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빨래집게에서 답을 얻다
2021년 3월,
첫째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면서 덩달아 나도 같이 입학한 기분이 들었다.
새 학년 새 학기라서 그런 것도 없잖아 있겠지만
초등학교는 처음이라서 그런지 준비할 것이 상당히 많았다.
실내화, 색연필, 사인펜, 가위, 풀, 심지어 미니 빗자루 세트까지 준비해서 보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필통에는 매일같이 뾰족하게 깎은 세 자루의 연필과 지우개 하나를 꼭 넣어가야 했다.
아이들이 준비물을 잘 챙겨서 다니는지 담임선생님께서 가끔 검사하신다고 했기에
더더욱 연필 한 자루 지우개 하나에도 이름은 필수였던 것이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온 아이를 보니 얼굴이 어두워 보였다.
이유를 물으니 아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나 내일 선생님이 자기 물건에 이름이 있는지 검사한다고 하셨는데,
내 지우개가 부러져서 이름이 없어. 나 혼나면 어떻게 해?
그냥 지우개 새로 사주면 안 돼?"
지우개를 살펴보니 얼마나 열심히 힘을 쥐고 지웠는지
네모나고 길쭉하던 지우개가 두 동강이 나 있었다.
사실 집에 여분으로 사둔 지우개가 있던 터라 그것을 내주고 아이를 안심시킬까도 잠시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면 아이는 앞으로 지우개가 부러질 때마다 새 지우개를 찾게 될 것 같다는 판단하에
다른 방법을 연구해 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문득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앞선 글에서도 밝혔듯, 나는 겨울이 유난히도 추웠던 철원에서
1991년 6월 1일, 봄의 고을인 춘천으로 이사를 왔다.
대부분 단층 혹은 2층짜리 집들만이 있던 철원 와수리 시골 동네에서는 보기 드문
5층짜리 아파트들을 춘천에서는 쉽게 볼 수 있었다.
불과 전날까지만 하더라도 논밭에서 뛰놀던 내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놀이터에서 놀게 되었다니...!
그야말로 하루 만에 복권에라도 당첨된 듯 마냥 신이 났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의 나는 우리가 왜 이사를 오게 되었고의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갑작스럽게 혼자 지내게 되신 할머니가 염려되셨던 아버지께서
매일 춘천에서 철원으로 출퇴근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도 이사를 결정하셨던 것이다.
새벽같이 버스를 타고 철원으로 출근하시는 아버지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하시게 된 어머니,
그리고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언니까지 모두 나가고 나면,
집에는 나와 할머니 단 둘 뿐이었다.
할머니께서는 어릴 적부터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주로 방에 요를 깔고 누워계시곤 했는데
종종 기력이 있으신 날에는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는 나보고 따라나서라고 하셨다.
당시 빨래건조대가 흔하던 시절이 아니었던 터라
대부분 주황색 빨랫줄을 베란다 바깥쪽으로 길게 늘어뜨려 빨래를 널고 빨래집게로 고정해 놓는 식이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빨래는 가느다란 빨랫줄 위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듯 보였다.
어쩌다 바람이라도 한 번 세게 부는 날이면 빨래는 고사하고 빨래집게가 잔디밭으로 많이들 떨어졌다.
할머니가 챙겨 나오신 비닐봉지의 이유였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면서 빨래집게를 주워 비닐봉지에 챙겨 넣었다.
할머니께서는 옛날 분이시고, 선생님 출신이셔서 근검절약이 몸에 배 있으신 것은 알겠지만
어린 나에게 떨어진 빨래집게 줍는 일은 그저 창피하고 하기 싫은 일 중 하나일 뿐이었다.
빨래집게는 시작에 불과했다.
아파트 단지를 돌다가 행여나 남이 내다 버린 물건이 있으면 할머니는 꼭 집으로 가져오셨다.
의자며 문갑 등을 주워다가 고치고 새로 칠해서 사용하셨다.
다섯 식구가 사는 19평의 작은 집은 어느새 주워온 물건들로 가득 찼다.
이런 분위기의 집에서 새 물건을 사달라고 하는 것은 사치에 불과했다.
한 살 터울의 언니가 사용하던 가방, 옷, 신발은 물론이고
학용품까지 전부 새것이 아닌 것들로 물려받아 사용하였다.
학용품까지 물려받아 사용하다 보니 연필의 경우 금세 몽당이 되곤 했다.
더는 연필을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해 버리려고 하였는데 할머니께서 심이 빠진 모나미 볼펜에 몽당연필을 끼워주셨다.
그렇게 몽당연필이 더 몽당이 되도록 끝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할머니께서 볼펜에 몽당연필을 끼워주셨던 것을 생각하다가 문득 아이의 부러진 지우개를 해결할 방법이 떠올랐다.
바로 지우개의 부러진 부분을 이어서 붙여주는 것이었다.
공구함에서 끈적임이 덜 남는 종이테이프를 가져다가 부러진 지우개의 끝과 끝을 맞닿게 이어 붙여 주었더니, 짧아졌던 지우개가 다시 길쭉한 모양으로 돌아왔다.
종이테이프를 붙인 부분에 아이 이름을 적어 필통에 넣으라고 돌려주었는데도 아이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 지우개 부러졌다고 선생님께 혼나면 어떻게 하지? 테이프로 붙여왔다고 혼나면 어떻게 해?"
그런 아이에게 나는 안심의 말 한마디를 건넸다.
"아니야, 물건 함부로 버리지 않고 아껴서 사용한다고 오히려 칭찬받을 수 있어."
그제야 아이의 어두웠던 얼굴이 조금은 환해졌다.
그렇지만 나도 사실은 아이를 위해 그럴싸한 말로 둘러댔을 뿐,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다음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를 보니 표정이 나름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은 들떠 보였다.
"필통 검사했니? 선생님이 지우개 보고 뭐라고 하셔?"
아이는 당당한 표정으로 씩 웃어 보이며 말했다.
"선생님이 내 지우개를 친구들한테 보여주시면서 '얘들아, ○○이 지우개 좀 봐. 지우개가 부러졌는데도 버리지 않고 이렇게 이어 붙여서 사용하고 있네. 다들 ○○이처럼 물건을 아껴서 사용해야 해요.'라고 하셨어. 그러고 나서 나한테 칭찬스티커 10장 주셨다!"
통했다.
할머니께서 나에게 알려주신 물건 아껴 쓰는 방법이 통했다.
빨래집게 비법이, 몽당연필 비법이 소위말해 먹힌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돈으로는 매길 수 없는 귀한 재산을 물려받았던 것이다.
절약.
그렇게 아이의 부러진 지우개 하나로 잊고 있었던 할머니와의 추억까지 이어붙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