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내가 아까 병원을 다녀왔는데 이상해서 다시 내과에 가는 중이다."
"어?? 어디가 아픈데?"
"아침엔 괜찮았는데, 손 저림 약 먹고 나서 몸이 이상한 거라. 시장 앞에 내과에 가서 약을 바꿔왔는데 그래도 계속 이상해서 링거라도 달라고 하려고 지금 가는 중이야."
"아니 엄마, 증세가 어떻냐고??"
나는 엄마와 두세 마디 대화 끝에 또 버럭 화를 내버렸다.
엄마는 늘 이런 식이다. 본인 하고 싶은 말만 장황하게 늘어놓기 일쑤이다. 바쁜 사무실에서 엄마 전화를 받을 때면 가끔 짜증이 올라온다. 오늘도 역시 증세가 어떤지에 따라 어떻게 하라고 빨리 말씀드리고 싶은데, 본인 하고 싶은 말만 또 장황하게 늘어놓는 엄마 때문에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나의 짜증을 느낀 엄마는 이내 일단 병원가 보고 연락한다며 전화를 끊으셨다.
결국 또 후회가 밀려온다. 엄마는 지금 우리 애들 방학이라 매일 우리 집에 오셔서 아이들을 챙겨주시고 계신다. 오늘도 아침에 본인 병원 잠깐 다녀오신 후 우리 집에 오셨다가, 몸에 이상을 느끼고 급히 병원 가는 길에 아이들 둘만 집에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러 전화를 하신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말하려고 한 핵심은 빼먹은 채 평소처럼 본인 생각나는 대로 계속 말을 하셨고, 바쁜 업무 중인 나는 짜증을 내버렸고, 집에 아이들은 덩그러니 둘만 남아있다. 이제 곧 점심시간인데 말이다. 평소 아이들만 두고 급히 병원에 가실 분은 아니라 엄마의 상태도 걱정 되었고, 애들 점심도 걱정이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걱정인 것은 조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 부서는 눈치를 보며 휴가를 써야 하는 분위기는 아니라 얼마든지 내게 주어진 휴가를 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요즘 여러 가지 일로 조퇴를 여러 번 하였다. 대학병원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야 하는 아버지를 모시고 검사받는라 한 번, 결과 들으러 가느라 한 번, 첫째 병원검진으로 한 번, 둘째 병원검사 결과 들으러 한 번 이렇게 세어보니 약 2주간 4번의 조퇴를 하였다. 누구 하나 눈치를 주지는 않지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느껴진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으니, 결국 또 조퇴를 하였다. 일찍 집에 온 엄마를 아이들은 반겨준다. 아이들 밥을 챙겨주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엄마는 동네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집으로 와서 쉬고 있는 중이며, 몸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아빠와 함께 집 근처 종합병원으로 가보실 참이란다. 나 역시 힘들면 작은 병원 말고 큰 병원 가보라고 통화로 말했던 참이다. 복잡한 큰 병원에 엄마, 아빠만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려 엄마한테 가볼까 잠깐 생각을 하였지만, 하필 오늘은 차량요일제에 걸린 날이라 운전을 할 수가 없다. 이 핑계로 나는 엉덩이 무겁게 일어나지 않았고, 엄마는 병원에 가서 필요하면 연락한다고 하시니 그냥 기다려보자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내 점심을 먹고 학원 갈 채비를 하였다. 학원을 보내고 집에 널브러진 빨래를 개고 나니, 잠깐 와서 밥만 차려주고 다시 사무실에 갈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냥 하루를 의미 없이 써버린 것 같은 후회였다. 마냥 엄마 전화만 기다리고 앉아있을 순 없어서 그동안 미뤄뒀던 일을 찾았다.
나는 '당근'에 미뤄뒀던 물건을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다. 정말 뜬금없지 않은가. 엄마는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나는 갑자기 왜 미뤄둔 당근을 하고 있는 것인가. 마음 한편 별일 없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고, 뭐라도 생산적인 일을 해야지 이 조퇴를 후회하지 않을 거 같아 찾은 일이 바로 '당근에 물건 팔기'였다. 작아진 아이들 옷과 운동화, 놀잇감 같은 걸 6개 정도 올렸다. 그런데 물건의 상태가 괜찮아서인지 올리자마자 연락이 온다.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4개의 물건을 팔았다. 운동화 3켤레, 아이점퍼 1벌 총 5만 원을 벌었다. 순식간에 제법 큰돈을 남겨 기분이 좋았다가, 순간 '운수 좋은 날' 소설이 떠올랐다. 엄마도 아픈데, 혹시 전화위복 뭐 그런 건 아니겠지... 기분이 좋았다가 찜찜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하니 진료대기 중이라고 하신다. 그런데 얼마 뒤 엄마는 입원결정이 내려졌다. 기력이 너무 없고, 혈압이 급속도로 떨어져서 당장 입원을 하라고 했단다. 아이들은 학원에서 돌아왔고 곧 있으면 저녁 차려줄 시간이고 엄마에게 당장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잠깐 되었다. 물론 엄마는 오지 말라고 하셨고, 필요한 건 아빠가 들고 올 거라고 하셨다. 아이들 저녁을 챙겨주고 병원에 가봐야겠다 생각하고 내 할 일을 하였다. 그리고 아이들과 저녁을 먹었다.
"우리 이쁜 딸 엄마가 한 번도 사랑한다 못했네, 딸 사랑한다"
지이이잉... 엄마에게 온 카톡 메시지다. 순간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얼른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많이 아프나??"
"응, 엄마가 지금 너무 많이 아파..."
엄마는 울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고 금방 가겠노라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이들에게 아빠 올 때까지 해야 할 일 하고 있으라고 말한 뒤, 옷을 챙겨 입고 차키를 들었다. 차량요일제 스티커야 끊기면 할 수 없고,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엄마에게 빨리 가는 일이었다. 급하게 병원에 도착해 병동으로 가서 간호사를 찾았다. 간호사는 엄마가 마음이 많이 약해지신 거 같다고, 기력이 없으시니 보호자나 간병인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엄마 병실에 들어서니 엄마는 코에 산소줄을 매고 있었고, 눈에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한 번도 이렇게 아픈 적이 없어서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셨던 거 같다. 오전에 갔던 병원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뇌졸중 전조증상 그런 거랑 비슷하다고 했단다. 아마도 갑자기 쓰러져 자식들도 못 알아보고 가실까 봐 겁이 나셨는지 그런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엄마는 아프다고 말씀하신 와중에 본인 숨겨놓은 돈들이 어디 있는지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실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한 세네 군데였던 것 같은데, '참 우리 엄마답다'란 생각이 드는 시점이다. 엄마는 혈압과 산소포화도가 심각하게 낮은 수치였고 금방이라도 저혈압 쇼크가 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간병인을 급하게 구하였고 다음날 아침에 올 수 있다 하여, 오늘밤은 내가 여기서 엄마를 돌보기로 하였다. 내일 또 오전에 지참(허락된 지각)을 하겠다고 말해야 하는 고민이 잠깐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는 화장실 몇 번 다녀가시는 것 외엔 계속 침대에 누워만 계셔서 내가 도와드릴 일이 크게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시간에 한 번씩 재는 혈압수치가 계속 낮아서 혹시나 자다가 기절이라도 하실까 봐 나는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엄마도 깊은 잠은 못 주무신 듯하였다. 다행히 아침은 밝았고, 난 간병인이 오기 전에 조금 빨리 집으로 복귀하였다. 아이들 아침을 챙겨주고 방과 후 교실을 보내고, 나도 지각하지 않고 정시출근을 할 수 있었다. 너무나 길었던 어제를 뒤로 하고,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출근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친정엄마의 소중함, 고마움, 미안함이 한꺼번에 몰려온 묵직한 하루였다.
"엄마, 나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