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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사공 Feb 24. 2024

프롤로그 : 엄마는 적응 중

"삐-!"

'왜 안되지?'

출근시간 밀려드는 사람들로 붐비는 청사 로비 출입구에서 나는 들어가지 못한 채 카드만 연신 찍고 있다.

'옴마야, 미쳤는갑다'

공무원증을 찍고 들어가야 하는 청사 로비 출입구에서 계속 신용카드를 찍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뒤에 사람들이 나를 뭘로 봤을까?'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가방을 열어젖히고 정신없이 겨우 찾은 공무원증을 꺼내 들고 그제야 아무렇지 않게 출입구에 공무원증을 찍고 들어간다. 저층, 고층 각각 6대가 움직이는 청사 엘리베이터는 아침마다 전쟁통이 따로 없다. 엘리베이터 끝자락에 줄을 서서 내 차례가 될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와 손잡고 학교에 등교한 뒤,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부리나케 걸어 지하철을 타고 청사에 도착하면 딱 이 전쟁통 같은 시간대이다.


 3년 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이 시간대의 경주, 나는 지금 그냥 초보 직장인 그 자체다. 지난 2년간 긴 휴직기간을 가졌고, 운 좋게 또 1년간의 장기교육을 다녀온 나는 사무실에 복귀한 지 아직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다.

3년이란 시간은 한 사람의 생활패턴을 송두리째 바꿔놓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나는 청사를 종횡무진하던 나의 3년 전 모습은 깡그리 잊어버린 채 이제는 청사 출입도 허둥지둥하는 아줌마가 되어 버린 것이다.  출근길 실수 한 번으로 무얼 이렇게 자책하나 싶겠지만, 사실 이런 실수는 두 달 동안 계속되었다. 2, 3일에 한 번꼴로 일어난 이런 실수는 아침 출근시간뿐만 아니라 점심시간에 팀원들과 다 같이 밖으로 나가는 중에도 일어났다. 나보다 한참 어린 팀원들이 '제가 찍어드릴게요.' 하며 후딱 찍고 나가는 짧은 찰나, 아무도 나의 붉어진 마음은 눈치채지 못했으리라. 아참 여기서 나는 팀장급이 아니다. 그냥 그들과 같은 실무직일 뿐이다. 이런 사실을 통해 혹여 내 마음이 어떠했으리라 공감 해주는 분들이 있을까 하여 짚고 넘어가본다.


 그렇게 나는 이제 이곳에 점점 적응을 하고 있었고, 이제는 조금은 편안해진 어느 날이었다. 이번 사건현장은 청사 로비가 아니라 지하철 개찰구 앞이었다.

'왜 안되지?, 뭐지?' 하는 찰나, '아, 이 아줌마 진짜 미쳤는갑다.'

그렇다. 나는 지하철 개찰구의 교통카드 찍는 곳에 공무원증을 계속 찍어대고 있었다. 이번엔 회사 사람들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내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시고 어쩌면 우리 회사 사람일지도 모르는 직장인들도 있다. 또다시 내 마음은 붉어진다. 나의 하소연을 듣던 회사 친구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넘겨주었지만, 나는 진짜 그때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3년이란 공백기간이 무색하게 금방 적응하고 능력을 펼치는 그런 커리어우먼을 꿈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실상은 회사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어이없는 실수를 무한반복 중인 감을 잃어버린 아줌마였다.


 스스로를 '아줌마'라고 칭하며 계속 자책을 하는 내 모습에서 나는 나의 이중적인 태도를 발견한다. 사실은 '아줌마'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고, 그런 아줌마의 모습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막상 회사에 복귀한 내가 사소한 실수들로 하루하루를 완성하고 있으니, '커리어우먼'이고 싶은 내 속마음은 살포시 숨기게 되는 것이다. 꿈꾸던 모습이 아닌 마음 붉어질 부끄러운 일들만 계속 일어나니 스스로 나를 '아줌마'라고 칭하여 그냥 그렇게 변명거리를 찾고 싶은 가 보다.  내 입으로 '이 아줌마 미쳤는갑다.'라고 말하면서 속으로 '아... 내가 정녕 아줌마가 된 것인가.' 하는 이중적인 마음을 생각하니 난 좀 비겁한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다시 시작된 나의 워킹맘 생활이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순탄치 않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구간에서 나의 뒤통수를 치는 일들이 하나 둘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적응하는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마음이 썩 편치는 않다.


 육아휴직 중에 브런치에서 멋지게 퇴사를 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선 분들의 다양한 글을 보았다. 나도 긴 휴직기간 동안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까 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러나 그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아직 어떠한 준비도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근로소득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3년간의 시간이라 지금 나는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 버둥거림으로 가득 찬 현재의 워킹맘 생활은 살포시 접어두고 꿈만 같았던 육아휴직 기간 이야기를 써내려야 갈까 잠깐 고민했었다. 사실 누구보다 즐겁고 보람차게 육아휴직 생활을 했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간 속의 내 생각들을 글로 써 내려가보자니 지금 이 생활이 계속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난 지금 나의 모습을 글로 써보자고 마음먹었다. 일터에 복귀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이 시점에 이미 수많은 실수, 수많은 고민이 가득하기에 나의 브런치 서랍이 곧 가득 차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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