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대 한국사회가 허락한 피부미인입니다
대학시절 내 얼굴만 보면 기름종이를 붙이던 친구가 있었다.
이마와 코의 유분이 묻은 기름종이는 금세 투명해졌고, 친구는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봤다는 듯, 이 꼴은 자신만이 봐야 한다는 듯 잰 손동작으로 기름종이 몇 장을 더 꺼내곤 했다.
30대의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는 내 얼굴엔 퇴근 무렵의 피로와 기름이 절어 있다. 내가 탄 칸에 탑승하던 어떤 여자가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친구에게 말했다. "아~~ 나도 물광주사 맞고 싶어." 집에 돌아온 나는 페이스북에 그 에피소드를 기록하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인영아. 기름이다."
나는 변함이 없다. 변한 것은 세상의 눈일 뿐. 어느덧 세상엔 물광주사라는 것이 생겼고, 나의 구제받지 못했던 개기름도 어느덧 윤기와 광으로 불렸다. 더 이상 유분을 찍어 누르기 위해 빨간통파우더니 안나수이 파우더 같은 대용량 파우더 제품을 살 필요가 없다. 기름종이도 필요 없다. 화장도 안 해도 된다. 아침에 선크림 하나만 바르면 완성이다.
지난주엔 한 여인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민희진이 기자회견 때 입은 옷과 모자는 완판을 이루었고, 온라인상의 모든 콘텐츠를 민희진으로 도배되었다. 누군가는 민희진을 덮어놓고 편들었고, 누군가는 잘난척하는 지랄 맞은 년이라고 했다. 똑똑한 사람들은 수없이 발생할 경영상의 위기관리 케이스라며 재빠르게 스터디를 했다.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하다 보니 어떤 악덕은 미덕도 되고, 어떤 미덕은 악덕도 된다. 세상만사에 항상 늦발이다 보니 요새는 무엇이 미덕인지도 잘 모르겠다.
유행은 돌고 돈다지만 나는 다시 돌아가도 스키니진이나 미니스커트 같은 건 입고 싶지 않다. 파우더로 날 찍어 누르고 싶지도 않다. 민희진이 이기든지든 나완 상관없겠지만(아니 너무 상관있어 보여... 나의 사기 어쩔...) 다음 민희진은 적어도 여자 직장인만 공감하지 않길 바란다.
야망을 품고, 내 밥그릇을 건들지 말라고 으르렁 거리는 여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