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스타일 김치볶음밥과 역변한 전남친

전 남친은 만나면 안되는 건가

by 마타이

넌 평범하게 좀 살면 안 되냐? 남들처럼 그냥 캐리어 끌고 여행 가. 옷은 또 그게 뭐야. 취향 하고는. 애도 아니고 무슨 배낭여행이야. 안 되겠다. 내 캐리어 빌려줄게. 여기에 짐 담아서 가. 아 왜 싫어. 다들 이렇게 가는데. 정말 꼭 가야겠어? 그 몰골로? 너 지금 대충 봐도 많이 아파 보여. 그냥 우리 집에서 잠이나 자는 게 어때?


맞다. 나는 밤새 고열에 시달렸고,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흘렸다. 살짝 미열이 있던 지난밤 폭설 예보를 듣고 미리 차를 몰아 공항 근처 그의 집으로 오길 잘했다.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한 친구들은 이른 새벽 기상이 익숙한지 8시 비행인데도 굳이 6시에 공항에서 만나자고 했다. 우리 집에서 가려면 새벽 4시에 일어나야 가능한 일정이다. 공항버스를 타기도 애매했고, 빙판길을 운전할 자신도 없었다. 인천공항 드롭을 부탁했는데 이른 새벽부터 시키지도 않은 잔소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는 20년 전에도 잔소리가 심했다. 이 맛없는 소주를 대체 왜 그렇게 마시는 거야? 담배를 왜 피워? 좋은 것만 봐야지.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아 너는 정말 어떻게 그래. 그는 가끔 날 위해 기도했다며 눈물도 흘리곤 했다. 팔자 좋고 재수 없는 예수쟁이. 그러나 저녁에 도착해 맥주 한 캔 하고 자겠다는 내 옆에 앉아 안주도 없이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넷플릭스의 범죄수사물을 보며 담배를 연거푸 피우는 그다. 무엇이 그의 기호를 이렇게 변화시켰을까.


넌 왜 이렇게 예뻐? 네가 쳐다볼 때마다 숨이 멎는 것 같아. 단체미팅에서 만난 첫날, 나보다 한 살 어린 스물한 살 그는 과장된 표정과 말투로 한눈에 반했다며 나와 친구를 차로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우겼다. 당시 내 주변에 자기 차를 모는 친구는 없어서 어린놈이 무슨 수로 차로 데려다주겠다는 건가 의아했지만 30분 뒤에 강남역으로 우리를 모시러 온 것은 뉴그랜저였다.

캡처.PNG

설마 기사님? 생각할 틈도 없이 그의 친구가 모는 5인석 그랜저는 8인으로 채워졌고, 그들에게는 익숙한 욱여넣기, 겹쳐 앉기 기술에 잠시 당혹스러웠지만, 신기하게도 나와 내 친구의 무릎 위에 앉은 이 없이, 차는 우리 집이 있었던 상계동으로 향했다. 보통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나? 맘에 드는 여자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방식이 독특하군 생각하며 차에서 내리는데 그의 친구들이 차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ㅇㅇ이 파이팅!!


뭐가 파이팅이야. 구려.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누군가 나를 좋아하는 건 언제고 기분 좋은 일이다. 그는 생맥주 500cc 하나 비우지 못하는 주제에 헤실헤실 웃으며 내 술자리마다 따라다녔고, 술 취한 나의 꼬장을 맨 정신으로 다 받아냈다. 맨 정신엔 주로 소심하고, 술이 취하면 대범함을 넘어 무모한 나를 졸졸 쫓아다니며 울 엄마보다 더 챙겼으며, 그 와중에 수시로 내게 너무 예쁘다 말하는 걸 잊지 않았다. 마치 눈에 보이는 것이 너무 감명 깊어 차마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표정을 하고서.


그의 이런 찬사는 꽤 의미가 있었는데, 그의 누나가 당시 최고의 얼짱으로 이름을 날렸던 것, 그가 유복한 가정 환경으로 인해 세련된 옷차림을 하던 것도 이유일 것이다. 나는 알지 못하는 고급 브랜드의 옷을 단정히 잘 다려 입고, 까만 뉴그랜저를 끌고 이곳저곳으로 나를 데리러 오고, 또 어딘가로 데리고 가기도 하는. 대학로 인근의 캠브리지나 옥스퍼드의 싸구려 튀김이나, 기껏해야 과일소주를 파는 반저에나 가봤던 나에게 광나루역 인근의 소곱창집, 벚꽃이 휘날리는 피자힐의 야외 정원 피자, 국물맛이 끝내줬던 닭볶음탕집, 강변역의 4번 포차를 소개한 것도 다 그와 그의 친구들이다.


맛과 멋에 일찍 눈뜬 그였지만 당시 허영 가득한 여대생이었던 나는 그의 키와 학벌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왕자님이 된 건 어느 한 여름, 그의 집에 놀러 가게 된 후다. 그의 어머니가 관리가 번거로워 이사 가고 싶어 하셨다던 한강변의 그 집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잔디밭이 있는 2층집이었다. 현관으로 들어서면 넓은 거실에 놓인 베이지색의 소파, 소파 뒤쪽으로 아담한 나무 계단이 있다. 계단을 따라 2층에 오르면 무려 그와 누나만을 위한 작은 응접실과 그랜드피아노가 있고, 욕실을 가운데로 양쪽에 누나와 그의 넓은 방이 마주보고 있었다.


어쩐지 주눅이 든다. 꿀리기 싫어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새 옷을 사 입었던 것도, 술 취하면 내가 선수쳐서 택시비 내던 것도, 다 소용없다. 친구들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칭찬했던 핑크색 그물 니트를 입고 갔는데 오늘따라 왜 이리 맨 살이 많이 보이지? 마음이 바뀌니 졸지에 알몸 임금님 같다. 그의 부모님께 인사를 했다. 우리 아들 예쁜 여자친구를 만나고 있구나 하는 아버지 맞은편에 어머니는 어쩐지 눈매가 곱지 않다. 다 내가 알몸으로 갔기 때문 같다.


지금이야 별별 삶, 보고자 하면 다 터치, 스와이핑만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나, 그때는 문화충격이었다. 내 남자친구가 드라마 부잣집 세트장에서 살고 있다니. 형편이 어려워져 당장 반지하에 살고 있다지만, 그전에 살던 가장 좋은 집도 그와 누나의 공간보다 작았다. 그가 털털하게 행동해도 자꾸 차이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유난히 경제적인 것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내가 속속들이 유물론자이기 때문일까.


20년도 더 된 일이다. 그의 집에 가고 나서인지 가기 전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쯤부터 우리는 싸우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온 가족이 교회에 가서 하루종일 사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고, 시도 때도 없이 친구들과 축구하는 그가 짜증 났다. 그가 교회에 가면 친구들과 술을 마셨고, 그는 사과 편지라고 쥐어주는데 너도 주님을 섬겨라, 축구를 해라, 주님의 자녀라는걸, 축구란 발끝에 전율이 느껴지는 일이란걸, 내가 알아야 한다고 썼다. 얜 뭐지. 신박한 애새끼 같아. 내 주님은 참된 참씨, 운동장 대신 클럽에서 진동을 느끼겠어 비난했지만, 어쩐지 귀여워서 자꾸만 상자 속에 편지를 보관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군대에 갔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헤어졌으나, 헤어지고 연락이 끊기는 어린 연인들의 자연스러운 수순이 아닌, 수년에 한 번씩 연락해 가족들 안부를 묻거나 과거 이야기를 꺼내 놀리는 사이가 되었다. 너네 엄마 아직도 너 빤스 다려 입히시냐. 어후 니 전처 생각만 해도 머리 아팠을 듯. 넌 아직도 이상한 옷 입고 다니냐. 사회적 체면도 없이. 너나 어린 여자 꽁무니 좀 그만 쫓아다녀 추해. 네 동생은 무슨 채식을 한다고 그러냐 고기 3인분씩 먹던 애가.


서로 이해득실이 없는 관계라서 인가. 우리는 서로의 갈대나무숲이기도 하다.


나 어제 골프장회원권 나왔어. 쏠 거 아니면 자랑하지 마. 한번 가자. 내가 왜? 또 모르지. 대써 골프 싫어. 전남친 때문에? 응, 치가 떨려. 그러게 왜 아픈 남자를 만나. 아팠으니 그 정도였지 멀쩡했을 땐 더했다. 넌 왜 그런 남자만 만나냐. 너 포함한거 맞지? 나 어제 술 많이 마셨다. 언제는 아니냐. 이혼한 지도 꽤 됐는데 이제 정신 차리고 다른 여자도 좀 만나고 그래. 싫어. 전처 하고처럼 될까 봐? 나 맞아서 입원했었다고 얘기했냐. 쯧쯧 인간답게 살자.


어제 편의점 털었어. 뭐래 뿜었네. cctv 보면 진짜 도둑놈이다. 뭘 훔쳤는데. 이것저것 다 꺼내서 먹었어. 헐ㅎㅎㅎ. 옷은 잘 차려입고. ㅎㅎㅎㅎ 자알 한다. 아니 편의점에 사람이 있는 줄 알았는데 무인이더라고. 사람 오면 계산해야지 하고 기다리면서 하나씩 먹었는데 아무리 먹어도 안 오는 거야. 그래서? 전화기를 찾는데 그제야 알았지. 내가 아예 코트를 안 입고 있더라고, 집에 어케왔냐, 전화기 잃어버렸으니 택시 좀 불러주면 안 되겠냐고 하다가 어떤 남자랑 싸웠어. 헐. 끔찍. 추하다.


난 술 깨고 일어나 봤더니 사방에 전화했더라. 그래서 어케 됐어? 아무도 안 받더라고. 다행인가. 그치 다행이지. 그들도 다 술 마셨겠지. 우리 어떻게 하면 제대로 살 수 있을까. 나는 밑도 끝도 없이 묻는다. 이번 생은 망한 듯. 그는 자조적으로 말한다.


우리는 서로가 어느 날 잠수를 타도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가 하루 빨리 과거의 그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과 한편으로는 이렇게라도 못난 여정을 그냥 못나게 바라봐주는, 나 때문에 마음이 아프거나,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는 누군가가 있어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나 3시간 후에 공항에 도착해. 꿈도 꾸지 말고 택시 타고 와. 오냐 정 없는 놈. 잘 놀았냐? 말도 마라, 내내 아파서 열이 펄펄 끓는데 비바람 몰아치고 애들한테 미안해서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벙어리 냉가슴 개고생 했다. 내 너 그럴 줄 알았다. 근데 여행 3일 차에 또 한 명이 나한테 옮은 거야. 미안해서 어쩌냐. 내 말이. 약 다 사 먹이고 차 끓여 바치고 대역죄인이지 뭐. 맛있는 건 좀 먹었냐. 말도 마라. 거기 음식 별로라는 글은 읽고 갔는데 진짜 아무것도 없더라. 김치볶음밥 해줘? 그런 것도 할 줄 아냐, 손재주가 좋은 듯. 굶어 죽진 않겠네.


4일 만에 다시 돌아온 그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 그의 얼굴을 보고 갈지, 이대로 짐을 차에 싣고 내 집으로 향할지 고민된다. 서로의 외로운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아주는 게 좋은 걸까 나쁜 걸까. 그때 그에게서 전화가 온다. 도착했냐. 응. 올라와 김치볶음밥 해줄게. 그래 알았다. 생각이 끝나지 않았는데 이미 답하고 마는 예스맨. 내 팔자 내가 꼬는 이유.


현관 벨을 누르자 홈웨어를 입은 그가 문을 열어준다. 얼굴 한번 바라보지 않고 황급히 들어가더니 인덕션 앞에 서서 바쁘다. 잠시 후 그가 내온 접시 위엔 못생긴 김치볶음밥이 김을 뿜어내고 있다. 나 정말 요리에 소질 있나 봐. 처음 해봤는데 맛이 완전 청담동 모퉁이김밥이다. 내키지 않는 생김이지만 한술 뜬다. 모퉁이 김밥 스타일은 아닐 테지만 여행과 몸살에 지친 이를 위로하기엔 충분하다.


너 집에 안 가? 와 수저 내려놓자마자 바로 잠들었네. 코 골더라 심하게. 깨우지. 깨워서 일어난 거야 너. 나 간다. 용수철처럼 일어나는 뒤로 눌려있던 소파가 내 무게만큼 일어난다. 잘 잔 건가. 몸이 제법 가뿐해졌다. 그가 바람처럼 바라보길 바라며, 최대한 바람을 흉내 내며 현관을 나섰다.





그렇게 우리는 술에 취하면 더욱 빠른 속도로 취해야 한다는 주사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으로 다시금 가까워졌다. 이번에는 인간 대 인간으로, 성적 욕망이 걷힌, 밝고 투명한 관계로 남아 인생의 가장 고단한 시절을 함꼐하는 중이다. 그리고 요즘도 누구보다도 넓고 단단한 그의 등을 보며 나는 그 시절의 그와, 나아가 그를 좋아하는 마음조차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 시절의 나 자신과 화해하기로 결심했다. - 박상영,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중에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왜 예쁜 한국여자들은 못 생긴 남자 하나를 두고 싸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