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준이 녹음 파일 보내주셔요^^"
둘째 영어학원 선생님이 보낸 카톡 메시지이다. 선생님의 친절한 메시지에도 나는 화들짝 놀란다.
이유인즉슨 학원에서 엄마가 녹음파일을 안 보낸 사실을 알고 긴장하고 있을 아이가 떠올라서였다.
내가 복직을 하고, 아이의 아빠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서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는 영어학원을 옮기게 되었다. 기존의 학원은 나랑 신랑이 등하원 라이딩을 하며 보내고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하기가 힘들어 조금 가까운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새로 옮긴 학원은 수업방식과 숙제의 종류 등이 그전 학원과 조금 달랐다. 우리 아이가 기존의 아이들보다 진도가 조금 늦은 편이라 따라잡을 적응의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우리 집 둘째는 숙제에 예민한 편이다. 누나는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뤘다가 하는 스타일이라면, 둘째는 빨리 해치우고 놀아야 마음이 편한 스타일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숙제를 열심히 한다. 조금은 빠른 진도 탓에 숙제를 해내는 게 버거운 날도 있지만, 짜증을 낼지언정 숙제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런 애인데 내가 그 숙제를 안일하게 생각해서 학원을 옮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녹음 숙제를 보내지 않은 적이 있었다. 나는 집에서는 연습만 하고 학원에서 테스트를 본다고 생각했는데, 집에서 녹음한 걸 보내는 게 숙제였던 것이다. 아이는 수업 전 선생님 앞에서 녹음파일 대신 다시 그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문장을 자연스레 읽는 연습을 시키는 숙제라 정해진 시간('초'단위)이 있었는데 그 시간을 조금 넘겼다. 같은 반 아이 중 짓궂은 한 아이가 '실패'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는 정말 속상해했었고 그 이후로 숙제를 더욱 신경 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 숙제를 또 깜빡한 것이니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네네!! 선생님, 바로 보냈습니다!" 얼른 미리 찍어둔 녹음 파일을 전송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날 저녁 아이는 숙제에 대해 별 말이 없었다. 다행히 잘 넘어간 것 같다. 얼마 전 누나의 학원 방학도 두 번이나 까먹은 나이기에 이제 사소한 실수도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그래서 이제 '오전 10시'에 알람을 맞춰놓았다. 내용은 '준이 숙제파일 보내기'이다. 두 번 다시는 아들의 숙제 보내기 미션은 까먹지 않으리라는 다짐. 평일 10시만 되면 근무 중에도 알람이 울린다.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 나의 업무 1순위가 된 것이다.
문득 생각해 보면 육아휴직을 하고 난 뒤 복직을 했을 때 항상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는 공무원이라서, 팔자가 좋아서 3번이나 휴직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나에게 결코 쉽지는 않았다. 첫째 때는 이미 후배에게 밀린 승진이지만 한번 더 밀리기 싫어서 6개월 갓난쟁이를 두고 복직을 했었다. 그나마 그때는 아이도 하나였고 아무것도 몰라서 오히려 더 괜찮았단 생각이 든다. 두 번째 복직은 둘째가 돌을 한 달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정기인사에 들어가야 불이익이 없을 것 같아 조금 서둘러 복직을 했다. 아이 둘을 낳고 한 복직 생활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다. 4살 첫째와 이제 갓 돌을 앞둔 둘째를 돌봐야 하는 워킹맘의 사면초가 같은 삶은 지금도 내 인생 최고의 암흑기라 여길만하다.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이지만 이제는 말이 통하는 초등학생들이 되었다. 그래서 조금 나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 외로 챙길 게 더욱 많아졌다. 단순한 육아의 삶에서 복잡한 육아의 길로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할까...
복잡한 육아의 길을 걷고 있는 워킹맘, 나는 여기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쓰려 한다.
아이들에게 미안해하지 않고 나 스스로에게도 당당하게 그 길을 가리라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