었지만 이미 재워둔 건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일단 오븐에 넣고 구웠다. 190도 10분 예열에 2~35분. 이미 발려져 있는 고기라 얇아서 오래 구울 필요는 없어 보여 평소보다 10분 덜 구워보았다.
시간이 되어 고기를 꺼내보니... 완벽한 비주얼의 닭고기 오븐 구이가 나왔다. 생각보다 맛있겠는데. 나는 뜨거운 살코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그릇에다 옮겨 담은 다음 가볍게 청소를 한 후 닭고기 두 조각을 도시락 통에 넣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냥 먹기는 좀 아쉬워 콜라를 한 캔 따고, 저번에 산 양념치킨 소스도 함께 곁들였다. 결 따라 잘 찢어지는 살코기를 양념에 푹 찍은 다음 한 입 먹으니,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었다. 거기에 콜라까지 한 모금 들이키자 입 안에 고여있던 기름기가 싹 청소가 되어 끝 맛도 상쾌했다.
+
다음 날, 남은 닭고기를 살살 찢어 양념에 버무린 후 도시락의 메인 반찬으로 썼다. 역시 밥과 고기는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친구. 더위에 지쳐 달아난 입맛 찾기에는 역시 닭고기 만한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