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18분에 딸에게서 카톡이 왔다. 자다 부스스 눈을 뜨고 비척거리며 욕실로 들어가 고양이 세수를 했다. 마음이 급하다. 서울 딸 집까지 가려면 어서 서둘러야 한다. 급히 짐을 챙기고 아침에 먹을 것도 간단히 챙기고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딸은 이미 출근길에 나섰고,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직장 출근해야 하는 사위와 바통터치를 하려면 차가 막히지 않고 도로사정이 좋아 뻥뻥 뚫려야 할 텐데, 비는 부슬부슬 오고 월요일 아침이다. 평소에도 월요일은 막히는 날인데 난감하지만 일단 도전을 해봐야 한다.
해열제를 먹였다고 하니 열이 좀 떨어지면 어린이집에 두 아이를 일단 등원시키고, 우리가 가서 열이 나는 작은 손주 호야를 데리고 와서 병원에 가봐야 한다.
어제저녁에 힐링 마치고 오면서 주유를 하고 왔어야 하는데 별일 없겠지 하고 내일 하면 되지 머 하고 그냥 들어온 게 실수다. 아무리 궁해도 주유는 하고 가야 한다. 주유 계기판은 거의 바닥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는 길에 조금만 우회하면 주유소가 있어서 일단 자주 가는 G주유소국제도시점으로 달렸다. 가는 도중에 옆자리 앉은 남편이 네비를 찍어보니, 딸 집까지 2시간 반이 걸린다고 한다. 어휴... 그렇게나 많이 밀리다니... 막혀도 너무 막힌다.
가는 도중에 딸에게서 다시 카톡이 왔다.
'엄마아빠, 도로가 너무 막히고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오시지 말'란다. 오전에 사위가 미팅이 있어서 출근은 해야 하지만, 오후시간 반차를 쓰고 아기랑 병원에 가본다고 한다. 에효... 어떡해야 하나?
주유를 마치고 딸에게 전화를 했다.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니 그냥 집으로 들어가라 한다. 네비예정시간이 '2시간 반'이고 더 길어질 수도 있다. 별 수 없이 차를 돌렸다.
딸은 성동구 금호동에서 동탄까지 멀리 직장을 다닌다. 아침에 집에서 6시 15분에 출발하여 셔틀버스를 타고 간다. 고급인력을 놀게 할 수도 없고, 멀리 출근하며 고생하는 딸과 직장은 서울 을지로라 가깝지만 아기들을 등원시키고 출근하는 사위 모두 안타깝고 안되어 보인다. 아이들도 고생한다지만 아이의 엄마아빠뿐 아니라 양쪽 할머니할아버지까지 모두 동원, 초비상 상황이다. 우리는 유사시에 언제라도 이동할 수 있도록 "5분 대기" 상태로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걸 스트레스로 받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즐거움이요 기쁨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개인사도 있고 약속도 있고 부득이하게 빠질 수 없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제라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만 한다. 사랑하는 자식이요 손주이니까...
딸과 사위 손주들이 지난 토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우리 집에 와서 지내다 갔다. 큰딸 내외도 함께 와서 같이 저녁을 먹고 술 한잔도 하면서 밤늦게까지 놀다가 갔다.
집에 오기 전에 큰 손주 작은 손주 모두 예방접종을 하고 왔다고 한다. 둘 다 직장인이어서 아이들 병원도 거의 함께 데리고 간다.
인천예술회관에서 공연하는 마술공연을 보여주려고 갔는데, 아직 너무 어려서인지 무섭다고 울어서 공연 시작하자마자 나왔다고 한다. 그리곤 곧바로 우리 집에 왔는데 잘 놀고잘 먹고 똥도 잘 싸고, 놀이터에 나가서 놀기도 하고 신나게 놀다가 자고 갔다. 작은 손주 호야가 밤에 세 번이나 깨서, 내가 세 번이나 달려가 다시 재우느라 좀 힘이 들긴 했었다. 그땐 미열정도여서 해열제를 먹이지는 않았는데, 일요일에 저희 집에 갈 때부터 열이 나기 시작해서 집에 가자마자 해열제를 먹였다고 한다.
수두와 MMR(홍역 볼거리 풍진) 예방접종을 했는데, 바이러스와 몸속에서 싸우느라 아기가 많이 힘든가 보다. 열이 나도 놀기는 잘 노는데, 어린것이 얼마나 힘들까. 열나고 힘들 것을 생각하면 내 가슴이 조여 오는 것 같다. 내가 아프고 말지, 어린 아기가 아프면 정신이 없어지고 애가 타서 너무 괴롭다. 어서 빨리 나아야 할 텐데......
어린이집에서는 이런저런상황을 빤히 알기 때문에 많이 고려해 줘서, 열이 오르면 아이와 함께 보낸 해열제 먹이고, 수시로 미지근한 물로 이마와 겨드랑이와 손발을 닦아 주면서 잘 케어해 줘서, 아이가 보채지 않고 잘 놀며 지냈다고 한다. 원장님이 인간적이고 참 좋으신 분이라서 편의를 많이 봐주어 고맙기 그지없다. 딸과 사위가 조금 일찍 퇴근해서 병원 들러 진료받고 왔는데, 아기 열이 좀 더 날 수 있다고 하니 또 걱정이 된다. 예방접종으로 적응하느라 나는 열이니, 해열제와 대증요법으로 다스려야 해서 아기도 힘들고 너무 안타깝기만 하다.
요즘 하나 키우기도 힘든데, 둘을 낳아 키우면서 직장까지 다니게 되면 정말 많이 힘이 든다.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산아와 육아에 힘써주지 않으면 가뜩이나 인구가 줄고 있는데 더욱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비혼주의자들도 늘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안 낳고 편히 살려고만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사실 국가적으로도 위기다. 이러한 어려운 형국에 아이를 낳아 기르며 양육과 직장일을 병행한다는 것은 애국자가 아니면 어려운 일이고, 그렇게 노력하는 이들에게는 상급을 줘도 모자란 현실인데 복지정책은 선진국을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기만 한 것 같다. 옆에서 누구라도 많이 도와주고 돌봐줘야 하는데...
밤에 잠들기 전에도 열이 나서 해열제 들어있는 처방약을 먹이고 재웠다고 한다. 내일 아침에도 열이 계속 나면 상황 봐서 일찍 가려고 아예 가방을 다 챙겨뒀다.
30일간 계속되는 염증&힐링 치료도 내일은 보조재와 타마시는 수액재료만 챙겨가서 거기서 마시며 아기를 돌보고, 원적외선 쬐며 받는 힐링치료는 내일은 스킵해야 하겠다. 내일로 예약되어 있는 어깨 도수치료도 다른 날로 예약변경을 해야 하리라.
"호야, 아프지 말고 얼른 나으렴. 할머니는 우리 호야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 제켜두고라도 언제든 달려갈게. 예방접종한 바이러스들과 잘 싸워 이겨내고, 더욱 건강하고 튼튼한 면역력을 지닌 강한 호야가 되렴. 할머니 할아버지는 언제나 널 응원해. 사랑하는 호야, 아프지 말고 잘 크렴."
큰 손주 원이는 열도 안 나고, 컨디션이 좋아서 정말 다행이다. 세돌이 되려면 아직 넉 달이나 남은 원이도 이젠 동생 호야를 가족으로 조금씩 더 받아들이고, 놀 때도 둘이서 제법 잘 노니 뿌듯하다. 호야가 혼자서도 잘 걷게 되고, 이제 세 개밖에 안 난 이도 쏙쏙 더 나고 밥도 잘 먹고, 무럭무럭 잘 자라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