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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타이 Jun 16. 2024

장어덮밥집과 강제 이별한 사연

아 억울하고 분하고, 내가 한심하다

어제 일이다. 수영을 하고 출출한 배로 장어덮밥집에 갔다. 집 근처에 내 맘에 쏙드는 장어덮밥집이 있다는건 너무나 행운이다. 때마친 브레이크타임이었다. 한 시간이 조금 넘게 남아있었고, 가게 앞은 한산했다. 장어덮밥집이 있는 건물은 꽤 크고 그날따라 주차 공간에 자리도 많았다.


장어덮밥집 근처에 차를 세우고, 책과 노트북이 담긴 가방을 들고 나섰다. 내가 주차한 곳은 대로에 접한 갓길주차장으로 가게 바로 앞 주차장은 아니다. 이곳은 저 건물의 주차장이 아닌가? 주차 관리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카페에 들어와서 노트북을 연 순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주차하셨죠? 어디 오셨어요?"

"아 네, 장어집에 왔는데요, 브레이크타임이라서 잠깐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거기가 지금 쉬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데 기다린다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하면 저 같은 사람들이 힘들다는 걸 아셔야지"

"네? 아 네.. 제가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바로 근처 카페였기에 모든 짐을 그대로 둔 채로 바로 차키를 들고 나섰다. '아이코 차를 어디다 세우지? 근처에 유료 주차장이 있었나' 고민하며 들어가 건물 바로 앞 주차박스로 갔다. 할아버지 한분이 앉아계셨다.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방금 전화하셨지요? 차를 지금 뺄까요? 혹시 여기 바로 옆쪽으로 빼놓아도 될까요?"

"지금 어디서 오시는 거예요?"

"아 네 근처에서..."

"이런 식으로 하면 저희가 곤란해요. 아 왜 이 사람은 전화를 안 받아"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 없는 다른 차 차주에게 짜증을 부리며 나에게 차를 빼라고는 하지 않는다. 여전히 주차장은 붐비지 않았고, 할아버지 앞에서 엉거주춤 서있다가 다시 카페로 돌아왔다.


글을 한참 쓰는데 다시 그 번호로 전화가 왔다. 시간을 보니 5시 반, 가게가 오픈하는 시간이다. 아이코 내가 밥 굶을까봐 이러시나 하며 받자마자 "지금 가요"하고 자리를 정리해 일어섰다. 


가게로 들어가려는데 할아버지가 나를 손짓으로 부른다. '엥 왜 그러시지?' 장어집 내부가 꽉 찰까 봐 혼밥족은 살짝 불안해지며 의아한 마음이었지만, 쫄쫄 손짓을 따라갔다. 


"지금 이렇게 해서 되겠냐고요? 잘하는 짓이에요?"

"네?"

"지금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네?" 몹시 당혹스럽기 시작했다.

"지금 저기서 커피 마시고, 노트북 했죠? 내가 가서 다 들여다 봤어"

"네? 왜요?"

"지금 이게 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네? 제가 뭘 잘못한거에요?"

"여기다 차 세워놓고 한 시간 넘게 저기서 커피 마신 게 잘한 거냐고"

"아니 제가 장어집에 왔는데 문이 닫혀서 기다린 거고, 전화하시자마자 바로 나와서 여기 찾아와서 기다릴 거라고도 말씀드렸고, 빼야 하냐고도 여쭤봤고, 빼라고 안 하셔서 브레이크 끝나면 온다고도 말씀드렸고, 그 시간에 왔는데 뭐가 문제죠?"


둘이 팽팽히 맞섰다. 이미 빼겠다고 하고 돌아올 시간도 정확히 밝혔는데 왜 곤조를 부리는 건지 이해 못 하겠는 나와 원칙을 어겨서 자신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할아버지가 팽팽히 맞섰고(솔직히 아직도 할아버지가 왜 그랬는지 정말 모르겠다) 도무지 왜 목적 없이 내가 카페에서 노트북 하는 걸 와서 봤다는 건지도 소름이 끼쳤다. 결국은 둘 다 같은 문장을 반복하고 언성을 높이는데 할아버지가 내게 "그냥 가요. 어차피 지금 먹으면 체하지. 밥이 입으로 들어가겠어"하는 게 아닌가. 


우와... 할아버지 선 넘네.. 이 집 장어가 오늘 나한테 어떤 의미인데...무려 장어 싫어하는 남친과 헤어지고 처음 내게 나 스스로가 사주는 최고의 위로 밥상이었는데...

 

"저 그냥은 못 가겠네요. 여기 사장님과 건물주에게 얘기하고 가겠습니다" 하고 등을 돌리는 순간부터 눈물이 울컥했다. 


어쨌거나 길바닥에서 나이 드신 분과, 심지어 서비스직 종사자와 싸운 것이 기가 찼다. 내 신념이 '서비스직 종사자에게 잘해야 식혜라도 얻어먹는다'였는데... 내 직장 상사보다 서빙하는 분들 주차관리하는 분들에게 더 상냥했는데... 손해보면서도 아무 말도 못한다고 남자친구에게 매일 욕먹던 나였는데.....그랬던 내가 이렇게 길바닥에서 나이 마흔이 넘어서 할아버지와 큰소리로 싸움을 하다니... 진짜 미쳤다.


역시 코리안 꼰대 할아버지들은 답이 없구나.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이 사람 저 사람 피 말리다가 이제 서비스직으로 와서 내 꼭지도 돌게 하는구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다 어쨌거나 폭풍눈물을 흘리며 집에 왔다.


그 할아버지가 직장을 잃는 것이 생계가 위험해지는 것이면 어쩌지 싶다가도, 그냥 자신이 원하는 것만 말하면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이었는데 왜 나를 잡은 건지, 아니면 주차비를 받던가, 내가 만만한 여자였는지, 전화를 받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했으면 넘어갈 수 있었던 건지, 나는 왜 괜히 여기 주차를 해서...


누가 주는 화든 내가 받지 않으면 그건 그 사람의 것이랬는데, 나는 그가 준 똥물을 제대로 머리부터 뒤집어썼구나, 어떻게든 유연하게 넘어갔어야 했는데 내가 병신이구나 하며 집에 와서도 너무 당혹스러워 두 시간을 내리 울었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다 보니 그때부턴 이런 일이 내 인생에 일어났다는 것이 기가차서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살다 이런 날도 있구나, 어지간한 일은 다 겪은 줄 알았는데..삶은 그렇게 만만히 볼게 아니야...


이제 그 장어집은 다 갔다. 결국 사장님을 불러다가 울면서 하소연을 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정말 최악이네요." 최악의 경험을 하게 한 장어덮밥집에, 오직 장어덮밥을 먹기 위해 또 갈 수는 없다. 그거야말로 최악이다. 


하아 한심해. 나란 인간...앞으로는 누구와도 싸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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