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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모솔새 Jan 26. 2022

각자의 온도에 맞추어

음식의 적정 온도에 관하여

'얼죽아'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얼어 죽어도 아이스'의 준말로, 추운 날씨에도 차가운 커피를 고집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더운 날씨에도 뜨거운 커피를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음식의 온도는 만만하게 볼 요소가 아니다. 온도에 따라 그 맛이 좌지우지되기도 하니까.


나는 굳이 따지자면 얼죽아 협회 준회원쯤 된다. 겨울에도 아이스커피를 시키는 편이고, 지금도 아이스흑임자라떼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맛을 따지자면 차가운 커피와 뜨거운 커피 둘 다 나름의 장단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스를 주로 마시는 데에는 이유가 따로 있다. 식은 커피를 싫어해서다. 식은 커피를 싫어하는데 찬 커피는 괜찮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일단 내 말을 들어보시라.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면 처음에는 너무 뜨거워서 마실 수가 없다. 조금 기다려야 마시기에 적당한 온도가 된다. 그런데 나는 음료를 무척 천천히 마시는 사람이다. 몇 모금 홀짝거리다 보면 커피는 어느새 미지근해지고, 추운 날씨에는 차갑기까지 하다. 분명 내가 주문한 건 따뜻한 커피인데 마시다 보면 얼음 뺀 아이스커피가 되고 만다. 찬 커피도 잘만 마시면서 뭐가 문제냐고? 따뜻한 커피를 기대하고 마시는데 입에 찬 액체가 닿으면 불쾌하다. 차가운 게 싫은 건 아니고, 따뜻한 커피를 시켰는데 나중에는 의도한 바와 다르게 찬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싫다(식은 커피와 원래부터 차가운 커피는 맛도 좀 다르다).


그에 반해 아이스커피는 어떠한가? 얼음이 든 음료는 아무튼 섭씨 4도 이하의 온도를 유지한다. 여름이 아닌 이상 얼음이 다 녹기 전에 음료를 다 마실 수 있으므로, 아이스커피를 시켰는데 미지근한 커피를 입에 댈 일은 없는 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온도를 유지한다는 게 만족스러워서 나는 대개 아이스커피를 시킨다. 물론 얼음이 계속 조금씩 녹으면서 음료의 농도가 옅어진다는 단점도 있지만 나는 연한 커피를 오히려 선호하므로 괜찮다. 언젠가 커피의 온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상대방은 항상 따뜻한 커피를 시킨다고 했다. 그 이유가 식은 커피가 좋아서라고 하니까 사람들의 취향은 참 다양하다.


최근까지만 해도 음식마다 맞는 온도가 있다고 생각했다. 얼음을 띄우거나 시원하게 먹는 음식으로는 냉면이나 냉국 등이 있고, 잔치국수는 너무 뜨겁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들 한다. 국밥은 뜨끈하게 먹을 수 있도록 토렴 과정을 거친다. 특히나 국수의 경우 너무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따뜻한 잔치국수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살았더랬다. 그런데 얼마 전 시댁에 갔더니 국수를 차갑게 말아 주시는 게 아닌가(생각해보니 냉국수를 파는 국숫집도 많다). 긴가민가하며 먹어보았더니 괜찮았다. 한편 엄마는 냉면이 너무 차가운 게 싫어서 얼음을 빼고 드신다. 


그러고 보면 음식마다 제각기 적절한 온도가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커피든 차가운 커피든, 따뜻한 국수든 차가운 국수든 간에 그저 각자의 온도에 맞추면 될 일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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