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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모솔새 Sep 20. 2023

가을이 지나면 만나기 힘든

9월의 산책로에서 만난 곤충들

얼마 전부터 조금씩 바깥을 걸어 다니고 있다. 운동을 원래 좋아하지도 않는 데다 밖에 나와 걸어본 지가 오래라 어색하기도 하지만, 걸으면서 바뀌는 바깥 풍경을 보는 건 좋아한다. 가끔 나오니 계절의 변화가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천천히 걷다 보면 작은 생물들도 눈에 잘 들어온다.


산책로에는 지금 꽃댕강나무가 가득하다. 지금 계절에는 꽃 보기가 드문데, 가을에 꽃 피우는 드문 조경수 중 하나다. 봄에는 개나리와 벚꽃이, 그다음에는 조팝나무 꽃이 하얗게 피는 길이다. 계절별로 다른 꽃이 피는 모습이 보기 좋다. 산책로 설계자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지금은 갈색 잔디와 푸른 이파리들과 물들기 시작한 벚나무 단풍 사이에서 연분홍빛 꽃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비들은 낡은 날개로 꽃댕강나무 덤불에서 부지런히 날갯짓을 한다. 꽃댕강나무라니, 나무 이름이 왜 그래? 하고 생각하다 보니 나비가 부산하게 날아다니며 꽃송이가 후드득 떨어지던 게 떠올랐다. 아, 꽃송이가 댕강댕강 떨어진다는 뜻이구나. 눈에 띄는 건 제비나비와 네발나비들이다. 제비나비는 날개 끄트머리의 꼬리돌기 부분이 해진 녀석들이 많아 안쓰럽다. 네발나비는 원래 날개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해서 날개가 낡았는지 어떤지 한눈에 알기는 어렵다. 어찌 되었든 나비를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바닥에서 두세 발짝 뗄 때마다 메뚜기가 푸르르 날아올라 풀숲으로 뛰어든다. 관리가 되다 만 산책로는 풀숲이란 말이 어울리게 우거져 있다. 메뚜기는 제철을 맞아 힘 있게 날아오른다. 바닥을 보며 걷다가 어릴 때 할머니가 가끔 해 주시던 메뚜기 반찬 생각을 한다. 엄마는 질색했는데 어린 내가 좋아해서 받아다 먹었던 것도 같고. 좀 고소한 멸치 맛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글쎄 먹을 수 있을지 어떨는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괜히 길 가는 메뚜기 크기를 가늠해 본다. 먹을 수 있을까? 쟤는 너무 커서 안 되겠네.


풀숲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온다. 며칠 전 아파트 단톡방에는 '귀뚜라미 저희 집만 나오나요?'라는 메시지가 올라왔었다. 11층에 사는 사람이 올린 메시지였는데, 나는 11층에도 귀뚜라미가 올라오는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음날 아침, 부엌에서 울리는 귀뚜라미 소리에 다가가 보니 싱크대에서 한 마리가 폴짝거리고 있었다. 그날은 이따금씩 집안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울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집안에서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 꽤 낭만적이야. 물론 귀뚜라미 소리는 밖에서 걸으며 듣는 것이 낫겠다.


 간간이 보이는 잠자리도 이제는 끝물이다. 내가 가는 길 앞에 한 두 마리가 날다가 이내 자취를 감춘다. 어릴 때는 내가 잠자리를 잘 잡는 아이인 줄 알았다. 앉아있는 잠자리 뒤쪽에서 접근해서 날개를 낚아채면 쉽사리 손에 잡혔다. 잡아서 자랑하고는 금세 놓아주고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잠자리들이었던 것 같다. 한창때의 잠자리는 어린아이 손에 잡힐 만큼 느리지 않다. 도망가지 않고 앉아 있던 잠자리들을 생각하면 조금 슬퍼진다.


아파트 단지에는 보랏빛 맥문동 꽃도 배롱나무 꽃도 아직 남아있다. 노란빛으로 봄을 알리던 산수유는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아직은 연둣빛 도는 노란색이지만 군데군데 붉은색이 섞여 들어가고 있다. 교과서에 나오는 시 속 알알이 붉은 산수유가 되려면 얼마나 남았을까.


아직 한낮의 더위는 여전하지만 공기는 하루하루 달라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공터에 강아지풀이 갈색으로 나부낀다. 그 위에 잠자리들이 수조 속 물고기처럼 헤엄치듯 날아다니고, 공터 한 구석에는 가을의 상징과도 같은 코스모스가 피어있다. 날개 달린 여린 생물들은 종내에는 자취를 감출 것이다. 깊어지는 가을 속으로 오늘도 한 걸음 더 걸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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