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타이 Jun 17. 2024

장어집 할아버지와 싸운 것을 반성한다

월요일 지하철, <비폭력대화>를 읽으며 반성하는...

토요일, 장어덮밥집에 정말 가고 싶었는데 결국 가지 못했다. 주차 문제로 주차 요원 할아버지와 싸웠기 때문이다. 싸우는 내내 '왜 주차를 하지 못하게 하지 않고, 다 지난 후에 저렇게 시비를 거는 걸까? 대체 나한테 왜 시비지? 내가 여자라고 우습게 보나'했는데.. 


주말 내내 생각해 봤더니 이 대화는 완전히 실패다. 마셜 B. 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를 읽고 있다. 일상에서 평화와 공감의 언어를 쓰는 법을 알려준다고 한다.


사실 나는 평화와 공감의 언어를 잘 쓰는 어린애였다. 어린 시절 집에 빚쟁이가 찾아오면 베란다로 안방 구석으로 숨은 엄마 아빠를 대신해 빚쟁이 아줌마들을 상대했다.


"홍길동이 나오라 그래. 어디서 돈을 떼어먹고 잠수를 타"

"아주머니, 저희 엄마 아빠가 돈을 빌려놓고 연락이 안 되어서 많이 속상하시죠?"

"내가 분통이 터진다. 대체 어디 갔어?"

"네, 아주머니. 믿고 빌려주셨을 텐데 돈을 제때 갚지 않아서 정말 곤란하시겠어요"

"내가 우리 남편 볼 면목이 없어"

"네, 아주머니. 아저씨도 화가 많이 나셔서 아주머니가 더 속상하실 것 같아요"


빚쟁이 아줌마들은 나와 십여분을 이야기하면 화가 풀렸다. 아이들을 괴롭히면 구석에서 기어 나오겠지 하는 심정으로 막말을 하던 빚쟁이 아저씨들도 잠잠해져 돌아갔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그런 내가, 주차요원 할아버지랑 싸우다니... 멘붕이 왔다.


요즘 너무 화가 많아지는 것 같아서 읽기 시작한 책이다. <비폭력 대화>


책에서는 관찰, 느낌, 욕구, 부탁을 잘 활용하는 대화가 비폭력대화라고 한다. 


내 상황에 적용해 보면 이러하다. 


"지금 이렇게 해서 되겠냐고요? 잘하는 짓이에요?"

"아, 제가 무언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셔서 언짢아지셨나 봐요."

"그렇죠. 지금 우리 주차장에 세워두고 다른 곳에서 차를 마시고 노트북을 하다가 왔잖아요"

"네, 제가 식당 앞에서 서서 1시간 반을 기다리지 않고, 주변의 카페에 들어갔다가 와서 노하셨군요"


아냐 아냐 다시 다시.... 내 입장을 말하지 말고, 충분히 공감해 줘야지.


"그렇죠. 지금 우리 주차장에 세워두고 다른 곳에서 차를 마시고 노트북을 하다가 왔잖아요"

"아, 제가 다른 곳에서 차를 마시고 노트북을 하다가 브레이크타임이 끝나고 식당에 찾아오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화가 많이 나셨군요"

"그렇죠. 이게 잘하는 짓입니까?"

"네, 이 주차장에 오는 손님은 다른 곳은 이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화가 나신 거죠?'

"그렇죠"


자 여기까지 하면 관찰을 잘한 것일 거다. 솔직히 아직 읽는 중이라 정확히 잘 모르겠다. 작가님, 아니면 번역가님 와서 좀 피드백 좀 주세요.


그럼 이제 슬슬 내 느낌과 욕구를 꺼내본다.


"네, 화가 나신 상황을 이해하겠습니다. 저는 조금 당황했어요, 저는 차를 세운 후 식당이 브레이크 타임이 아직 한 시간 반이나 남았길래 기다리려고 카페에 갔다가 할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셔서 바로 다시 자동차키를 들고 나왔는데요, 할아버지께 피해를 끼쳐드리지 않으려고 저도 차를 다른데 주차하려고 했는데요, 아까 저를 보시고 차를 빼라는 말씀은 안 하셔서 양해가 되신 거라고 생각하고 다시 카페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에게 피해도 끼치고 싶지 않았지만, 가급적이면 시원한 곳에서 책도 보고 여유도 부리다가 식당에서 맛있는 장어덮밥도 먹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그때 제가 차를 빼서 다른 곳에 주차하는 것이 훨씬 나을 뻔했네요. 사람의 생각이 다 같은 것이 아니다 보니, 제가 할아버지 생각을 다 이해 못 했나 봅니다. 다음부터는 당장 식당을 이용할게 아니라면 차를 빼달라고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렇게 하면 비폭력대화 성공이다. 책을 읽는 내내 무슨 말을 이렇게 길게 하냐. 누가 저 긴말을 다 하도록 기다려줄까. 했는데... 아직 다 못 읽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토요일의 나는 너무나 바보 같았는데.... <비폭력대화>에서는 자신에 대해서도 비폭력대화를 하라고 한다. "폭력은 다른 사람이 우리 고통의 원인이며, 그러므로 그가 처벌받아야 한다는 믿음에서 나온다"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듣기 힘든 말을 들었을 때, 자기 자신을 탓하거나, 타인을 탓한다고 한다.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의식하고, 타인의 느낌과 욕구도 의식해야 하는데 이것은 훈련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


토요일의 나 자신을 가엾이 여기며 열심히 비폭력대화를 읽고 있다. 그렇지만 다시 그 장어덮밥집은 갈 수 없다. 한번 흘러간 장어덮밥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구나. 



혹시나 장어덮밥집 사건의 전말이 궁금해진 분이 계시다면 이곳으로..

https://brunch.co.kr/@mataee/65







매거진의 이전글 즉각적으로 행복해지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