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진우 May 21. 2021

안 철학적이고 싶은 철학 에세이 - 서문

서문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 보통 경수필과 중수필로 나뉘는데, 작가의 개성이나 인간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유머, 위트, 기지가 들어있다.” 에세이의 사전적 정의이다. 이 정의에 본 에세이를 쓸 마음을 먹게 만든 요인이 있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에세이는 철학적이되 최대한 철학적이지 않게 쓸 작정이다. 왜냐하면 철학이란 꽤나 시건방지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철학하는 사람은 모두 꼰대라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사실 건방진 녀석이든 꼰대든 본인의 생각이 지나치게 확고한 것이 문제 중 하나다.

  물론 ‘철학’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따라서 그것을 지닌 사람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도 달라진다. 으레 세상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뭔가 생각이 깊어 보이고 조금 엉뚱하면서도 있어 보이는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철학적이다’라고 말하는 수준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문제가 될 건 딱히 없다.

  그렇다면 학문적인 철학으로서 철학자들을 배우고 그들의 논리와 주장, 역사 등을 배우며 한편으론 비판적 사고와 글쓰기 방법을 의미하는 수준이라면? 사실 그것도 문제가 될 게 없다. 굉장히 돌려 말했지만, 이것에 본 에세이의 큰 주안점이 담겨있다.

  철학을 부드럽게 규정하든 딱딱하게 규정하든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전문적이고 기술적이냐 보다는 얼마나 ‘실천적’이냐는 문제이다. 그러나 실천에 있어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한 점 없이 떳떳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성인이라 부른다.

  정리하자면, 사람들은 저마다 철학을 갖고 살아간다. ‘철학’이란 단어를 쓰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면 가치관이라던가, 생각이라던가 하는 조금 더 보편적인 단어를 사용해도 좋다. 철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그 생각에 여러 지식들을 살붙이고 또 상념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런데 철학을 배우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도 삶에 있어서 자연스레 경험으로 살을 붙이고 각자만의 시간 속에서 그것을 ‘정반합’하곤 한다(그리고 두 부류 다 그것을 불완전하게 실천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생각을 조금 더 주도적이고 의식적으로 하게 만들 수 있냐는 것인데,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하면 쉽고도 재밌고 자연스러운 방법을 통해 실현해낼 수 있냐는 물음이다.

  그 방법 중 하나로 이 에세이를 작성한다. 물론 요즘 에세이를 그리 많이 읽지도 않고(읽는 사람만 읽는다) 애초에 글보다는 영상을 선호하는 시대이긴 하다. 그래도 사전적 정의에 있는 ‘유머, 위트. 기지’를 통해 웃긴 라디오 사연과 같은 글이라면, 또 그것에 적절히 어떤 생각들을 담아낼 수 있다면 좋은 에세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철학을 건방지다 말하며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갑자기 문득 자신감을 조금 상실하며 서문을 마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