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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모솔새 Sep 11. 2023

마약보단 구하기 쉽겠지만

그 구하기 어렵다는 참깨와 고춧가루에 대해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글 중에 이런 것이 있다. '한국에서 마약보다 구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제목의 글인데, 국내산 참기름과 들기름, 고춧가루가 그만큼이나 구하기 어렵다는 내용이다. 제목이야 우스갯소리겠지만 뭐, 요즘은 진짜일지 어떨지. 아무튼 댓글에는 마트산 참기름을 사 봤더니 그냥 참기름 향이 나는 식용유나 다름없었다든가, 고춧가루를 받아다 쓰다가 사서 쓰니 음식이 예전만 못하다든가 하는 증언들이 수두룩했다. 자취하던 시절에 한 번쯤 사 보았던 소용량 참기름은 희미한 맛과 향만큼이나 인상이 흐릿했다. 나는 스크롤을 내리며 그렇지. 마트 건 맛이 없지. 하고 예사롭게 댓글들을 넘겼더랬다.


우리 집 냉장고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글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 우리 집은 참기름도 고춧가루도 다 받아다 쓴다. 항상 여분의 참기름이 있어서 참기름병은 바닥을 내보일 일이 없다. 참깨통, 깨소금통, 고춧가루통도 비는 일 없이 채워지고 있다. 냉동실에는 제각기 봉지에 담긴 들깨가루나 참깨, 고춧가루가 한 자리를 차지한다. 결혼 전 받아 쓴 참기름이 동네에서 얻어온 것이었다면, 이제는 방앗간에서 갓 짠 기름을 얻어다 쓴다. 방앗간에서 내용물이 바뀌지 않도록 내내 지켜보다가 초록색 소주병에 담아 오신 그런 기름 말이다. 


지금껏 어련히 구해지는 거라 생각했는데 올해는 좀 사정이 다른가 보다. 친구분과 통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이렇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사투리도 그대로 옮겨 본다. "깨 많이 심었나? 주변에 깨 많이 핸 사람 없실까. (참기름은 있는데) 깨소금 할 깨가 없다. 우리 딸도 있고, 메느리도 줘야 하고… 느그 언니는 깨 안 하나. 알긋다." 전화를 끊고는 내게 이러신다. "깨가 올해 귀하기는 귀하는 갑네."


듣자 하니 올해 긴 장마로 깨 작황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조생종 깨를 심은 사람들은 나은데, 아닌 경우는 영 수확량이 적다고. 시장에서 한 되 가격을 여쭤보니, 다른 사람한테는 사만 원에도 팔았다며 삼만 오천 원만 달라고 했단다. 작년에는 이만오천 원에 사셨다니까 올해 가격은 선뜻 사기엔 두려운 가격이긴 하다. 다행히 선물 들어온 참기름도 있고 다른 친구분이 주신 참깨가 한 되는 있다고 하셔서 올해는 이렇게 어찌어찌 지나갈 것 같다.


들깨에 대해 말하자면 사정이 좀 더 낫다. 어머님이 직접 들깨 농사를 지으시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농사 규모가 줄었지만 올해도 들깨는 심으셨으니 들깨가루나 들기름이 부족할 일은 없을 듯하다. 사람들이 막 참깨를 볶고 기름을 짜는 지금, 들깨는 푸릇푸릇 한창 자라고 있는 중이다. 내년에 우리 집 식탁에서 만날 때까지, 쑥쑥 자라길.


고춧가루는 옆 동네에 계시는 큰어머니께서 농사를 짓고 계셔서, 그걸 받아다 쓴다. 어머님이 올해는 고추 열다섯 근을 부탁해 놓으셨다고 한다. 찾아보니 한 근에 600g, 고춧가루로 빻으면 8킬로쯤 되는 양이려나? 감이 잘 오지 않지만 우리 집에서 쓰는 양은 아주 조금이니까 어머님께 얻어 쓴다고 해도 티도 안 날 테니 다행이다. 물론 여든이 넘은 큰댁 어르신들이 가족들에게 나눠줄 만큼 많은 양의 농사를 지으신다는 건 걱정스럽기도 하다.


결국 쉽게 얻어지는 건 없다. 직접 농사를 짓는다면 더 큰 노동이 기다린다는 걸 들어서 알고 있다. 그간 어머님이 가방에서 슬쩍 참기름과 고춧가루를 꺼내어 주시기까지, 내게 보이지 않던 노력이 얼마나 들어갔을지. 그건 내가 보지 않은 노력이기도 하다. 올해에는 참기름의 고소함을 더 맘껏 누려야겠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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