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일기(22): 사회생활이 너무 힘들군

by 장파덕

요즘 정신적으로 꽤나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일단 회사생활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회사생활의 어떤 점이 내게 스트레스인지 친구가 물었을 때 나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제대로 말하기 어려웠다. 힘들긴 힘든데 뭐가 힘든지조차 잘 모르는 상태였다. 2월 한 달 동안 일이 정말 없었다. 로펌 변호사들은 타임 시트에 자신의 각 업무별 근무시간을 기록하는데, 우리 회사의 경우 한 달에 120시간 정도면 적은 편이고 평균적으로 150시간 정도를 기록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1월에 100시간도 채우지 못했고 2월에는 70시간도 채우지 못했다.


그래서 일이 많아서 회사생활이 힘든 것은 아니였다. 오히려 일이 적어서 힘들었다면 힘들었다고 볼 수 있었다. 일이 적은데 왜 힘드냐고 한다면 뭔가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혹시나 회사에서 쫓겨날까봐 걱정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회사에서 쫓겨나면 쫓겨나는거지 뭐. 회사에 대해 대단한 애착이 있지는 않다. 다만 타임이 너무 적어서 나에 대한 평가가 낮아지고, 그로 인하여 파트너들이 나를 쌀쌀맞게 대한다거나 내게 못된 말을 하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동안 1달에 타임을 100시간 넘게 찍은 적은 없으니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든 적은 없었고, 때때로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일이 어려워서 힘든 적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결국 내가 힘든 이유는 인간관계 때문에, 특히 파트너변호사와의 관계 때문이다. 평생을 늘 당당하게 살아왔지만, 로스쿨 시절에 지도교수님 앞에서 당당하게 '우리나라는 평등한 나라인데 윗사람 아랫사람이라는 말이 어디있냐'라고 말했지만, 어째서인지 회사생활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파트너변호사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너무나도 큰 신경을 쓰고 있다. 나에 대한 평판이 떨어질까봐, 파트너변호사로부터 나쁜 말을 들을까봐, 혹여나 내가 파트너변호사에게 실례를 했을까봐 너무나도 과도하게 신경을 쓰고 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좀 큰 것 같다. 나답지 않은 일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알빠노?'하면서 마이웨이로 살았을 테다.


나름대로 파트너변호사들에게 예의를 지키려고 최선을 다 하였다. 하지만 늘 나는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사회생활이 처음이라 내가 서투른 것도 있고 잘 모르는 것도 있다. 그런데 나름대로 예의바르게 행동하려고 애를 쓰는데도 결국에는 몇몇 파트너변호사들이 나에 대해 언짢아한다는 말을 전해들은 순간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 것처럼 허탈하다. 내가 뭐 얼마나 예의를 지켜야 하는 걸까. 무릎 꿇고 발바닥에 키스라도 해야 하는 건가.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냐면, 의뢰인이 자기 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사들과 식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어느 파트너에게 메신저로 OO일에 시간 괜찮은지 물어봤다.


근데 그 파트너가 이른바 '읽씹'을 해버렸다.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 전화나 이메일이 아닌 메신저로 연락한 것이 문제였나 싶기도 하고. 카톡도 아니고 업무하라고 만든 업무용 메신저로 업무상 연락한 게 뭐가 문제지.. 아니면 다른 파트너한테 먼저 일정 물어보고 날짜를 잡고 자기한테는 그 날짜에 시간 되냐고 물어본 것이 문제였나. 아니 근데 그건 그럴만 한게 본인은 그냥 이름만 올리고 있으니까.. 사건에 관여하는 파트너의 일정에 맞춘 거지.. 그리고 본인이 그 날 안된다고 하면 결국 일정 다시 잡았을텐데.. 뭐 아무튼, 그 파트너는 별 생각 없이 '읽씹'한 것일수도 있지만 나는 그 사소한 일 하나때문에 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어제는 어느 파트너가 나에게 'A사건에 대해서 오늘 심문기일이 있었는데 나는 시간 안 되어서 다른 파트너가 출석했고, 심문종결 되었어요. 근데 변호사님도 담당변호사 지정서 올라갔으니 앞으로는 변호사님이 일정 챙기고 먼저 알려주세요.' 뭐 이런 식으로 메신저를 보냈었다. 말은 좋게 하셨지만 결국에는 '파트너가 어쏘한테 보고를 해야겠냐? 니가 알아서 잘 챙겨서 보고해야지.'라는 말이였다. 근데 나는 아직까지 입사한지 6개월밖에 안 되었고.. 그동안 재판 있으면 항상 파트너들이 먼저 나한테 '이번 재판은 같이 가지'라고 하거나 '이번엔 나 혼자 가겠네'라고 말해줬으니까 그런 줄 알았다. 파트너 당신이 아무 말 없이 넘어갔자나..


이것도 사실은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게 맞는거고 아무튼 파트너변호사님 말씀도 틀린 게 하나 없기는 한데, 맞는 말이고 틀린 말이고를 떠나서 이런 사소한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내게는 꽤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심지어 지난 11월에 담낭염 수술 후 휴직하는 과정에서 내가 직접 파트너 한분한분 찾아뵙고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느 파트너가 아직까지도 나를 언짢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정신이 아득했다. 옛말에 '과례도 비례다(과한 예의도 예의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뭘 어디까지 예의를 지켜야 하는 걸까. 당연히 한분한분 찾아뵙고 양해를 구하는 게 좋기는 한데.. 아픈데 뭐 어떡하라고..


애초에 입사 첫 주부터 이 회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입사 첫날에 분명히 나는 한 바퀴 돌면서 인사를 다 돌았고. 다만 그 날이 휴정기에 휴가철이라서 많은 분들이 자리에 없었을 뿐이고. 어쨌든 나는 할 만큼 예의 차렸는데. 나중에 와서 '장변호사가 왜 나한테는 인사하러 오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것인지. 그럼 본인이 나한테 인사하러 오든가. 그것 때문에 뒷말이 돌았다고 들었다. 뒷담화하는 것도 정말 하남자/하여자스럽다. 본인이 인사하러 오기가 껄끄러우면 대놓고 나한테 전화해서 '인사 한 바퀴 다시 돌아라'라고 하든가. 인사에 집착하는 것도 웃기고. 의전에 집착하는 것도 웃기고. 완전히 일방적인 예의에 집착하는 것도 웃기다.


이런 의전이나 예의 문제로 너무 스트레스 받는 내 자신이 너무 싫다. 내 딴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예의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말이다. 죄송하다는 말도 진짜 많이 하고 있는데. 쫓겨나든 내가 그만두든 회사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야겠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아야지. 내가 당장 이번달까지만 일하고 그만둘 수도 있는 거라면, 내가 이 회사에서 뼈를 묻을 생각이 1도 없다면, 파트너변호사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뭐가 중요해? 그냥 내 나름의 기준대로 적당히 예의 지키기만 하면 되지.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내가 할 만큼만 하면 되지. 장변호사가 언짢다고? 아 그러세요? 라고 말하고 그냥 넘어가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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