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살이 뭐길래 우리는 이렇게 살에 집착하는 것일까.
전남친 중 하나는 몇 해 전 이혼을 했다. 이혼 후엔 드문드문 연락이 오다가 급기야는 최근 집 근처로 찾아와서 야밤에 맥주를 한 잔 했다. 내게 수작을 부리는 걸까? 옛날에 나 이뻤던 이야기, 옛날에 뜨겁게 사랑했던 이야기 등등 클리셰 가득한 이야기를 한다. 홍상수 감독 영화 속에 들어앉은 모양이다. 다른게 있다면, 나는 김민희나 고현정 같은 홍상수 영화 속 여주인공들과 다르게 계속 안주빨을 세웠다는 것 정도다.
이혼 전 이들 부부는 여느 이혼한 부부들처럼 이틀이 멀다하고 심하게 싸웠다고 한다. 싸울 때는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했고, 전처가 던진 물건에 맞아 머리가 터져 꿰맨 적도 있다고 한다. 베개도 아니고 머리가 터지다니...
이들 부부의 요란한 부부싸움은 아파트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고, 결국 이들이 움직이는 모든 동선에 벽보가 붙었다. 층간 소음 등 소음으로 인해 이웃들이 불편하다는 내용의..연애도 지랄맞게 하더니 이별도 참 지랄맞게 한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싸웠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지만 그중에서도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살문제다. 역마살? 도화살? 아니 fat! 살 얘기다.
이미 수차례 싸웠겠지만 결혼생활의 불행은 그들의 몸으로 증명되었는데, 그는 당시 20킬로, 그의 전처는 당시 30킬로가 증가했다고 한다.
그는 살로 인한 스트레스가 컸던지 계속 다이어트를 해야한다는 말을 했다. 그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라도 나와 마주 앉은 자리에서 안주를 두 개나 시키고 손도 안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그를 보고 첫눈에 "우와 너 왜 이렇게 살쪘냐?"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흔히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면 "너 몸 좋아졌다(살쪘다)", "얼굴이 좋아 보이네(살쪘다)", "왜 이렇게 얼굴이 쏙 빠졌어? 무슨 일 있니?(살 빠졌네. 비결이 뭐야?)" 등으로 살인사를 나눈다.
대체 살이 뭐길래? "잘 있었어?", "어떻게 지냈어?"도 아닌 살 얘기로 안부를 묻게 되었을까? 한국처럼 편한 곳도 없는 것 같다. 외모에 대해 아주 얼굴을 마주하고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다. 너 못생겼다. 너 살쪘다, 얼굴이 갔네 등등. 친한 사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얘기다. 물론 이런 얘기를 극혐 하는 친한 사람도 있겠지만...
어쩐지 경직된 규범이나 관습에 맞춰 몸을 가꾸어야만 할 것 같은, 그래야 공동체에 속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아찔함이 있긴 하지만, 멋진 외모, 늘씬한 몸을 가지고 있다면 경쟁력이 있는 사람이 되니 아름답길 바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코코샤넬이 그랬다잖아. "타인을 외모로 평가하지 말아라. 그러나 너는 외모로 평가받을 것이다"
나는 타인을 외모로 평가하지 않기 위해, 아니 적어도 입밖에 내어 마치 이 사회가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너무나 힘든 일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가 안주를 새로 시킬때마다 "누가 먹는다고 자꾸 시켜"라고 말리면서도 시킨 안주 두 개를 몽땅 먹어치웠다. 그는 메뉴만 쳐다볼 뿐이다. 살은 내가 찌겠지만, 스트레스라도 그가 받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