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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Oct 22. 2024

푸바오 없는 푸바오 여행 - 5. 15억국의 오타쿠월드

언어를 몰라도 즐거운 오타쿠월드 방소서점 방문기

마지막날은 시인 두보가 머물며 시를 썼다는 두보초당에 갈까말까가 참 고민이었는데 이때 날씨가… 이런 사람살려적인 날씨였다. 에버랜드는 32도 넘으면 아이바오 러바오도 야외에 안 내보낸다는 정책을 가지고 있는데, 나의 반려인도 판다 체질을 가지고 있어 그 정책을 따르니 조금 더 행복해졌다.

그래서 호텔에서 아침식사하고 짐이나 싸서 12시땡 체크아웃이나 하기로 했다.

주말이라 그런가 메뉴도 하나씩 시키라고 해서 갖다주더라.

이제 유채꽃만 봐도 울컥하는 푸덕이였다

조식을 너무 배불리 먹었기 때문에 건너편 타이구리 쇼핑몰 지하에 있는 방소서점에 가기로 했다. 얼추 교보문고 잠실점쯤 되는 사이즈의 종합 서점이다. 무엇보다 가장 쾌적한 환경에서 고품질의 판다 굿즈를 구경하고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 합격점 드립니다.(응???)

울산시민은 고래를 타고 청두 시민은 판다를 탄대요
푸바오 관련 번역서도 많이 팔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만난 1999위안의 공식 6개월 인형…

갑자기 이 인형이 40만원이라고 생각하니 현타가 밀려와… 결국 안샀다. 인형은 굉장히 정교하고 푸바오를 닮았다. 20만원이었으면 샀을지도 모르지만…. 40만원은 좀 그래. 아무튼 푸바오와 허화 등 다른 인기 판다들의 6개월령을 모사한 인형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서점 한가운데 있는 카페에서는 판다 음료수도 팔고 있었다. 나는 이날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QR코드 주문이라는 것을 만났다.

아니글쎄 테이블 qr코드를 찍어서 나오는 화면으로 주문하면 결제가 되고 음료가 나오더라니까

이제 음료는 맛보다는 얼음의 양으로 만족도가 판가름난다. 삥이 넉넉하고, 판다는 마시멜로우였다.


네? 판다월드 굿즈샵 아니냐구요? 서점이라니까요…. 하지만 푸바오도 못보는데 푸바오 도장은 찍어가야 하지 않겠냐며…..

인장첩을 사서 도장을 야무지게 찍었다. 한중일 관광지에 가면 어디나 도장 찍는 데 자체는 많은데, 도장 전용 수첩을 쌓아놓고 파는게 역시 장사는 중국 따거분들이시다….. 그런 생각을 하게 했다. 나도 인장 수첩을 하나 샀다.

해리포터나 요즘 유행하는 장송의 프리렌 같은… 오타쿠 코너도 널찍하게 있었다. 참 15억국 오타쿠란 2차만으로도 자급자족이 풍부하게 될뿐더러 시장 크기가 크니 안 들어오는 것도 없어서 본국이 아니라도 나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타쿠월드 아니고 중국 교보문고 맞는데, 단지 이런 베스트셀러 코너를 봐도 뭐가 잘나가는 지 모르는 중알못이라서 오타쿠 코너만 헤~ 하면서 신기하게 보고 왔을 뿐이다.

물론 중국 교보문고인 만큼 평범하게 베스트셀러 코너도 있고 책도 많고 유리 다구나 차도 팔고 있다. 칼라데아 조화도 있다. 중국어를 읽을 수 있으면 얼마나 넓은 세상이 펼쳐질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다양하고 넓은 분과의 책들이 있었다. 내가 읽을 수 있는 건 기본 한자와 단어들 뿐이지만서도.

아무튼 언어를 모르는 내가 주목한 것은 서예 구역이 되겠다. 옛날에, 그러니까 조선시대쯤 조상님들이 읽고 베껴썼을만한 것들을 베껴쓸 수 있는 서예 키트를 많이 팔고 있었다. 타이완이나 일본, 한국 서점에서는 발견한 적 없는 품목들이었다.

이거는 들고 계산대에 가보니 따로 종이를 대거나, 아무튼 종이를 따로 사서 베껴쓰기 위한 용도라고 서점 직원이 알려주었다.
그래서 이것만 삼.

결국, 호기심으로 난데없는 조상님 체험 키트를 사고 햅삐해졌다.

내가 고른 건 이백의 시와, 금강경과, 다경이다. 그리고 한국에도 많이 팔지만, 붓펜을 하나 샀다. 다경은 조선시대에는 분명 마이너였을 것 같지만… 다산 정약용 선생님 정도는 쓰고 베꼈을 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사보았다.


그리고 돌아와서 틈틈히 흉내내 그렸다.(대충 70% 정도만 아는 글자고 조합이 안되니까 글자를 그렸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모든 패키지에 이 서체는 명나라때 살았을 것 같은 문징명이란 문인의 서체를 기반으로 만들었다는 설명과 함께 한자 쓰는 법이 동봉된 안내서가 들어있다. 처음에는 뜻을 몰라도 그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쓰다보니 내용이 궁금해졌다. 서점에서 책을 산 뒤, 뜻을 한국말로 옮긴 걸 문장을 끊어가며 베껴썼다. 세종대왕 이도 선생님은 진정 위대하신 분이며 한글 만만세이다….

육우 <다경>
<금강경>

금강경은 정말 어렵다. 내용의 심오함보다도, 이중번역이기 때문이다. 산스크리트어를 중국어로 음차한 다음 이걸 다시 한국인이 이해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자신의 모국어와 그에 최적화된 글자 시스템이 없던 시절 조상님들은 어떻게 공부하고 종교에 믿음을 가졌을까? 잠시 체험일 뿐이지만 베껴쓰면서 나도 모르게 숙연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은근히 마음의 잡념을 날리는 데 좋아서 한국에 번역본이 있는 고전 위주로 몇 가지 더 쓸까 하고 타오바오에서 알아보고 있었더니, 푸바오 때문에 이상한 취미가 생겼다며 반려인이 투덜대고 있었다. 아니야. 사실 새로운 것에 대해 완전히 닫혀도 이상하지 않은 연식에, 낯선 것에 두렵지 않게 해준 푸바오는 이름 그대로 복이라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다.

푸바오를 통해 여러 새로운 것을 만나게 되었다. - 사진 수아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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