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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사공 Feb 24. 2024

두 번째 미안하다에서 나오는 한숨

"어~ 공주님~!"

"엄마, 오늘 학원 문 안 열어?"

핸드폰 속 딸의 질문에 순간 머리가 띵하고 말문이 막혔다.

"엄마, 학원 문이 안 열려서 서 있는데 어떤 애가 오늘 학원 방학이라는데?"

내가 도대체 뭘 놓친 거지 생각하는 순간, 학원에서 보낸 문자가 생각났다. 학원 방학 기간이 공지된 문자였다. '독감, 코로나가 유행이라 선생님들 수업이 안 될 수 있는 상황이 생길까 해서 휴가 날짜를 미리 공지하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린다'는 내용도 함께였다. 나는 당혹감을 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다, 학원에서 문자가 왔었어. 엄마가 잊어버리고 말을 못 했네. 미안해."

사실을 이야기하고 미안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무슨 답이 돌아오려나...

"응, 그럼 그냥 집에 가면 되겠네. 알았어 엄마!"

다행히 짜증을 내지 않는 딸아이다. 아마도 수학수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이 먼저였던 것 같다. 복직을 하면서 아이는 1년간 엄마 또는 아빠가 차로 데려다주던 학원을 이제 걸어서 가야 했다. 우리 집은 학군지 옆동네이다. 학군지 쪽 학원으로 가려면 아이 걸음으로 20분은 열심히 걸어가야 한다. 20분 정도 걷는 게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 가방에는 뭐가 그리 가득 들었을까? 아이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오르막 내리막을 지나 학원으로 향해야 한다. 그렇게 힘찬 발걸음으로 도착했을 학원문이 굳게 닫혀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딸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서 어찌나 다행인지 몰랐다.


'아이고, 내가 복직을 하니 이런 것도 까먹는구나...'

또 스스로 자책의 시간을 가졌다. 육아에서는 나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열정을 가진 내가 복직하고 고작 두 달 만에 아이 학원의 방학도 챙기지 못한 채 이런 전화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냥 하나의 에피소드로 여기고 회사 동료들에게 웃으며 이야기까지 했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이틀 뒤 정신없이 컴퓨터 모니터에 빠져들고 있었다. 상반기 업무에 대한 자료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나 혼자 열심히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업무라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결하지... 그때였다.

"엄마! 오늘도 방학이래!"

"어? 뭐라고?"

"엄마! 이게 뭐야~~ 또 걸어가야 하잖아!"

순간 이틀 전 그 문자가 다시 한번 뇌리에 박혔다. 방학기간은 1월 29일부터 1월 31일까지였다. 우리 아이는 월, 수, 금 학원을 가니 월요일과 수요일 모두 방학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문자를 다시 보고도 아무 생각을 못했다. 이번에는 아이가 짜증을 냈다.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두 번 연달아 이어진 허탈한 등원길은 아이가 짜증을 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 인정...

"진짜 미안해, 엄마가 문자를 제대로 못 봤네. 진짜 미안하다."


 사무실에 앉아서 전화를 받은 나는 전화를 끊은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난번처럼 나 왜 이러냐며 팀원들에게 하소연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나오는 것이라곤 한숨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는 거지? 방학인 학원을 두 번이나 헛걸음하게 만들고 나니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책상 달력에 업무 스케줄이 가득 적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자리의 반 이상을 애들 스케줄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 적어놓지 않으면 애들 병원 검진일도 까먹은 채 회의를 잡아버릴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들로 안 적을 수가 없는 것이다. 책상달력 외에도 핸드폰 달력에도 아이들 스케줄이 기록되어 있다. 이중으로 챙긴다고 챙겨도 이렇게 무방비로 손 놓은 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왜 그 문자를 보고도 아무 데도 기록하지 않았던 것인지 여전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문자를 다시 보니 방학이 있기 일주일 전인 월요일 오전 10시 51분에 보내어진 문자이다. 월요일 10시 51분이었으면 아마도 정신없을 시간대였을 것이다. 게다가 그 시기는 의회에 업무보고를 앞둔 시점이다. 의회에서 열리는 일정이 있는 기간은 신경이 더욱 곤두서 있다. 아마 그 시간에 받은 문자라면 까마득히 잊어버리기에 안성맞춤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끝이 아닐 앞으로의 실수담이 스스로 기다려질 정도이다. 또 어떤 일이 내게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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